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율 (동양대학교 교수)
해마다 새해를 맞으면 되풀이되는 일이지만 사람들은 만나는 사람마다 덕담(德談)을 주고받는다. 이 덕담은 세시풍속(歲時風俗)의 하나로 부모자식간(父母子息間), 혹은 친지(親知)들이 새해를 맞아 서로 나누는 좋은 인간관계의 표징(標徵)이라고 할 수 있다.
대체로 덕담은 과거에는 아들을 낳으라는 생자(生子)와 벼슬을 얻으라는 득관(得官)과 부를 이루라는 치부(致富) 등 상대방이 잘되기를 빌어주는 말이 주를 이뤘다. 그런데 근래에는 복을 받으라는 수복(受福), 몸과 마음이 온전하라는 건강(健康), 바라는 일을 이루라는 성공(成功), 모든 일이 뜻대로 이뤄지라는 만사형통(萬事亨通) 등에 관한 말을 주고받는 일이 일반화됐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덕담의 내용도 조금씩 바뀐 것은 사실이나 근본적인 것에 있어서는 별로 차이가 없다고 하겠다.
덕담은 남을 비방(誹謗)하거나 잘되지 못하도록 저주(咀呪)하는 말인 악담(惡談)과는 상대되는 말이어서 덕담을 주고받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활력소(活力素)나 윤활유(潤滑油)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이 덕담이 근래에는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듣는 사람에게 상당한 부담감을 주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 가운데 듣는 사람이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경우는 바로 위에서 말한 결혼(結婚), 취직(就職), 생자(生子) 등에 관한 덕담이다.
이쯤 되면 말하는 사람은 덕담이라고 생각하나 듣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덕담으로 들리지 않고 악담으로 들린다는 것이다. 확실히 어른으로 대표되는 기성세대와 젊은이로 상징되는 신세대 사이에 덕담을 바라보는 엄연한 시각 차이가 생기는 문화적 간극(間隙)을 이런 경우에 엿볼 수 있겠다. 기성세대는 자신이 최대한 진정으로 축하하는 마음을 담아 전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반면에 신세대는 자신들의 처지를 조금도 헤아리지 못하고 아픈 곳을 헤집는 말로 생각하니 고깝게 들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새해를 맞아서 덕담을 나누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그렇다면 젊은이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굳이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이 생각을 바꿔 그렇지 않아도 힘든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북돋우고 희망을 줄 수 있는 덕담을 해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젊은이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굳이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일찍이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은 덕담의 특색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제 그렇게 되라’라고 축원해 주는 것이 아니라, ‘벌써 그렇게 되셨다니 고맙습니다’라고 단정해서 경하(慶賀)하는 것이 덕담의 특색이라고.
그렇다면 결혼은 왜 하지 않았느냐? 혹은 아직도 취직하지 못했느냐? 또는 아이는 몇 명이나 낳을 것이냐?와 같은 취조성(取調性) 질문을 하지 말고 그들에게 용기를 주거나 이룩한 성과를 격려하는 내용의 덕담을 하는 것이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에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덕담이라도 지금은 덕담이 아니라 젊은이들이 가장 아파하는 곳을 건드리는 말이 되기 쉬우므로 덕담을 먼저 건네는 어른들이 생각을 바꿔 젊은이들을 조금은 배려해 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안 그래도 힘든 젊은이들에게 그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덕담을 건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대학에 합격했다니 축하한다’ 또는 ‘작년보다 건강해졌다니 다행이다’ 등과 같이 내용으로 바꿔 덕담을 건네면 좋을 것이다.
어디 덕담만 그렇겠는가? 요즈음 들려오는 이야기는 온통 과거의 덕담처럼 너무 심한 상처를 주는 말들이 난무하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용기를 북돋워 주는 말은 참으로 듣기가 어렵고 온통 남의 잘못이나 부족한 점을 어떻게 하면 더 아프게 찌를 수 있을까 서로 경쟁하듯이 말하고 있다.
이런 말이 있다. ‘칼에 베인 상처는 쉬 아무나, 말로 베인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라고. 그리고 ⌈명심보감(明心寶鑑)・언어(言語)⌋에 ‘입은 사람을 상하게 하는 도끼이다[구시상인부(口是傷人斧)]’라고 나와 있다. 그러니 말을 조심해야 한다. 말을 잘못하면 설화(舌禍)에 휩싸이고 글을 잘못 쓰면 필화(筆禍)에 걸리기 때문에 말과 글을 항상 조심해야 한다.
한편 말과 글을 조심하려면 항상 양(梁)나라 주흥사(周興嗣)의 ⌈천자문(千字文)⌋에 나오는 이 말을 꼭 기억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의 단점을 말하지 말라[망담피단(罔談彼短)]’라는 말을.
부디 새해에는 내가 말하거나 글을 쓸 때 이 말과 글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를 먼저 깊이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쓰자. 글은 그래도 써놓고 없앨 수 있지만 말은 입에서 한번 내뱉으면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으므로 더욱 조심해야 한다. 발화(發話)하는 순간 사라지는 말이 글보다 훨씬 더 오래도록 사람의 뇌리에 남아 상처를 주기 때문에 말을 신중하게 해야 할 것이다.
이제 올해 신정(新正)은 이미 지났으니 어쩔 수가 없고 돌아오는 설날에는 덕담을 주고받을 때 유의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삼가고 희망과 용기를 주는 말을 해 모두가 화목하게 지낼 수 있는 새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