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서 두 편의 영화 ‘건국전쟁’과 ‘파묘’가 4월 10일 총선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건국전쟁’은 다큐멘터리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개봉된 지 1달 만에 이례적으로 관객 수 100만 명을 넘어섰고, ‘파묘’는 개봉 11일 만에 6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영주지역에서도 두 영화에 대한 관심이 어느 지역보다도 높다. ‘건국전쟁’의 경우는 영주지역 보수성향의 인사들이 롯데시네마에 빠른 시일 내로 상영을 요청했고, ‘파묘’의 경우는 영화감독이 영주에서 초중고 시절을 보낸 장재현 감독이다 보니 더욱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건국전쟁’은 관객 수로 보면 ‘파묘’에 비교할 바 아니지만, ‘다큐멘터리 영화’가 가지고 있는 한계성과 지난 진보 정권 이래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팽배한 이 시점에서 1월 10일에 개봉된 ‘길위에 김대중’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게임도 안되게 제치고 100만 관객을 동원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획기적 사건이다. 더구나 역사적 자료(사료)를 바탕으로 이제까지 숨겨져 있었던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인 부분과 공을 오늘날 가장 대중적인 미디어 매체 영화를 통하여 새롭게 재평가한 것이다.

여기에 비해 영화 ‘파묘’는 내용적인 면에서 보면 분명히 ‘건국전쟁’과 대척점 위에 서 있다. 영화 속에 내재돼 있는 많은 메타포가 진보 측에서 만들어 놓은 반일 감정을 부추기고 있고 또 플롯 설정 자체가 상당히 반일 프레임과 연관이 있다.

친일파가 미국으로 건너가서 자본주의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친일에 대한 인과응보로 친일파 가정이 붕괴되고, 한국과 일본의 주술사들이 대결을 펼치는 것을 통해 오늘날 우리 사회 곳곳에 퍼져있는 친일의 잔재를 청산하는 것으로 영화가 구성돼 있다. 그러나 ‘파묘’는 반일 프레임을 떠나서 예술적 측면이나 내용적 측면에서 외국 영화계에서도 인정받을 만큼 작품성이 있는 영화로 평가받고 있다.

아도르노(Theodor W. Adorno)는 영화에 대해서 오늘날 과학기술의 발달로 예술작품에 대한 기술적 복제가 가능해지면서 예술적 신비감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경제적 상품으로서 대량 생산되고 수용되기 때문에 기존의 지배체제와 이데올로기가 지속되는 데 기여한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 있는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대중문화를 이끌고 있는 영화가 오히려 새로운 문화, 새로운 대중, 새로운 소비를 창출함으로서 대중민주주의를 이끄는 대표적인 미디어 매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과거에는 예술이 부르주아가 연대 의식을 가질 수 있는 수단으로 작용했다면 대중민주주의 시대에는 예술이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해방을 위한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영화가 이데올로기와 무관하지 않다면 문제는 ‘영화의 정치화냐’, ‘정치의 심미화냐’에 달려 있다. ‘영화의 정치화’ 개념은 영화가 특정한 정치적 경향성을 드러내야 한다거나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의 수단이 될 것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의 정치화는 새로운 기술에 의해 가능해진 예술의 지각과 수용 속에서 자율적으로 사고하고 반성할 수 있는 집단적 주체를 형성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 비해, ‘정치의 심미화’란 파시즘과 공산주의의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일방적으로 선전하고 이를 권위주의적으로 주입하기 위해 다양한 미적 수단과 효과를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영화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데올로기와 무관할 수 없다면, ‘건국전쟁’에 대해 감동 받은 사람은 ‘파묘’를 관람할 필요가 있고, 반대로 ‘파묘’를 흥미롭게 본 사람은 ‘건국전쟁’을 관람하고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고 있는지 알 필요가 있다. 두 영화에 대해서 한국의 프레임 정치인 이데올로기로 접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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