“환경운동은 정신운동, 후세에 깨끗한 환경을 물려줘야죠”

2001년도 ‘제5회 시민대상’ 수상
2001년도 ‘제5회 시민대상’ 수상
윤 회장이 자연보호 활동전 안전이 최우선임을 알리고 있다
윤 회장이 자연보호 활동전 안전이 최우선임을 알리고 있다

46년째 자연보호 활동...봉사활동 ‘마당발’

족발과 함께한 봉사 투혼, 안식구 응원 덕분

“77년도에 구미 금오산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도랑에서 물도 마시고 목욕하던 시절이었죠. 쓰레기가 많이 버려져 있는 모습을 본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쓰레기를 주우며 ‘물도 사 먹는 시대가 온다’고 해 주변 사람들과 함께 웃었습니다. 물값이 휘발윳값보다 비싼 시절이 온다고 했었는데 그때가 바로 지금이네요”

사람은 누구나 혼자서는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존재다. 세상이 중요하다고 목매는 학식·물질·재능·외모 그 어떤 것보다도 ‘진심’이 가장 좋은 재산이라는 소신 하나로 삶을 사는 장충동족발 윤홍욱 대표(73)는 현재 사단법인 자연보호중앙연맹 영주시협의회(이하 자연보호연맹) 소속으로 17년째 회장을 연임하고 있다.

윤 회장은 여러 차례 회장직을 내려놓고자 했으나 주변 만류에 다시 자리에 앉았다. 현재 영주시의용소방대의 자문위원직으로 활동하며 자연보호 경상북도 감사직도 20년 가까이 겸직하고 있다. 그만큼 신뢰가 두텁다. 우리고장을 위해 다양한 협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윤 회장은 46년째 ‘자연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구호 아래 탄탄한 협회 운영 방식과 지도력으로 여러 단체에서 인정받아 신뢰를 쌓아오고 있다.

 

장충동 족발 공동대표인 아내 김갑진 여사와 함께
장충동 족발 공동대표인 아내 김갑진 여사와 함께

지속 가능한 봉사의 힘은 안식구로부터

집에 있는 명패만 14개라는 윤 회장은 경북 예천 출신으로 젊은 시절 양복점을 23년 동안 운영했다. 비디오 판매대여점, 완구점 등 여러 사업에 몸을 담았던 그는 8남매 중 3형제에서 둘째로, 영주 출신 안식구를 만나 결혼하면서 봉사 정신이 가득한 지금의 보금자리를 꾸렸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봉사활동에 대한 끈을 놓지 않는 그가 봉사를 하게 된 계기는 이랬다.

라면 한 끼로 돈을 벌며 살았던 시절이었다. 아버지가 보증을 잘못 서 가세가 기울었던 힘든 시절. 쓰러져 가는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돈만 바라보고 살았다. 그러다 갑자기 어머니가 운명하시고 장례식을 치르며 그의 인생에 큰 깨달음이 찾아왔다. 빈소에서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지키는 동안 몇 안 되는 자신의 빈객을 맞이하며 잘못 살았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 후 돈이 아닌 사람을 좇기 시작했다. 동창들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주변 도움의 감사함을 느끼며 지역 활동에 열심히 임했다.

“70년대에 고아들이 많았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형제처럼 지내기도 했죠. 결혼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안식구가 고생이 많았죠. 당시 아들·딸들은 저를 못마땅해했지만, 어느 순간 인정해줬습니다. 이렇게 봉사활동과 가게 일을 병행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안식구 덕입니다. 자녀들도 잘 자라서 번듯한 직장에서 신뢰받으며 근무합니다. 대견하죠. 32년 된 족발집은 365일 쉰 적 없이 일했습니다”

족발집은 예천, 봉화 등 영주 지역 외에서도 많은 지인이 찾아준다. 부부가 32년간 족발집을 놓지 않고 있는 데에는 이렇게 전국에서 찾아오는 분들을 향한 감사함이 크다. 찾아주는 이가 있기에 가게를 쉬지 않는다. 더불어 안식구인 김갑진(70) 장충동족발 공동대표 역시 모범 통장으로 인심을 많이 얻고 있다.

