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와인과 인문학’ 강좌, 독특한 진행 방식이 인기 끄는 이유

여느 지방 중소 도시처럼 영주도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어 지방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당국이 각종 인구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구증가 정책이 출산장려와 귀농 귀촌 운동에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귀향운동으로의 패러다임 변화가 절실하다.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머물고 있는 지역 출향인은 대략 3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에 본지는 이들 출향인이 은퇴 후 자신이 평생 직장생활을 하며 쌓아온 경륜을 귀향을 통해 고향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애향인 인터뷰를 마련했다. 이번 애향인 인터뷰를 통해 인구증가를 위한 귀향정책과 지역발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편집자 주>

특파원, 앵커, 보도국장, 100분 토론 진행 등 치열한 방송사 생활

미국 CNN보다 이틀 더 빠른 이란 지진 현장 방송 등 수많은 특종

2000년 총선 경험은 ‘운명’...95세까지 공부하는 것이 삶의 목표

황헌교수 (최근 모습)
황헌교수 (최근 모습)

영주의 불천위 종가 중 두 분의 불천위를 모시는 종가가 있다. 풍기읍 희여골의 용헌 황사우 선생과 식암 황섬 선생 종가이다. 두 분의 불천위 후손에 많은 인재가 나왔다. 현 경기대 특임교수 황헌 교수도 두 분 불천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황헌 교수는 MBC 앵커로 전국적 지명도가 있으며 지난 총선에서 갑작스런 지역구 조정으로 인한 여파로 정치적 좌절을 겪기도 했다. 황 교수는 인문학자이다. 그는 요즘 와인과 문명의 관계를 위시해 철학, 문학, 역사의 큰 줄기를 짚는 이야기를 한다. 인문학 주제 한 가지를 강의하며 해당 주제와 연관된 와인도 맛볼 수 있는 특화된 강의이다. 누구도 접근하지 못했던 방식의 강좌인지라 세인의 관심이 높다.

기업인 대상의 조찬 특강, 일반인들을 위한 문화 특강, 어르신들을 위한 봉사 차원의 특강도 한다. 3월 15일부터는 4주 동안 고향 친구의 권유로 용인시 기흥노인복지관에서 특강도 한다. 황 교수는 강의하는 요즘이 은근하면서도 묵직한 행복을 주는 시간이라 털어놓는다. 동년배가 정년을 이미 넘긴 시기에 최고의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가는 황 교수를 만났다.

많이 바쁘시지요? 대학에 강의 나가신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지금 경기대 특임교수로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인문학 강의도 하고요.

인문학 강의.. 어떤 내용의 강의인가요?

『와인잔에 담긴 인문학』 책을 2020년에 냈습니다. 책을 낸 후 여러 곳에서 와인과 인문학 관련 강의 요청을 많이 받았습니다. 기업체와 대학을 비롯, 여러 곳에서 강의 요청이 왔습니다. 전국으로 다니면서 강의를 했습니다. 강의하면서 사람들에게 맞춤형 강좌를 만들었습니다. 8주 단위 강좌로 ‘황헌과 함께 떠나는 인문학 와인 여행’이 제목입니다.

그런 강의가 예전에 없었지 않나요? 세계 최초로 보이는데..

네. 제 강좌가 세계 처음이라고 평가하더군요. 많은 관심을 받고 있으니 이런 강좌의 필요성이 있는데 선례가 없으니 아무도 시도할 엄두를 내지 않았나 봅니다. 제 ‘와인과 인문학’ 강좌는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한 주는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 이야기를 하며 프랑스 보르도 와인을 마시고, 독일 괴테의 파우스트를 이야기하며 괴테가 좋아했던 독일 라인강 지역의 와인을 맛보고, 노벨문학상 수상자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작품의 인문학적 가치를 공부하며 헤밍웨이가 즐겼던 프랑스 와인을 같이 공부하고 맛보는 식이지요.

새롭고 재미있는 공부이겠으나... 새로운 내용과 형식의 강좌이니 준비도 어려웠겠는데요.

괴테 강의라면 독일 문학 교수가 저보다 더 깊이 있게 가르칠 겁니다. 그러나 그가 볼테르를 강의하지는 않겠지요. 영문학자가 사마천의 사기를 강의하지는 않을 겁니다. 저는 34년 언론인 삶을 통해서 인문학의 현장을 참 많이 찾았습니다. 관련 책을 탐독하고 글로 많이 남겼습니다. 그런 지나온 삶의 시간이 오늘 이런 강좌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와인을 매개로 인문학적 접근을 다양하게 하는 강의인 셈이지요. 그런 식으로 붙인 강의 제목이 30여 개입니다. 위고, 셰익스피어, 카잔차키스, 헤밍웨이, 괴테와 같은 문학가들의 작품 세계를 비롯 니체, 헤겔, 칸트, 사르트르 같은 철학자의 철학 세계, 기독교와 이슬람의 역사, 중국 역사, 흑해와 러시아 역사, 영국 역사 등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역사의 깊은 세계까지 두루 망라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음악, 미술, 건축, 여행 이야기도 많이 들어있습니다. 과거와 오늘을 이어주는 가교는 바로 인문학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더 행복하게 이 강좌 준비에 정성을 기울입니다.

