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은 도시, 4일은 농촌 ‘3도 4농’...“계절변화 느끼니 여행다니는 기분이에요”

여느 지방 중소 도시처럼 영주도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어 지방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당국이 각종 인구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구증가 정책이 출산장려와 귀농 귀촌 운동에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귀향운동으로의 패러다임 변화가 절실하다.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머물고 있는 지역 출향인은 대략 3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에 본지는 이들 출향인이 은퇴 후 자신이 평생 직장생활을 하며 쌓아온 경륜을 귀향을 통해 고향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애향인 인터뷰를 마련했다. 이번 애향인 인터뷰를 통해 인구증가를 위한 귀향정책과 지역발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편집자 주>

문인화로 국전에서 우수상 등 다수 수상

선친이 짓고 형제가 함께 가꾼 옛집으로 귀향 준비중

 

만학으로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 취득하고 대학 강의

핵가족 마저 무너지는 시대, 선비정신은 더욱 필요

국제퇴계학회 학술포럼 시
국제퇴계학회 학술포럼 시
가족모임사진
가족모임사진

영주 출신으로 세상을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 젊은 시절 남녀 차별의 환경 속에 자신의 커리어를 개발해 세상에 두각을 나타내면서도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낸 여성 애향인들도 있다. 귀향을 준비하는 황연섭 박사도 그런 사람이다.

황 박사는 문인화로 국전 우수상 등 다양한 수상을 하고, 국전을 비롯 권위 있는 대회 심사위원도 하며, 자녀를 잘 키워내고 친정 부모와 시부모에게도 자식 도리를 다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다. 황 박사는 나이가 들어 성균관대학 박사과정에 등록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심층적 연구를 하며 박사학위까지 취득했다. 황 박사가 귀향 준비를 본격적으로 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귀향을 하려 하신다구요? 환영합니다. 귀향을 위해 미리 준비도 하고 계신다고요?

요즘 영주시 농업기술센터에서 사과재배 및 농업관련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부부가 같이 교육을 받고 있으니 새롭습니다. 매주 내려와 살 집도 정돈하고 집 주변도 손보고 있답니다.

비워두었던 집이면 손이 많이 갈텐데...

손 볼 곳이 많지 않습니다. 선친이 계실 때 옛집 자리에 새로 지은 집이라 손볼 곳은 별로 없습니다. 또 저희가 6남매인데 가끔 머물기도 한 집입니다. 특히 큰 언니(황춘섭 전 경희대 교수)가 지난 해 초까진 자주 와서 머물렀구요.

부부가 같이 농사 관련 교육을 받는다고 하셨는데 귀농귀촌 부부가 매일 붙어 있으면 다툼도 많아져 스트레스가 높아진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함께 웃음).

우리는 서로 후원을 잘 합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서로 후원하며 살았습니다. 제가 도움을 요청하면 남편이 적극 돕곤 했답니다. 저도 남편을 도왔구요. 선대 고향이 장수면인 남편, 서울에서 나고 자라 농촌을 전혀 경험하지 못했지만 선뜻 용기내어 고맙고 멋져 보입니다.

부부 생활의 모델을 하셔도 되겠습니다. 부부 생활 강의도 하셔야겠는데요?

아이구... 그런 칭찬은 감당하기가...(함께 웃음).

경험 없이 귀농하면 상상하지 못했던 여러 어려움과 맞닥뜨려 후회하는 사례도 많다고 합니다만.

남편이 농사 재주가 있나 봅니다. 지난 해엔 집 근처 주말농장에 심은 고추와 배추, 무 등을 얼마나 잘 가꾸었는지 그 수확물로 김장도 하고 고추장도 담았는 걸요. 주변 농사짓는 사람들이 놀랄 정도랍니다. 저희는 최근 5년 동안 주말 농장을 하며 여러 종류의 농산물을 가꾸기도 했는데, 특히 3년 전 시어른 돌아가시고 남편이 주말 농장을 아주 잘 가꾸더라구요.

시어른들이 돌아가셨군요. 친청에는 어머니가 계시구요?

