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 브랜드, 과거 이미지 벗고 현재와 미래를 비추어야

여느 지방 중소 도시처럼 영주도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어 지방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당국이 각종 인구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구증가 정책이 출산장려와 귀농 귀촌 운동에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귀향운동으로의 패러다임 변화가 절실하다.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머물고 있는 지역 출향인은 대략 3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에 본지는 이들 출향인이 은퇴 후 자신이 평생 직장생활을 하며 쌓아온 경륜을 귀향을 통해 고향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애향인 인터뷰를 마련했다. 이번 애향인 인터뷰를 통해 인구증가를 위한 귀향정책과 지역발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편집자 주>

형편 어려운 사람 변호, 2021년도 최우수 국선변호인 선정

변호사로 여러 기관의 자문, 심의, 상담 업무로 사회 기여

영주 다녀온 자녀가 바뀌었단 평을 듣는 프로그램 운영 필요

영주중학교 재경동창회장으로 취임한 김태주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변호사로 여러 지자체, 의회, 공사, 정부기관, 단체에서 자문, 심의, 상담 업무도 하면서 봉사차원의 국선변호인 활동도 한다. 김 변호사는 코로나19펜데믹 이전엔 고향출신 모임에도 왕성하게 참여했다. 고향의 사정에도 밝은 그를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고향인 문수면의 들과 산 그리고 내성천에서 초등학교 졸업 시까지의 그 시기가 자신에게 가장 행복지수가 높다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미래세대 교육환경 조성과 영주의 회생에 대한 대화가 특히 인상 깊었다. 고향에 자주 오느냐를 첫 질문으로 시작했다.

영주에는 자주 내려 오세요?

부모님이 영주에 계십니다. 요즘 아버님이 편찮아 최근 3개월 병원에 계시면서 노모(93세)께서 홀로 집을 지키고 계신 관계로 더욱 자주 내려가는 편입니다.

양친의 연세가 높으니 걱정이 많겠습니다. 옛 고향 마을에 계시나요?

두 분 다 잔병 없이 지내셨습니다만 이젠 워낙 고령이라... 시골에서 농사짓는 분들의 특성인 병원에 가지 않으셨지만 무탈하게 지내셨는데 이젠... 워낙 고령인지라... 걱정입니다. 부모님 계신 곳은 문수면 만방리 자만동입니다. 제가 어렸을 적엔 약 30가구 정도였는데 이젠 10가구도 안 남았습니다. 다행히 몇 분이 외지에서 들어와 사시고 계십니다.

부모님을 위해 고향 마을에 새로 지은 집
부모님을 위해 고향 마을에 새로 지은 집

학교 생활을 고향에서 하셨나요?

문수면 문수중부초등학교를 산을 넘어 다녔습니다. 지금은 통합됐지만, 그때만 해도 한 학년에 2개 반은 있었거든요. 한 반에 60명 넘게. 지금은 모든 학년 다 합해 옛 한 개 반 정도라고 하니... 초등학교 땐 노는 게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6학년 때 간신히 우등상을 받기도 했지만, 공부가 뭔지도 몰랐습니다.

마을과 산과 들 그리고 개천에서 매일 노는 게 좋았습니다. 숙제도 잘 안 해 작은 누나가 걱정하며 대신 하곤 했습니다. 숙제가 없어도 공부한다는 친구들을 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으니까요(함께 웃음).

공부하지 않았음에도 모교인 영주중학교 입학할 수 있었던 건 한두 해 선배 때부터인가 소위 뺑뺑이 덕입니다(함께 웃음). 중학교 들어가서는 공부가 뭔지도 알고 하는 만큼 성적이 나오는 것 같아 재미 붙여 열심히 했습니다.

교통이 불편한 시대였잖아요. 문수에서 등하교하기에는 너무 멀었지요?

제가 중학교에 갈 무렵 큰누나가 고3, 작은누나가 중3이었는데, 그동안은 누나들이 기차 타고 통학을 했는데 3명이나 시내 학교를 다니게 되니, 부모님께서 3남매를 묶어 시내에서 자취를 하게 해 중학교 때부터 부모님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예전엔 누나가 동생을 많이 챙겼다지요. 고향을 지키는 분도 계신가요?

