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젊음, 일할 수 있는 기쁨을 얻다’

일하는 시간의 소중함을 만끽하는 어르신들

인생의 끝까지 살아있는 자부심 느낄 수 있어

“사랑하고 일하라. 일하고 사랑하라. 그것이 삶의 전부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의 말이다. 이는 미래를 걱정하면서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에게 종종 던져지는 명언이지만 과거를 보내고 현재에 집중하고 싶은 노년에게 더 큰 울림을 주는 위로와 자존감의 출처이기도 하다.

우리 고장 영주에서도 새로운 삶을 열고자 하는 노년을 두 팔 벌려 환영하는 곳이 있다. 어르신들이 활기차고 건강한 노후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노인 일자리를 지원하고 있는 영주시니어클럽이 바로 그곳이다.

영주시니어클럽(관장 윤대성)은 현재 ▲공익형(공공시설관리지원, 공원관리지원 등) ▲사회서비스형(보육시설도우미, 기관실버지원 등) ▲시장형(선비촌건어물, 선비촌참기름, 은빛식당 등)으로 구분지어 32개 사업에 총 2천36명을 선발해 운영하고 있다.

이중 시장형 사업은 노인에게 적합한 업종 중 소규모 매장, 전문 직종 사업단 등을 운영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사업이다. 고령화 시대를 맞아 근로 능력은 충분히 있지만 연령 때문에 취업이 어려웠던 대상자들은 일자리 사업을 통해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특히 시장형 사업 중에서도 ‘선비촌건어물’은 인생 2막을 여는 어르신들의 열정이 남다른 곳이다. 노동에 대한 의지가 피어오르는 것은 물론 동료를 챙기며 다시 한번 사회생활을 경험하는 젊음이 채워지고 있다.

노년의 젊음으로 운영되는 건어물 가게

‘선비촌건어물’(대학로164번길 7-17)은 가흥신도시 이마트 에브리데이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젊은 시선으로 봐도 세련되고 깔끔한 외관과 매장 내부를 자랑한다.

노인 일자리 박람회에서 신청서를 작성해 직접 일할 곳을 골라 정식 면접을 통해 선발된 어르신들이 반듯한 유니폼을 입고 열정과 따뜻함을 매장 가득 채우고 있다. 직원 평균 연령이 만 60세 이상이지만 매장에서 만난 어르신 직원들은 모두 노동에 대한 의지가 넘치는 푸릇푸릇한 청년처럼 보인다.

영주시니어클럽 김윤금 팀장은 “실제로 매장 직원을 선발하는 면접에서 가장 먼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다름 아닌 어르신들의 열정이었다”고 말했다. 연 단위로 신청서를 받아 면접을 다시 보며 더 많은 어르신에게 일자리와 동기부여 기회를 모두 제공한다.

김 팀장이 담당자 직함을 받아 매장을 관리하고 있지만 어르신들에게 매장을 일임하고 있다. 매장에서 판매되는 물건을 소분화해 포장하고 진열하면서 판매하는 것까지 모두 직원들의 몫이다. 일자리 앞에 ‘노인’이 붙는다고 해서 그 자리가 작거나 가벼운 것이 아니다. ‘선비촌건어물’에서 나이는 말 그대로 숫자에 불과했다.

어르신들과 김윤금 팀장이 함께 모여 있다(회의실+소포장실)
어르신들과 김윤금 팀장이 함께 모여 있다(회의실+소포장실)

서로 믿고 의지하며 또다시 성장하다

소년소녀 같은 웃음을 활짝 띤 어르신 직원들은 처음에 일을 배울 땐 계산을 하는 포스기나 물건 포장을 하는 실링기 같은 기계 조작이 너무 어려웠다고 입을 모았다. 제품 그램 수를 맞춰 포장하고, 제품 이름을 일일이 암기하면서 매장의 위생까지 책임지는 일 모두 배움 그 자체였다. 지금도 가끔 실수하지만 이제 정말 드문 일이 됐다. 그러면서 청년의 빠른 습득력을 칭찬하고 배워야 한다며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끈끈한 동료애도 돋보였다. 서로가 서로인 것처럼 챙기고 도우며 격려하는 모습은 한 나무에서 자라는 꽃과 열매처럼 보였다. 담당자를 믿고 의지하며 따르는 직원들도, 직원들을 믿고 지지하며 이끄는 담당자도 모두 한 식구나 다름없다. 어르신 직원들은 “담당자가 없었으면 우린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깊은 신뢰를 보였고, 담당자 또한 “이제는 제가 매장에 손댈 곳이 없어요”라고 칭찬의 웃음을 보였다.