친정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 건강이 더 걱정됩니다. 청력을 많이 상실하셨고 산책할 때도 옆에서 부축해야 합니다. 안동에서 어머니 모시고 사는 오빠 부부도 요즘 건강이 좋지 않아 걱정입니다. 제가 고향 집에 내려오면 어머니를 고향 집으로 모시고 와 운동도 같이 하고 여기저기 모시고 다니기도 합니다. 어머님은 특히 소녀 감성이 풍부하시고 미적 감각이 뛰어나신 분이라 경치 좋은 카페에 가시는 걸 무척 좋아하십니다. 그 참에 산책도 하구요.

풍기읍 욱금리의 고향집에서 태어나셨는지요?

아버지가 젊은 시절 공직에 계셨는데, 봉화에 근무하실 때 봉화군 석포에서 제가 태어났습니다. 욱금리에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3년 정도 살았습니다. 초등학교부터 안동에 가서 쭉 살았습니다. 아버지가 공직을 그만두시고 안동에서 사업을 시작하셨거든요.

그렇다면 안동을 고향으로 알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함께 웃음)

어머님은 젊은 시절 시집오신 집이라서인지 고향 집에 애착이 강합니다. 부모님이 워낙 욱금동 이야기를 많이 하셨고, 옛집이 남아 있기도 했구요. 아버지 형제분들이 많아 사촌들도 많은데, 사촌들을 만나도 욱금동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더구나 외가는 영주 한절마입니다.

봉화에서 태어났고 영주시의 옛집에는 어릴 때 몇 년 살았고 초중고는 안동에서 보내셨군요.

네. 대학 진학하며 서울로 가 살았습니다. 언니와 오빠가 서울에 먼저 가 있었으니 순차적으로 서울로 갔지요. 그러고 보니 서울을 비롯 수도권 생활이 40년이 넘는 가장 긴 세월이군요.

고전강독회 답사 시
고전강독회 답사 시

문인화로 유명하신데 문인화를 하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대학 전공이 역사인데 당시 중국사와 한국사 강독은 대부분 한문 번역이었습니다. 그때 서예학원에 가면 한문을 가르쳐주는 줄 알고 서예를 시작했습니다. 강원대 명예교수인 황재국 교수님이 당시 경희대 근처에서 서예를 가르치셨는데 거기 다니면서 배웠습니다. 대학 재학 중 방학 때 집에 오면 어머니가 김태균 선생님에게 서예를 배우시는데 따라 다녔습니다.

서예학원에는 가끔 사군자를 그리는 선생님이 오셔서 지도하셨는데 그 때 문인화를 접하고 빠져들었습니다. 그 후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서 그림 감상을 하면서 우리의 옛 그림 특히 문인화에 더욱 빠졌지요. 대학원 석사과정을 미술교육과로 진학한 계기였습니다.

화실을 오랫동안 운영하셨는데 그렇다면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고 화실을 여셨나요?

2004년 국전 우수상을 받고 초대작가가 되면서 화실수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제 화실은 성인들만 오는 곳입니다. 회원들은 각종 공모전에 출품해 입상도 하고 현재 초대작가가 되신 분도 여러 명이 있습니다. 교학상장이라고 가르치고 배우면서 서로 성장한 듯합니다.

문인화 등 그림으로 상도 많이 받으셨다구요?

2004년 국전 우수상 외에 기억에 남는 상은 통일미술대전 국회의장상, 진사서예고시대전 문인화부문 대상, 추사선생 추모 휘호대회, SBS 휘호대회 특선 등등. 젊은시절 한창 공모전에 출품하고 공부할 때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요즘도 화실을 운영하시는지요? 귀촌을 하시면 화실운영은 어떻게 하시려구요?

요즘도 화실을 열고 있습니다. 영주에서 4일, 도시에서 3일... 꼭 정해 놓고 하는 건 아니지만 도시에 있는 날 화실도 열고 강의도 합니다.

수원대 미술관 전시할 때(왼쪽에서 세번째가 황연섭박사)
수원대 미술관 전시할 때(왼쪽에서 세번째가 황연섭박사)

전통사상 공부모임도 하신다면서요?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 취득 후 국제퇴계학연구회에서 활동합니다. 매주 한 번씩 만납니다. 강의도 있고 토론도 있습니다. 올 12월에 제가 발표할 주제는 영주 출신의 백암 김륵 선생에 관한 연구입니다. 국제퇴계학연구회는 연구발표와 토론, 한문강독 뿐만이 아니라 옛 선비들의 흔적을 찾는 답사도 합니다. 매년 ‘퇴계의 마지막 귀향길’ 행사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구요.

