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영주 “들렀다 가는 곳이 아니라 머무는 곳이 됐으면 좋겠어요”

여느 지방 중소 도시처럼 영주도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어 지방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당국이 각종 인구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구증가 정책이 출산장려와 귀농 귀촌 운동에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귀향운동으로의 패러다임 변화가 절실하다.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머물고 있는 지역 출향인은 대략 3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에 본지는 이들 출향인이 은퇴 후 자신이 평생 직장생활을 하며 쌓아온 경륜을 귀향을 통해 고향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애향인 인터뷰를 마련했다. 이번 애향인 인터뷰를 통해 인구증가를 위한 귀향정책과 지역발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편집자 주>

입소문, 맘카페 등 통해 수많은 사람 찾는 한의사

교회 통해 농촌과 외국인 대상 한의 봉사 펼쳐

 

최근 서울 강서노회 장로회(예장통합) 회장 선임

명맥 끊어진 향우 골프동호회 다시 만들고 싶어

금동한의원 김영동 원장의 하루는 매일 치열하다. 매일 수많은 환자가 온다. 침을 잘 놓고 한약을 잘 짓는다고 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나이 지긋한 사람은 소문을 듣고 젊은이들은 맘카페 등 인터넷 검색을 통해 온다. 그는 많이 웃고 복 받고 복을 나누는 하루하루가 건강에 좋다고 당부한다. 재경영주시향우회 단톡방에도 매일 이런 메시지를 자주 올린다.

김 원장은 광명시 한의사회 회장을 10년 넘게 역임했고 남광교회 장로이며 얼마 전 서울 강서노회 장로회(예장통합) 회장으로 선임됐다. 토요일도 근무하는 김 원장과의 인터뷰는 토요일 밤에 이뤄졌다.

재경영주시향우회 단톡방에 꾸준히 일상의 모습으로 삶의 지향 메시지를 올리십니다. 남의 것을 퍼다 옮기는 내용이 아니더군요.

기자님도 보시는군요. 저와 연락하는 향우회 선후배님들이 그런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 말씀을 들을 때마다 제가 감사합니다. 매일 많이 웃으면 복이 오고 또 복을 나누어주는 삶이 개인을 넘어 사회도 건강하게 한다고 봅니다.

한의학을 전공한 계기가 있는지요?

어릴 때의 반공 교육 탓도 있습니다. 전쟁 관련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전쟁이 날 것 같았습니다. 전쟁 나면 대부분 사람이 일을 못 하잖아요. 전쟁 나면 무얼 할까 고민도 했습니다. 전쟁이 나도 할 수 있는 건 의료라 생각했습니다. 전쟁통에도 할 수 있는 직업, 의사의 꿈을 가졌습니다.

공부하면서 보니 의사들은 많은데 한의사는 별로 없더라구요. 남들이 하지 않는 걸 하는 게 더 보람이 있겠다 싶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국사 선생님이 앞으로 한의사도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말씀들에 자극받아 한의사의 길을 걷기로 했습니다.

학부만 나와도 한의사 개업을 할 수 있지 않나요? 한의학박사 학위까지 취득을 하셨더군요.

한방은 수련과정이 따로 없습니다. 한의대만 나와도 바로 한의사로 활동할 수 있는데 수련과정 같은 과정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나라는 한방병원이 적다 보니 수련과정 같은 걸 제도적으로 정립하지 못한 면이 있습니다.

저도 엄밀히 말하면 수련과정을 거친 것은 아니고 로컬에서 일을 하다 대학원에 들어가 공부를 더 했습니다. 박사 학위를 갖고 있으면 내원하는 분들이 더 신뢰도 하구요. 공부를 더 했으니 치료도 더 잘 임할 수 있고...

한의원개원 초창기 받은 표창장(1995.2.17)
한의원개원 초창기 받은 표창장(1995.2.17)

금동한의원을 창업하셨지요? 개원은 언제 하셨나요?