자연보호와 지역활동은 계속된다

기적을 싹 틔운 새마을 운동을 기본으로 국토대청결운동, 환경정비 활동 등 윤 회장의 모든 발걸음은 자연보호를 바탕으로 행해지고 있다. 산업 문명의 발달과 인간의 무분별한 자연 훼손 등으로 다양해진 환경문제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수질과 대기질은 날로 나빠져 전 세계가 이상기후로 몸살을 앓고 있다. 때문에 자연을 자식처럼 보살피며 봉사에 마음을 다해 임하는 여러 환경 단체는 어느 연맹이나 협회보다도 소중하다.

『반만년 이어 살아온 우리의 강산/ 산이좋아 물이좋아 삼천리 금수강산/ 천년만년 이어 살아갈 우리의 조국/ 너와 나 우리함께 가꾸고 또 가꾸세/ 자연이 살아야 우리가 산다 자연보호사람보호 우리가 한다/ 자연보호중앙연맹이 한다 우리가 한다』

맑고 쾌적한 환경을 위해 헌신하는 자연보호중앙연맹의 노래가 주는 메시지는 오늘날 우리가 잊고 사는 게 무엇인지를 일깨워 준다.

윤 회장은 “지난 2월 28일 4년 임기를 마지막으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우리고장 자연보호 봉사를 위해 재임을 수락했다”며 “회비도 받지 않는 순수한 봉사단체인데다 친환경·저탄소 산업 육성 및 탄소중립 사회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영주시민들도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회경력 및 포상내역
사회경력 및 포상내역

전국에서도 ‘으뜸’ 영주에서도 ‘으뜸’

윤 회장은 가흥1동 새마을지도자협의회장과 영주시새마을지도자협의회 사무국장을 겸직하며 우리고장에서 도움이 될 만한 일은 모두 자처해서 돕고 일했다. 자연보호 경상북도 봉사 대상, 명예감사관 도지사 감사장, 환경부 장관상, 소방방재청장상, 새마을운동중앙회 회장상 등 개인에게 주어지는 상뿐만 아니라 ‘우리마을 살기좋은 마을 상’ 등 연맹의 이름으로도 여러 차례 상을 받았다.

마을 발전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한 윤 회장은 젊은 시절 스스로 생을 마감할 결심을 몇 번 했을 정도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지금껏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늘 옆에 있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였기 때문이라며 겸손한 자세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윤 회장은 “무슨 일이든 매사 흐트러짐 없이 꼼꼼하게 하다 보니 인정받은 결과이고 그만큼 베푸는 것이 몸에 밴 결과”라며 “그 이면에는 저를 위해 희생한 아내와 자식들이 있다”고 가족에게도 감사의 뜻을 밝혔다. 본인의 이름에 담긴 뜻을 삶에 그대로 녹여내는 아내(김갑진)를 ‘값진 인생의 보물’이라고 부를 정도로 무한한 애정을 보이기도 했다. 또 “자연이 살아야 우리가 살 듯 아내가 있기에 내가 있다”며 “처자식에게 1등으로 인정받으며 살아왔다는데 자부한다”고 가족 사랑과 자부심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윤 회장은 이제 여생을 살아가기 위해 열심히 저금하고 아끼며 아내와 본인에게 집중하고 있다. 본인의 뜻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다리가 아픈 안식구가 30여 년 족발집을 운영했으니 이제는 본인이 생을 다할 때까지 가게 운영을 위해 뛰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남편으로서의 사명감이다.

(사)자연보호중앙연맹 영주시협의회 사무실에서 촬영
(사)자연보호중앙연맹 영주시협의회 사무실에서 촬영

자연이 살아야 우리가 산다

윤 회장이 연맹 활동에 대해 신문방송에 보도된 내용을 차곡차곡 모아 스크랩해놓은 것이 그 수가 182점 정도로 무척이나 많다. 그와 연맹이 꾸준히 활동한 결과물 또한 사무실 벽 곳곳에 걸려있다. 봉사활동의 ‘마당발’임을 증명해주는 증거자료다.

자연보호연맹은 전국에 60만 회원이 있고 경북에는 7천 명 정도 활동하고 있다. 환경실천운동의 중심 역할을 하는 단체는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두 팔 벌려 환영한다.