단순한 일자리사업의 현장에서 탄탄한 판매장으로

2021년 4월에 본격적으로 문을 연 매장은 직원들의 불타는 의지와 열정으로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 포항, 문경, 봉화 등 다른 지역의 시니어클럽에서 직접 매장에 견학을 오기도 하고, 건어물 판매장으로 노인일자리사업을 진행하려는 곳을 도와주기도 한다. ‘선비촌건어물’ 매장과 직원들은 노인들의 희망을 넘어 노인복지의 희망을 단단하게 하고 있다.

노인 일자리 창출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연 매장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건의 품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노인 일자리 혜택을 받아 원가 조정이 가능해 오히려 일반 유통 과정을 거친 대형마트보다 우수한 품질을 자랑한다.

담당자와 직원들 모두 판매 제품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다. 해마다 매출이 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직원들은 지인에게 따로 주문받을 때도 있을 정도다. 판매수익금은 전액 참여 어르신들의 인건비로 지급된다.

부산 출생이라고 밝힌 한 어르신 직원은 “고향 지인들에게도 매장 제품을 한번 선물했는데 인기가 좋아 부산까지 물건을 보내기도 한다”고 했다. 제품에 대한 자부심이 매장과 직원 모두를 한 번 더 고급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선비촌건어물’에서는 간식용·안주용·선물용 등 50여 가지의 질 좋은 건어물을 소분해 전시, 판매되고 있다. 건어물 외에도 말린 과일과 견과류, 젤리류까지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명절 때면 건어물과 말린 과일 등을 선물용 세트로 구성해 주문을 받아 판매한다. 깔끔하고 질 좋은 상품을 직원들이 소분해 라벨 스티커 하나까지 손수 붙인다. 라벨 위치까지 꼼꼼하게 맞췄다고 직접 보여주는 손길이 믿음직하고 단단했다.

노동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어르신 직원들

직원들의 근무 환경도 부담이 없다. 13명이 근무하는 매장에선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눠 하루에 약 4~5시간, 한 달에 10번 정도 근무한다. 매달 근무 시간표가 나온다. 취미생활을 즐길 수도 있고 병원에 가거나 운동을 하면서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시간도 넉넉하다. 한 어르신 직원은 “담당자의 따뜻한 배려로 가족이 아플 때 달려갈 수 있었다”고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어르신 직원들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젊어지는 기분으로 감사히 일하고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곳에 입사하기 전, 다양한 직종에 종사했던 이들은 흐르는 세월 속에서 나태해지는 것이 싫어 어떻게든 움직이려고 애썼다. 이곳에서 일하는 지금은 “마음이 부자가 됐다”며 “생활에 활력소가 생기고 긴장감을 얻어 자부심이 생긴다”고 했다. 매장에선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시니어 인턴을 채용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 <인턴>(2015)에서는 “경험은 늙지 않고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명대사가 나온다. 경험이 풍부한 70대 인턴이 30대 대표에게 건네는 말이다.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고 누구나 젊음을 잃는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경험하고 많은 것을 깨닫는다. 경험과 깨달음은 결코 늙지 않고 낡지 않는다.

저물어 가는 인생이 많아지고 많아진 만큼 우울해지는 시대. 인구의 고령화가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저출산과 지방소멸 위기를 지자체도 의식하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드는 지금. 가흥신도시의 한 길목에서 희망의 새싹을 발견했다. 일하는 시간이 소중해 달려오고 아까워 떠나지 못하는 ‘선비촌건어물’ 식구들의 모습이 너무나 소중하고 찬란히 빛났다.

“저는 뭐라도 할 거예요”라며 결연한 의지를 보인 ‘선비촌건어물’ 매장 직원들. 그들은 몸이 허락하는 한 끝까지 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삶의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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