경희대 한의대를 88년도 졸업하고 구로동 모 한방병원 1개월 보름 근무하다 환자 편 든다고 짤렸습니다. 그 후 제기동 약령시장에서 관리원장 6개월, 강원도 간성에서 관리원장 1년, 서울 방배동에서 부원장 2년 하다 제가 다니는 교회가 광명으로 이사하면서 저도 광명시 하안동에서 개원해 31년째 진료 중입니다. 석사 과정은 한의대 졸업 후 바로 했고 박사과정은 40대 초반에 했습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으로 시작했습니다. 박사 과정 중 제일 힘들었던 게 영어시험 통과였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거의 20년 만의 영어시험이었는데 그래도 한 번에 통과했습니다. 박사 학위를 취득하니 부모님께서 흐뭇해하시던 게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효도하셨습니다. 한의원을 하시면서 보람도 크겠군요.

금동한의원이 있는 광명시 인구가 28만 정도인데 저희 환자 챠트 번호가 현재 7만3천번입니다. 연인원으로 광명시 인구 보다 더 많을 것 같습니다. 제게는 뿌듯한 숫자입니다. 이집트 왕진 기억도 납니다. 환자는 아랍 공주였습니다. 광명시 한의사회 회장을 12년 했습니다. 회원들이 자꾸 미는 바람에 오래 했습니다. 현재 광명시 한의사회 총회 의장을 맡고 있습니다.

고향 이야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어디에서 태어나셨나요?

풍기읍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아버지께서 풍기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계셨습니다. 6살까지 풍기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가 영주 시내로 학교를 옮기시면서 저는 영주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졸업했습니다. 중학교는 영주중학교를 다녔습니다.

고등학교부터는?

대구 영남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이모댁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보냈습니다. 큰아버지도 대구에 계셨지만 이모집이 더 편했나 봅니다. 직장생활하는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자녀를 많이 챙겨야 하잖아요. 그러려면 아무래도 이모집이 편했으리라 봅니다.

사실 그때는 부모님이 가 있으라니 아무 생각 없이 이모댁에 가서 묵었습니다. 당시 영주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안동으로 가는 친구들도 있었고 대구로 간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안동은 통학 열차를 타고 다닌 친구들도 있는데 대구는 대부분 연고 찾아 진학했던 것으로 압니다.

중학교 때 공부를 잘 하셨군요. 당시 공부를 잘 하고 연고가 있으면 큰 도시에 유학을 보내라고 주변에서 권고도 하고 그랬잖아요.

네. 성적이 좀 좋았습니다. 당시 영주에 ‘문화영수학원’이라고 있었는데 3년 내내 다녔습니다. 그 때 학원비가 한 과목에 1천100원이었습니다. 학교 다니듯 ‘문화영수학원’에 다녔습니다. 영어와 수학공부가 좋기도 하고 공부도 많이 했습니다. 그 때 공부가 밑바탕이 되어 영어를 좀 하는 편입니다.

부친을 뵙고
부친을 뵙고

형제분이 어떻게 되나요? 영주에 계신 분도 있구요?

저는 4남매의 셋째입니다. 큰형님과 막내인 여동생이 영주에 삽니다. 큰형님은 교편을 잡고 계시다 퇴직하셨고 작은 형님은 저와 함께 일하시다 퇴직하셨습니다. 막내는 코레일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영주에는 자주 오시는지요?

자주 가지 못합니다. 제가 교회에서 장로로 봉직하고 있습니다. 일요일에 교회에 나가야 합니다. 제가 40세부터 장로가 되어 벌써 20년 넘었습니다. 장로 봉직을 하다 보니 교회에서 할 일이 많습니다. 교회를 통해 농촌 현장 한의 봉사도 했습니다. 김포에선 외국인노동자 대상으로 한의 봉사를 했구요. 지난 10월엔 강서노회 장로회 회장으로 선임되어 봉직하게 되었습니다.

일찍 교회에 나가셨나 봅니다.

저희는 외할아버지가 영주제일교회 장로이셨고 아버지도 은퇴하셨지만 영주제일교회 원로장로로 계셨습니다. 아버지는 현재 영주에 계시며 93세입니다. 어머니는 20년 전 돌아가셨습니다.