“17년 정도 배달일을 하면서 벌어들인 수입으로 봉사에 이바지했습니다. 퀵서비스 배달이 없던 시절 자전거, 자동차로 번갈아 배달하면서 안식구에게 눈물을 흘리게 하기도 했죠. 그런 희생 덕분인지 자연보호로 전국에서 1등도 했습니다. 이제 법정 단체로 인정받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해 국회 승인을 받으면 전국 회원들이 힘을 더 낼 수 있겠죠. 몇 년 전 ‘식목일 앞당기기’를 추진한 단체가 바로 저희입니다. 식목일 앞당기기에 관한 시민 공감대 확산을 위해 100만 서명을 받아내기도 했죠”

5년 전 새마을운동에 가장 앞장서서 움직였던 윤 회장은 “새마을운동을 통해 국민 통합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며 “어려웠던 시절 합세해서 많은 봉사활동을 하며 무척 행복했던 기억이 많다”고 새마을운동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기록물로 등록된 영상을 보면서 그때를 회상했다.

가난 극복을 부르짖던 주민들이 ‘잘살아보세’ 구호를 외치며 농촌의 중심이 돼 새마을운동을 도시로 전파했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했던 시대의 힘으로 일어선 대한민국은 다시 한번 위기를 맞이해 흔들리고 있다. 윤 회장은 이런 대한민국의 위기가 점점 나빠지는 환경 때문이라고 말한다.

“환경이 참 중요하고 엄청납니다. 환경이 튼튼하면 병이 안 옵니다. 코로나19 같은 경우도 환경에서부터 왔다고 볼 수 있죠. 그 당시에도 소수 인원이 모여 봉사를 지속했습니다”

회원들과의 단합은 나이를 잊게 한다

근면·자조·협동·믿음은 각박해진 요즘 사회에서 우리가 새겨야 할 마음가짐이라고 여기고 있다. 1970년대 한국이 가난을 어떻게 극복하고 나라를 발전시켰는가에 대한 답변은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시절 위기를 극복하고 발전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함께’였기 때문임을 국익을 위한 보호 및 봉사단체의 힘이 절실히 보여준다.

“산불과 관련해서도 시청에서 도움 요청이 많이 들어옵니다. 요즘은 산불이 가장 큰 걱정거리입니다. 5월 말까지 산불 경고 깃발과 현수막을 곳곳에 배치하고 산불 조심 홍보도 지속합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젊은이들의 동참이 저조하단 사실입니다. 분리수거도 제대로 안 되는 곳이 많죠. 음식물 쓰레기 처리 같은 경우 나이 드신 분들은 자동화 시스템에 익숙지 않아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은 계속되지만, 봉사 사회는 젊어지지 않습니다”

며칠 전 악취로 눈총을 받았던 곳에서 봉사한 회원들은 자발적으로 동참한 어르신들이다. 코로나19 전에는 지구온난화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했었다는 윤 회장은 여러 기관에 협조가 잘되는 곳 또한 ‘자연보호연맹’이라며 적극 동참해 주고 있는 회원들을 자랑스러워했다.

“환경운동은 정신운동이기도 합니다. 우리 후세에게 깨끗한 환경을 물려주는 게 우리의 임무이자 의무입니다. 집 앞마당이든 지나다니는 길목이든 쓰레기 하나라도 줍는 소소한 실천부터 권하고 싶습니다. 그 모든 것이 인간에게 돌아옵니다. 인간은 물 없이 살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물을 맑게 하기 위해서는 쓰레기를 적게 버리고 분리수거를 해야 합니다. 후세를 위해, 더 나아가 인류를 위해 말이죠”

아내의 큰 지지 덕분에 오늘날 여기까지 왔다는 윤 회장은 끝까지 자연에 대한 사랑과 자연을 보호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였다. 자신이 신문에 소개될 만한 인물은 못 된다며 겸손한 자세로 감사의 표현을 계속해 내비쳤다.

“이제는 환경과의 전쟁 선포입니다. 근면과 협동이 필요한 시점이죠.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다시금 영주가 환경보호에 앞장서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사)자연보호중앙연맹 김용덕 총재와 함께
(사)자연보호중앙연맹 김용덕 총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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