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경 (수필가)

계묘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다. 늘 이맘때가 되면 지나온 날과 남은 날에 대한 희비가 엇갈린다. 지나간 열한 달과 남은 한 달, 그 사이에 낀 현재와 마주한 지금, 여러 감정과 맞닥뜨리게 된다. 매 순간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은 날은 없었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일궈 낸 날이 한 주, 한 달, 일 년으로 이어지면서 한 생을 기록하고 있다.

개인마다 한 해의 의미는 특별함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여행하는 게 보편적 일상이지만 당사자에겐 그의 존엄성을 세우는 특별한 시간이 된다. 타인의 눈으로 봤을 땐 감흥 없는 그저 그런 일에 불과해도 당사자에겐 삶의 소중한 가치이며 의미 부여다. 각자에게 주어진 그 시간은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개인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한 사람을 중심에 두면 그는 주인공이 된다. 특별나지 않아도 특별한 눈으로 바라보면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주위를 살펴보면 귀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모두 세상이 필요로 해 태어났기에 존재의 가치는 충분하다. 개인의 삶을 들여다보면 사연 깃들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로 서사로 채워져 있다. 무리 중에는 유독 돋나 보이는 사람도 있을 테고, 있는 듯 없는 듯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이도 있을 것이다. 다들 특별나고 귀한 사람이기에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사랑받을 자격은 충분하다.

우리네 삶이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는 경우도 있지만, 뜻하지 않은 일 앞에 전혀 다른 길에 들어설 때가 있다. 뜻밖의 걸림돌 앞에 좌절하기도 하고 무너져 내리기도 한다. 그럴 때 그 개인에게 맞닥뜨린 난제가 얼마나 버겁고 힘든지를 생각해 보자. 그를 이해한다면 대가성 없이 무한의 응원을 보내줘야 한다. 특별한 눈으로 바라본다는 건 관심이다. 무관심이 차가움이라면 관심은 따뜻함이다. 그 따뜻함에는 언제나 이해와 배려가 함께 한다. 공유하며 위로하는 인간적 교감인 것이다.

필자의 2023년 키워드라면 단연 특별함이다. 내세울 것 많고 잘나서 특별난 게 아니라 누구라도 중심에 세우면 그는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한 생을 일군 삶이 그 개인에겐 주체자로서 충분히 특별하기 때문이다. 간혹 특별한 대접을 받고자 본인을 유독 돋보이려는 이도 있는데, 말로 몸짓으로 자신을 과시하는 순간 그는 지금껏 쌓아 올린 공을 한순간 무너뜨리게 된다. 때론 세상이 옳고 그름을 판단해 주듯 부당한 것도 시간이 정리해 줄 때가 있다. 부당함을 위해 너무 애쓰지 말고 진실하게만 살면 될 일이다.

필자 역시 올 한 해 많은 일을 겪었다. 다양한 일을 경험하며 삶의 진정한 가치를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우리 사회에서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일이 왜 중요한지, 그것을 바라보는 정직과 양심이 사회에 끼칠 영향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였다. 때론 그 주제로 지인들과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간혹 비상식적이고 부당한 것이 중심에 서는 걸 보면서 혼란을 겪기도 했다. 이권 앞에 무너지는 양심을 보며 실망감도 감출 수 없었다. 사필귀정이라고, 무슨 일이든 결국 옳은 이치대로 돌아간다는 걸 믿을 뿐이다.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고자 할 때 갈림길에 설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내리는 결정은 하지 않음으로 후회가 찾아올 것 같으면 하고자 하는 그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면 상관없지만, 하지 않음으로 훗날 후회가 밀려올 것 같으면 그 일은 꼭 하라고 권하고 싶다. 실패하더라도 후회와 맞바꾸는 일만은 절대 있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2023년 12월 한 달이, 올 한 해를 열심히 산 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달이었으면 한다. 수고한 날에 대한 보상으로 자신에게 애썼다고, 사랑한다고, 용기 내어 말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12월이 가기 전, 늘 타인에게만 전하던 선물을 자신에게도 건네보자. 꽃 한 송이도 좋고 작은 선물도 좋다. 내 안의 나에게 선물을 건네는 자신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를 보여주자. 선물을 건네고 받는 순간, 나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대접을 받는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구겨진 마음은 펼치고 뭉쳐진 마음을 걷어내는 12월, 남의 눈치 살피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감정을 귀히 여길 줄 아는 12월, 수고한 손길이 대접받는 따뜻한 달이었으면 한다. 올 한 해를 열심히 살아온 모든 이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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