부친이 장수하십니다. 건강은 어떠신지요?

연세가 있다 보니 거동이 힘드시고 주로 집에 계십니다. 새어머니가 계시고 두 분이 서로 의지하며 지내십니다. 노년 재혼 성공률이 낮다고 하는데 잘 지내십니다. 자식들로서는 참 감사한 일입니다. 요즘 자식들도 늙어가는데 윗대 부모님 모시는 게 쉬운 일이 아니기도 하구요.

서울강서노회 장로회 회장으로 선임(왼쪽에서 다섯번째가 김원장)
서울강서노회 장로회 회장으로 선임(왼쪽에서 다섯번째가 김원장)

향우회 활동은 재경영주시향우회 중심으로 하셨는지요?

한성cc에서 향우회 골프동호회인 영지회 총무를 오래 하며 훌륭한 선배님들을 많이 뵀습니다. 작고하신 강신옥 변호사님을 비롯 강석심 회장님, 박형규 회장님, 권화집 회장님, 김노겸 회장님, 김두식 선배님, 서건식 선배님, 강형창 회장님, 허정규 선배님 등등... 선배님들 연세가 들며 골프동호회가 없어졌습니다.

현재 저와 권화집 선배님이 골프 모임을 양지파인에서 하고 있습니다. 다시 영주향우회 골프 모임을 시작했으면 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영주시도 지방소멸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걱정입니다.

걱정입니다만 전반적 트렌드입니다. 저의 초등 시절 한 반에 65명씩 8개 반이 있었는데 영주초가 없어질 수 있다더군요. 지방공동화 현상이 우리나라 전체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네. 주민을 늘리지 못하더라도 영주시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도록 하는 건 더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

제가 잘 모르는 문제인데... 가서 묵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하는 숙박시설, 볼거리, 먹거리, 놀거리를 활성화하면 좋겠습니다. 골프장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소백산, 엄청 좋은 산인데 접근성이 떨어집니다. 등산 목적인 분도 계시겠지만 대부분 짧은 시간에 소백산을 감상하려 합니다. 케이블카 등 투자가 필요하다 봅니다. 유명한 곳도 많은데 그냥 들렀다 가는 곳이 아니라 좀 더 머무를 수 있게 했으면 합니다.

음식 맛도 중요합니다. 스위스에서 쌀국수 한 그릇을 3만 원에 먹었습니다만 가성비가 중요합니다. 맛 없다면 맛 대치 효과가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몸에 좋다던지... 풍기인삼도 있잖아요. 좀 더 사람들을 끌 수 있는 투자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영주를 더욱 사랑하고 영주 발전을 위해 기도하고 노력하겠습니다.

토요일도 환자를 보시던데.. 가족 생활에 문제가 없나요?(함께 웃음)

어릴 때 취미란에 여행이라 적었습니다. 한의원과 교회 일로 바빠 여행이 힘든 형편이었으나 큰딸을 통해 실현됐습니다. 큰딸이 영국 맨체스터대 진학하고 방학 때 울 부부와 작은딸을 영국으로 오라 해 영국 땅을 밟아 봤습니다. 그걸 계기로 코로나19 전까지 1년에 한 두번 한 번에 보름씩 유럽 여러 나라를 비롯 지금까지 25개국을 다녀왔습니다.

최근 가 본 곳이 미얀마입니다. 제 아내가 비즈니스석 아니면 안 탄다고 해 덕분에 비즈니스석을 타고 다녔습니다. 돈이 별로 없어도 아내 말을 제가 잘 듣습니다(함께 웃음)

                                                            황재천 프리랜서기자

 

 

 

 

 

 

 

 

김영동 원장 프로필

- 영주초등학교, 영주중학교

- 영남고등학교

- 경희대 한의대

- 경희대 한의대 대학원 한의학박사

- (현)금동한의원 원장

- (현)광명시 한의사회 총회 의장

- (현)광명시 남광교회 장로

- (현)서울시 강서노회 장로회(예장통합) 회장

- (수상)광명시장 표창장,

대한예수교장로회 전국장로회연합회 공로패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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