누님 둘이 중학교 때부터 대학까지 절 따라다니면서 뒷바라지하신 셈이지요, 저희가 5남매인데 넷은 수도권에 있고 큰 누님이 몇 년 전 부모님 근처로 귀향하셨습니다.

아버님이 병환으로 서울의 병원에 몇 달 계실 때 큰 누님이 제일 고마웠지요. 어머니가 고령에 귀가 어두우시거든요. 전화 소리도 잘 듣지 못하실 정도인데 큰 누님이 곁에 계시니 안심이 됩니다.

고등학교는 외지로 나가셨더라구요?

아버님은 장남을 멀리 떨어뜨려 놓기 싫고, 큰 도시로 가면 돈도 많이 들 것 같았는지 가까운 안동고를 가라 하셨지만 제가 대구로 가겠다고 고집을 피웠지요, 대구에 친척들도 있었거든요.

당시 대구 연합고사를 봤는데 중학교 선생님이 제가 영주에서 연합고사 최고 점수를 받았다고 하시더라구요. 대구고 앞에 고모님 댁이 있었습니다. 고모님 댁 밑에 방을 하나 얻었습니다. 큰누나가 저를 돌봐주기 위해 내려왔습니다.

고향의 산 소백산 비로봉에서
고향의 산 소백산 비로봉에서

대학은 고려대 법대를 다니셨는데 원래 꿈이 법조인이었나요?

법조인의 꿈은 아주 어릴 때인 초등학교 시절 이미 정해졌던 것 같습니다. 아주 어릴 때 근처 마을 ‘어실’에서 유 판사(유승민 의원 부친)가 났다고 소문이 자자했고, 암행어사처럼 탐관오리를 벌주고 착한 사람을 돌보는 정의로운 일을 하는 것 같아, 그와 같은 말을 듣고 자란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어릴 때 자신의 꿈을 정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어릴 때 꿈을 가질 수 있는 환경과 교육이 필요합니다. 학교만이 아닌 우리 문화가 그런 환경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대학 어떤 학과를 가야 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꿈을 가지고 있다는 아이들도 실제로는 자신의 꿈이 아니라 부모가 주입한 꿈이기도 하더군요.

변호사 업무를 하시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자문, 심의, 상담을 하셨고 지금도 하시더라구요. 그런 경험을 토대로 자라나는 고향의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말씀을 부탁합니다.

제가 그런 경륜이 있는지... 자식 키우며 또 제가 살아온 시절을 반추해 볼 때, 젊은 날에 꿈을 크게 가졌으면 합니다. 남이 허황된 꿈이라고 할까 내놓고 말하지 못할망정 꿈은 크게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꿈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가 굳어야 하며 쉽게 꺽이거나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또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큰 꿈, 꿈을 향한 의지, 그리고 자신감.. 이 세 가지만 있으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봅니다.

동감입니다. 어릴 때 꿈을 갖지 않는 게, 변화가 심한 시대라 시대가 급변하면 가진 꿈이 시대에 맞지 않은 것이 될까봐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또 다른 이유도 있겠지요?

큰 꿈을 가지면 시대가 변화해도 그 꿈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물질만능시대라 하잖아요. 사람 평가를 돈으로 많이 합니다. 이런 시대에는 사람들이 가치관의 혼란을 겪습니다. 나름의 기준과 철학을 갖지 못하고 눈앞의 보이는 것만 쫓다 보니 방황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물질문명의 엄청난 혜택을 받습니다만 실제 행복지수를 따지면 다릅니다.

저의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초등학교 시절입니다. 스트레스 제로였습니다. 그때 초가집에 전기도 없던 시절인데 행복했습니다. 그때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신의 꿈과 가치관을 갖고 행복을 추구했으면 합니다.

변호사 생활을 하시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을 소개하시면? 2021년 최우수 국선 변호인에도 선정되셨고..

살아 보니 제게 잘 맞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게 보람이고 행운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10여 년 이상 국선변호인을 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 자신의 처지를 제대로 논리적으로 방어하지 못해 억울할 수 있는 분들... 이 분들의 변호를 하는 게 어려운 면도 있지만 보람이기도 합니다.