저서 [와인과 인문학] 표지
저서 [와인과 인문학] 표지

같은 나이 대의 사람들은 은퇴를 하는데... 공부를 새롭게 많이 하셔야 했겠는데요?

공부를 많이 해야 했고 하고 있습니다(함께 웃음). 예를 들어, 사마천의 <사기>, 그전에도 한번 대략 읽었습니다만 강의를 위해 사마천의 관련 책 6권을 사서 내용을 발췌해서 파워포인트 30페이지 분량의 강좌를 준비했습니다. 확 빼고 넣고, 표현을 바꾸고, 통째 날리고... 핵심이 빠지지 않아야 하고 그러면서도 쉽게 전달되는 표현을 하려다 보니 작업이 많아지더라구요.

저는 요즘 책을 읽어도 잊는데... 새로운 변화에 맞는 공부가 시니어 세대에 힘들다 합니다만.

그런데 저는 즐겁습니다. 지난해 경기대에서 당시 104세인 김형석 교수님과의 토크 콘서트가 있었습니다. 김 교수님의 저서와 강의하셨던 걸 미리 파악하고 한 시간 반에 걸친 토크 콘서트를 하면서 크게 배운 게 있습니다. 김 교수님은 95세까지는 계속 공부하며 배웠다 하시더군요.

95세 이후에도 항상 배우는 자세로 매일 메모하고 책을 일정 페이지씩 읽는다고 하셨습니다. 소설 <데미안>을 읽으며 20대에 느끼는 것과 40대, 60대 때 읽으며 가지는 배움과 느낌은 사뭇 다르다고 하시면서 나이가 익어가며 책 한 권이 주는 가르침도 달라진다고 하시더군요. 생각하고 보이는 게 다르더란 거지요.

저도 목표가 ‘95세까지는 공부한다’입니다. 살아있다면, 건강이 허락한다면 그 공부는 시험 보려는 공부가 아닌, 내 인성의 내면을 강화하는 그런 겁니다. 삶에 소중한 가치를 조용히 몸으로 실천하면서 살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와인과 인문학 강의 모습
와인과 인문학 강의 모습

4년 전 정치에 입문하기도 하셨었는데?

오래전 이야기 같은 느낌입니다. 고향발전을 위해 정치에 입문했었습니다. 당의 전략공천을 정식으로 받았습니다만 갑작스런 선거구 조정 여파로 정치입문을 못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정치와 맞지 않는 운명인가란 생각도 듭니다.

저는 지금 제가 하는 일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사이 공부도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지식에 목마르고 소통 모임에 목말라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이분들의 목마름을 해소하고 있는 지금이 참 행복합니다.

정치에서 멀어지셨지만, 정치에 대한 느낌이랄지 정치에 대한 바람이랄지 이런 게 있다면?

오늘날 우리 정치는 자신의 뜻을 펴기 힘듭니다. 상대를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미국 스탠퍼드대 석좌교수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말한 비토크라시(vetocracy) 상황입니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비토(거부)만 하는 정치를 벗어나지 않으면 나라가 발전하기 힘듭니다. 제가 그때 국회로 들어갔더라면 많이 고민했을 것 같습니다.

야당지도자 시절의 보리스옐친 인터뷰
야당지도자 시절의 보리스옐친 인터뷰

MBC기자로 입사하여 기자로, 해외특파원으로, 앵커로, 토론 진행자... 다양한 활동을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앵커 황헌을 기억합니다.

1984년 12월 15일에 MBC 공채 21기 기자로 입사 후 사회부, 국제부, 정치부, 경제부 기자를 거치며 높게 평가받아 2000년 5월 마감 뉴스 앵커로 발탁됐습니다. 입사 16년 만이었습니다. 그해 가을 아버님(황필상 : 문수면장, 평은면장, 순흥면장, 풍기향교 전교 역임)이 장례를 마치고 귀사하니 매일 아침 2시간 길이의 와이드 프로그램 메인앵커 역할을 맡기더군요.

2001년 미국 911테러가 발생했을 때 CNN 현장 중계를 보며 쪽지로 들어오는 메모를 참고하며 물만 마시면서 8시간 생방송도 했습니다. 보도국장도 2012년 노조의 장기 파업 기간에 맡았습니다. 기자들의 꿈은 특파원 나가는 것과 뉴스 앵커가 되는 것인데 저는 두 가지를 모두 이뤄냈습니다. 논설실장을 맡아 뉴스의 광장 6년 진행, 백분토론 진행 등을 두루 맡았습니다.

