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율 (동양대학교 교수)
우리는 일반적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제공되는 거의 모든 것을 매우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매일 먹는 밥 한 그릇, 매일 입는 옷 한 벌, 매일 타고 다니는 교통수단, 자주 밥상에 오르는 물고기 한 마리 등등 모든 것을 당연시(當然視)하고 있다. 물론 내가 노력한 대가(對價)로 획득한 돈을 지불하였기 때문에 그것이 당연하다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돈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때로는 그것이 제공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아무리 돈이 있어도 농부가 논밭에서 쌀을 생산하지 않고, 또 공장에서 직공이 베를 짜지 않고, 자동차 생산공장에서 기술근로자가 자동차를 생산하지 않거나 정비소에서 정비사가 정비를 제대로 하지 않을 경우에는 밥을 먹을 수가 없고 옷을 입을 수가 없으며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가 없다. 또 어부가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지 않으면 밥상에서 물고기를 먹을 수가 없다. 농부와 직공과 기술근로자와 정비사와 어부가 모두 제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 보면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당연한 경우처럼 보일 뿐이다. 따라서 당연하다고 하는 단순한 생각을 이제는 과감하게 버리고 밥 한 숟가락과 옷 한 벌과 교통수단, 물고기 한 마리 등이 나에게 제공되기까지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 헌신(獻身)이 더해져 가능하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 보면서 감사하고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사실 하늘 아래에 그저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모든 사람들이 크거나 작거나 간에 노력과 땀과 헌신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런 이치를 알고 매사에 늘 감사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올해부터는 살아보기를 희망해 본다. 아니 나부터 매사에 늘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살고자 다짐해 본다.
송나라 제10대 황제인 고종황제 조구(趙構: 1107-1187)라는 사람이 있다. 그가 지은 고종황제어제(高宗皇帝御製)라는 글이 '명심보감(明心寶鑑)'의 「성심편하(省心篇下)」에 실려 있다.
‘몸에 한 오라기 실이라도 걸쳤거든 베를 짜는 여인의 노고를 항상 생각하고, 하루 세 끼의 밥을 먹게 되면 항상 농부의 고생을 생각하라. [身被一縷(신피일루)나 常思織女之勞(상사직녀지로)하고 日食三飧(일식삼손)이나 每念農夫之苦(매념농부지고)하라]’라고 하였다.
옷을 입을 때에는 언제나 직녀(織女)의 수고로움을 생각하고 밥을 먹을 때에는 언제나 농부의 고생을 생각하여야 옷 한 벌과 밥 한 끼가 그저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수고로움과 고생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아니 단순히 아는 데 그치지 말고 진심으로 감사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면 직녀가 수고로움을 잊고 농부가 고생을 모르며 더욱 열심히 베를 짜고 농사를 부지런히 지을 것이다.
역시 송나라의 명재상(名宰相) 가운데 한 사람인 문정공(文正公) 범중엄(范仲淹: 989-1052)이 쓴 오언시인 「강상어자(江上漁者)」라는 작품이 있다.
江上往來人(강상왕래인) 강물 위를 오가는 무수한 사람들
但愛鱸魚美(단애노어미) 다만 농어의 맛 좋음만 사랑하네.
君看一葉舟(군간일엽주) 그대 보게나. 이파리 같은 조각배가
出沒風波裏(출몰풍파리) 풍파 속을 넘나 드나드는 것을.
사람들은 대체로 밥상 위에 올라오는 농어의 맛 좋음에만 관심이 있지 일엽편주(一葉片舟)로 거대한 풍파(風波) 속에서 목숨을 걸고 고기를 잡는 어부의 노고(勞苦)는 잘 모른다. 다시 말하면 맛있는 농어 한 마리가 내 밥상에 오르기까지 누군가의 목숨을 건 사투(死鬪) 끝에 얻어진 결과물이란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식하지 못하니 당연히 감사하거나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
어찌 보면 천하에는 당연한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오직 내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므로 당연한 것처럼 착각(錯覺)하는 경우만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자각(自覺)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이 그 착각을 과감하게 깨트리고 눈앞에 펼쳐지는 현상을 제대로 인식할 때 감사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기실(其實) 세상은 저절로 달라지는 경우가 없다. 사람들이 굳은 의지를 지니고 노력할 때만이 달라지는 것이다. 더군다나 감사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세상이 달려져 보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먼저 남에게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을 표시할 때 다른 사람도 내게 그러한 마음을 표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나은 사회가 될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당장 지금부터 매사를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어리석은 생각을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매사에 감사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서로를 진심으로 대해 보자. 선비의 고장을 표방하는 우리 영주시민들부터 먼저 감사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을 표시하자.
그리하면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 갖기 운동이 전국으로, 세계로 확산이 되어 살고 싶은 세상,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될 것이다. 그 길은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을 표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는 너무나 평범해 보이는 진리를 실천해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