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남 (작가)

2024년 갑진년 청룡이 힘차게 날아올랐다. 동양 신화에서 청룡은 강하고 진취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상서로운 동물로 알려져 있다. 청룡의 해를 맞이하여 한 해의 계획과 또 다른 출발을 위해 저마다 새로운 각오와 마음도 다질 것이다.

한해의 첫머리 1월 1일, 해는 매일 맞이하지만 새로움이란 의미 부여가 더해지고 보니 설렘이 앞선다. 그래서일까, 새해의 문이 열리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와 같은 카카오톡 알림 음이 시도 때도 없이 울리기 시작했다.

카톡방마다 붉은 태양이 둥글게 떠 있고, 청룡이 금방이라도 휴대폰 화면 뚫고 나올 듯 한 기세로 새해 인사말을 달고 날아들었다. 모두 덕담의 꼬리표를 단 축복의 메시지였다. 단체 카톡방에서는 미처 읽지 못한 이미지나 비슷한 내용의 메시지들이 붉은 숫자로 범람했다.

‘덕담’에는 언령관념(言靈觀念)이 깔려 있어야 한다. 상대방에게 “그렇게 돼라”라고 축원하는 것이 아니라 “벌써 그렇게 되었으니 고맙다”라고 경하하는 의미로 쓰이는 것이라고 육담 최남선 선생이 ‘언령관념’에서 말한 바 있다.

이처럼 ‘말한 대로 될 것’이라는 믿음에는 응원의 마음과 진심을 전하는 말의 진중함이 느껴진다. 그러니 어딘가에서 쉽게 구한 이미지나 글을 가볍게 퍼 나르는 것,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모임, 지인, 등 누군가 새해 인사를 올리면 마치 눈치 게임이라도 하듯이 하나둘씩 답장이 쌓이기 시작하는데, 답장도 비슷한 내용을 복사해서 붙여 넣기를 반복할 뿐 새로운 건 없다. 형식적인 인사치레가 쌓여갈수록 마음이 편치 않다. 혹여라도 예의 없고 무심한 사람으로 찍히지나 않을까 걱정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밴드에서도 비슷한 상황이다. 희망찬 포부를 밝히는 목적성 있는 인사가 수두룩하다. 때 되면 찾아드는 철새 같은 홍보 문구로 보일 뿐, 덕담으로 읽히진 않는다. 또 하나 원치 않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으로부터 이런 메시지를 받을 경우, 불쾌함을 넘어 나의 정보가 어디까지 퍼졌을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수직적인 인간관계에서는 메시지를 읽고 답장을 하지 않는 것은 마음의 짐이 될 수도 있다. 직장이거나 어느 단체에 소속된 경우라면 무시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카톡방을 뜨겁게 달구는 비슷한 문구에 일일이 답장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적지 않은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진심이 드러나지도 않는 비슷한 내용에 가볍게 응수하자니 도리어 성의 없어 보일까 염려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런 현상은 디지털 혁명으로 새롭게 탄생한 문화의 그늘이 아닐까. 모바일로 터치 한 번 새해 인사가 가능한 시대가 된 것이 그리 기쁜 일은 아닌 것 같다. 편의성이 예의와 배려를 앞설 순 없을 것이다. 예전에는 손수 그림을 그리거나 정성 들인 문구를 직접 써서 연하장을 보내거나 전화를 하는 방식이었다. 가까운 이웃은 얼굴을 보며 직접 덕담을 건넸다.

이렇게 가족이나 이웃, 아주 가까운 지인들에게만 마음을 표현하는 정도였다. 요즘은 범위가 무제한으로 늘어났다. 단톡방은 그 방의 성격에 맞는 공지 글을 위함일 테고, 지극히 개인적인 것들은 개별적으로 연락하는 게 옳을 것이다. 단톡방에 공지 글이 아닌 사적인 글이 올라올 경우 더러 난감할 때가 있다.

아주 긴밀한 사이가 아니라면 인사 문구만 덜렁 보내는 형식적인 문자는 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형식적인 인사말은 과연 어디까지가 적당한 범위인 걸까. 적당선이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기에 애매하긴 하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어디까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적합한 합의가 필요해 보인다. 무엇이든 밝은 곳이 있으면 어두운 면도 있기 마련이다. 카카오톡이 편리함이나 각종 서비스 면에서 빛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보다 새로운 공해의 주범이라는 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 넘쳐나는 정보의 무분별한 살포는 스트레스 요인이 되기 쉽다.

특히 명절이나 기념일이 괴로운 이유다. 여기저기 무작위로 떠돌아다니는 익숙한 카드 한 장으로 자신의 마음을 충분히 표현했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메시지를 받는 입장에서는 그것이 보내는 사람의 진심이라고 읽힐지는 의문이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쉽게 퍼 나르는 메시지의 공해, 새로운 문명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그늘이 아닐지. 비록 짧은 문장이더라도 진심이 담긴 안부를 전하면 어떨까.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www.yjinews.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