나중에 고마움을 표시하는 분들을 보면 더욱 보람이 있구요. 최우수국선변호인 선정은 정말 생각지도 않은 감동이었습니다. 나름 어려울 때도 있었는데 그런 걸 판사님들이 다 알고 계신 것 같아 고맙기도 했습니다.

재경 영주중 25회 동창회 때 향우들과(앞줄 가운데_ 김변호사)
재경 영주중 25회 동창회 때 향우들과(앞줄 가운데_ 김변호사)

재경영주중학교 총동문회장이시지요? 그 전에도 향우회 활동을 하셨구요?

재경영주중학교 총동문회장은 얼마 전에 맡았습니다. 재경영주시향우회는 전에 열심히 했습니다만 한동안 뜸했습니다.

2001년경 진창희 회장님 때 참여해서 이두식 교수님이 회장이실 때 열심히 활동했었는데... 그 때 왕성하게 활동하셨던 선배님들이 세상을 뜨거나 고령이 되시면서 저도 향우회 활동이 뜸해졌습니다. 다시 향우회가 살아나리라 기대합니다.

지방소멸화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우리 영주시도 그 속에 있습니다. 여러 활동을 하시면서 또 고향에 자주 오시면서 느꼈던 점들이 많을 겁니다. 몇 가지만 말씀해주시지요.

경제 활성화가 중요합니다. 경제 활성화엔 기업유치가 있는데 기업유치를 하려면 근무자들이 오고 싶은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자녀를 위해 영주로 가고 싶은 그런 교육과 문화 환경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특히 영주는 관광자원, 먹거리, 정신문화, 온천 등이 있어 외지 사람들의 관광 등 유입요인이 많은데 이를 잘 버무려서 영주의 정체성과 브랜드 가치를 높여 가보고 싶고, 머물고 싶은 도시로 육성해야 할 것입니다. 대형숙박시설도 필요합니다.

몇 년 전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30여 분을 모시고 버스 한 대로 영주를 다녀왔습니다. 소수서원, 부석사, 풍기인견, 풍기인삼, 영주한우 순으로 다녔는데 이렇게 볼거리와 먹거리가 풍성한 곳은 처음이란 의견이셨습니다.

특히 여성분들은 풍기인견에 매료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고향에 갈 때 일부러 죽령고개를 넘어 가곤합니다. 죽령고개를 넘어가다 보면, 선비의 고장이라고 쓰여 있는 팻말을 보게 되는데, 영주가 ‘선비정신’을 브랜드로 잡은 건 잘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선비’를 과거에 묶어 두고 있단 느낌입니다.

네. 선비가 추앙받는 이유도 당시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선비들의 그런 정신과 행적을 이 시대에 또 미래 시대에 맞게 조명해야...

바로 그겁니다. 고리타분한 선비란 느낌이 들지 않게 우리 정신문화의 지주인 선비, 새로 불러내야 합니다. 선비를 활용한 구체적 프로젝트를 해야 합니다.

자녀를 방학 기간 며칠 영주에 보냈더니 다른 사람이 되어서 왔더라 란 이야기를 듣는 프로젝트도 만들 수 있잖아요. 물질만능 시대지만 뚜렷한 주관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자녀를 대부분 부모가 바라잖아요.

선비정신을 시대에 맞게 뭔가 특별한 것을 하고 누구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것을 해서 그것이 영주의 브랜드이자 아인덴티티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황재천 프리랜서 기자

 

 

 

 

 

 

 

 

김태주 변호사 프로필

- 문수중부초등학교, 영주중학교, 대구 달성고

-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단국대 행정대학원(행정학석사)

- Harvard Law School 연수

- (현)변호사김태주법률사무소 변호사

- (현)서울시의회 입법·법률고문

- (현)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 (현)강남구, 송파구 법률고문

- (현)한국자산관리공사 법률고문

- (현)서초문화원 감사

- (전)대학, 지자체, 공사, 소비자단체, 법원, 문화원 등 다양한 기관의 감사,

   심의, 조정, 고문 역임

- (수상)2021년도 최우수 국선변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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