옛 선비들에 대한 연구도 하고 계시군요.

박사과정에서 동양미학을 전공했습니다. 동양사상을 두루 공부하며 인생관도 바뀌었습니다. 옛 선비들의 나라와 사회를 위한 기여 외에도 조상을 섬기고 가족을 아끼는 모습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서로 화합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애틋하게 챙기는 모습에 대한 감동이었달까. 선비정신은 핵가족마저 무너지려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하다 봅니다.

앞으로 옛 선비들의 그림에 대한 생각과 그 분들의 사상을 그림으로 나타내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도 계속 연구하고 싶습니다. 퇴계선생 등 여러 선비들이 시로 표현한 매화시를 그림에 담아내는 매화시화첩을 그려보고자 합니다. 또 시골 생활을 해야 하니 농사 배움도 많이 해야겠죠?(함께 웃음)

화실 경영, 주부 역할, 공부, 자녀 교육 모두 성공하셨군요. 자녀들은 모두 독립했구요?

아들만 둘입니다. 큰 아들은 서울대 생명공학 약학박사로 현재 한국과학기술원 책임연구원이고, 작은 아들은 미국 공인회계사로 에모리대학 MBA를 했으며 현재 하나은행 호주 시드니 지점에 있습니다. 큰 며느리는 의학박사로 신촌 세브란스병원 교수이며, 작은 며느리는 뜻한 바 있어 직장을 그만 두고 두 아들 육아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모두들 각자 자기 일에 성실하니 무엇보다 좋습니다.

아드님들이 공부를 잘 했나 봅니다. 혹시 학원으로 몰아내셨던 건 아닌지요?

우리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 예체능 과외 활동은 많이 했습니다. 중고등과정에서는 큰아들은 집에서, 작은 아들은 독서실에서 각자 성향에 따라 공부했습니다. 학원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 특성을 존중해주었습니다.

일주일을 며칠씩 나누어 도시와 농촌 생활을 번갈아 하시는데 완전 귀촌계획은?

수원대에서 여러 해 강의하고 있고, 서울 평생학습관도 두어 곳 출강을 하는지라 도시 생활을 완전히 탈피는 못합니다. 3일은 도시에서 4일은 농촌에서 생활하는 ‘3도4농’을 한동안 해야 할 듯합니다. 무엇보다 도농을 오가며 계절변화를 느끼니 여행다니는 기분이라 좋습니다.

귀향하시는 입장에서 영주시 행정당국 또는 시민들에게 부탁하고 싶으신 게 있다면?

현재 사과재배 교육 같은 정착 도움을 받고 있는데 이런 교육이 있어 매우 고맙습니다. 주거지 주변 인프라 문제를 문의하면 모두들 적극 도와주려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야 아버님 그늘의 옛집에 돌아오니 잘 느끼지 못하지만 외지 귀농귀촌인들은 행정당국이나 주민들로부터 따뜻함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낯선 곳에 가는 사람들이니 그러리라 봅니다. 고향을 지켜주시는 여러분 반갑습니다. 귀향을 반기심에 감사합니다.

                                                황재천 프리랜서 기자

 

 

 

 

 

 

 

 

 

 

황연섭 박사 프로필

- 영주시 풍기읍 욱금리에서 어린 시절 보내고 부친 따라 안동 이주 생활

- 안동 서부초등학교, 안동여중, 안동 여고

- 동덕여대 국사교육과, 동국대 교육대학원 미술교육학

- 성균관대 대학원 유학과(동양미학 전공) 철학박사

- 대한민국미술대전 문인화부문 우수상 및 초대작가

- 서울미술대상전, 경기미술대전 문인화 부문 초대작가

- 대한민국미술대전 문인화부문 심사위 원 3회 역임

-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등 개인전 3회 및 다수 단체전

- (현) 수원대학교 미술대학원 객원교수, 한국미협 문인화분과 부이사장

- 수상 : 대한민국미술대전 우수상, 통일미술대전 국회의장상, 진사서예고시대전 대상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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