해외특파원도 하셨잖아요. 해외특파원 활동을 포함 기자 시절도 소개해 주시지요.

프랑스 파리 주재 특파원을 했습니다. 추억의 에피소드지만 참 힘들었던 일이 많았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이 3당 합당 선언한 날 고르바초프가 소련 공산당의 독점적 당헌 조항을 폐기하는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한국 기자로는 유일하게 현장 취재로 특종을 했고 야당 지도자로 진압군 탱크 위에 올라가 연설하던 보리스 옐친 대통령과도 1시간 인터뷰를 했습니다. 한동안 MBC 기자 지망생들이 면접 볼 때 ‘황헌 기자가 모스크바에서 방송하는 모습이 너무 자랑스럽고 멋있어서 도전했다’고 답할 정도였습니다. 기자 입문 6~7년 정도 지난 시기였습니다.

파리특파원 시절 이란 케르만 주 밤(Bam)시에서 수만 명이 죽은 큰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이탈리아 로마 경유 이란 테헤란 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옆자리 동승객이 고뇌하는 제 표정을 보고 말을 걸었습니다. 그 지역 대학 역사학과 교수였습니다. 그분에게 이란을 돕기 위해 취재 가는데 비자발급을 기다릴 수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천우신조란 속담이 딱 맞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분이 공항에서 비자를 받을 수 있게 도와줬습니다. 그분은 테헤란 경찰국장과 친분이 깊고 케르만 주지사가 친구였습니다. 케르만주 도청 옥상에 짐을 풀고 매일 헬기를 타고 아비규환의 현장에 갔습니다. 미국 CNN보다 이틀이나 먼저 현장 상황 뉴스를 타전할 수 있었습니다. 국내 기자들은 3일이나 지나 정식 비자 받고 오더군요.

무모한 도전 아닌가요? 그 교수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어쩔 뻔 했나요?

막막했지만 공항에서 ‘당신네 나라를 돕기 위해서 서둘렀다. 빨리 보도해야 한국 같은 나라에서 119구조대와 구호 손길을 보낼 거다’라고 진지하게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면 비자를 공항에서 받을 수도 있다는 믿음으로 도전했습니다.

2003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이란의 인권 변호사 시린 에바디 특종 인터뷰도 했습니다. 통상 섭외 후 가는데 그분의 동선을 추적해 인터뷰 특종을 했습니다. 1998년 외환 위기 때는 미셸 캉드시 IMF 총재와 단독인터뷰를 했습니다. 한국이 IMF 위기 상황을 곧 벗어날 것 같다는 인터뷰로 국민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치열한 기자 생활을 뒤로하고 인문학을 가르치는 삶을 사시는데 고향을 위해 한 말씀을...

소백산 등 절경과 훌륭한 역사와 문화유산, 세상이 부러워할 특산품이 있는 곳입니다. 청량리에서 KTX 이음을 타면 1시간 30분이면 당도합니다. 제겐 선산과 조부님, 부모님 모신 산소, 태어나 자란 집도 있습니다.

마음의 뿌리이자 제 삶의 주춧돌 같은 곳입니다. 그러나 인구절벽의 한파에서 예외가 아닙니다. 일회성 처방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지역홍보, 특산품 행사, 축제 등 현재 추진 중인 일은 하되 미래를 내다보는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전국 어디서나 ‘영주시’ 하면 떠오르는 힐링 스테이, 역사 공부, 청정한 옛길 탐방 등 특화 방문객이 상시 이어지는 지역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일본 아오모리 현립 미술관 샤갈의 대형 그림을 보러 일본 전역에서 연중 수백만 명이 찾습니다. 죽기 전에 꼭 한번 보고, 체험하고, 맛보는 특화된 주제를 체계적으로 개발했으면 합니다. 저도 힘을 보태겠습니다.

                                                                  황재천 프리랜서 기자

 

 

 

 

 

 

 

 

 

황헌 교수 프로필

- 풍기초등학교, 풍기중학교(3학년 때 전학)

- 서울 영락중학교, 인창고등학교

- 동국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카디프대 대학원 언론학 석사

- 성균관대 대학원 언론학 박사 수료

- (현)경기대학교 특임교수

- (전)동국대 겸임교수 및 인문문화예술 최고위 과정 교수

- (전)인창중고등학교 총동창회장

- (mbc기자 역임) 논설위원, 선거방송기 획단장, 보도국장, 논설위원실장, 파리 특파    원, 경제정책팀장, 문화스포츠에디터, 사회부·문화부·국제부·정치부 기자

- (진행 프로그램) mbc아침뉴스, mbc 뉴스투데이, mbc뉴스와 경제, mbc뉴스의 광      장,  mbc 100분 토론, mbc뉴스 데스크, mbc마감뉴스, mbc뉴스 포커스

- (역서) [세계사를 바꾼 헤드라인 100]

- (저서) 『와인잔에 담긴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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