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복 (소백산백년숲 사회적협동조합 이사)

밤 11시 30분이 되자 역무원들이 사람들을 모두 내보내고 대합실을 청소했다. 청소를 마친 역무원들은 대합실 문을 열어두고 퇴근했다. 문이 열리자 노인들이 모여들어 대합실을 가득 메우고 자리를 다투고 담배꽁초를 두고 싸웠다. 집을 나온 노인들이라고 했다. 옷에 변을 본 이도 있었고 기침을 심하게 하는 이도 있었다.

매캐한 담배 연기와 구린내가 자욱한 대합실에서 한잠도 못 자고 지새웠었다. 조치원역에서 목격했던 참상은 대전역, 광주역에서도 똑같이 목격되었다. 1982년 12월 말, 스무 살 청년 때 친구들과 떠났던 여행에서 겪었던 일이다.

국민소득 1000불, 100억 불 수출 목표를 초과 달성했던 1980년대의 부강한 나라 대한민국은 집에서 쫏겨난 노인 문제를 쉬쉬하며 다뤘었다. 갈 곳 없는 노인들이 모여드는 기차역 대합실 문을 열어두는 역무원들의 친절만이 당시 우리 사회가 집 나온 노인들에게 제공했던 복지의 전부였다.

노인들이 밖에서 동사하는 사고를 막으려고 내려진 지침이리라 짐작했었다. 한 줌도 안 되는 파렴치한 군인들이 광주를 피로 물들이고 죄 없는 이들을 잡아다 삼청교육대에서 매질하며 나라를 도적질하고 있었을 때, 민생은 도탄에서 헤매고 있었다. 어려운 형편 때문에 노인들이 집에서 나와 차가운 거리를 몰려다니고 있었던 것이었다.

요즘 우리 사회의 복지는 아름답다. 어르신을 돌보고 사회적 약자를 보살피는 데 빈틈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미래의 전망은 어둡다. 치솟은 집값을 떠받치자고 국고로 이자를 보전해주며 집을 사도록 했고, 갖은 핑계를 지어내 여유 있는 계층의 세금을 깎았다. 투자와 상관없음이 입증된 법인세를 인하했고, 갖은 방법을 동원해 종부세를 낮췄다. 그뿐만이 아니다. 주식을 매도해 얻은 소득에 부과하는 주식 양도세 부과 대상의 범위 축소를 추진 중이라고 한다.

세금을 적게 내면 당장은 즐겁겠지만 제살깍기 일 뿐이다. 무역흑자가 감소하고 수출과 수입이 함께 감소하고 있다. 당장 정부가 예상한 것보다 세금이 60조 원이나 덜 걷혀 다양한 부문에서 계획했던 일을 멈추거나 미루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정부는 재정 건전성을 이유로 국채를 발행하지 않고 외국환평형채권을 유용해 재정 부족을 메우는 편법을 자행했다. 그것도 세금으로 마련한 것인데도 세금 없이 재정을 건전하게 하겠다는 거짓말을 서슴없이 했다.

국민들이 번 돈을 세금과 연금 등 사회보험으로 내는 돈의 비율을 국민부담률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국민부담율은 2020년에 28%였다. 이는 OECD국가 평균인 33.7%에 못 미치는 수치다. 금년 상반기 우리나라 가계부채 총액은 1,854조 원이나 된다. 여기에 1,000조 원을 상회하는 주택 전세보증금을 더하면 집에 짓눌린 형국이다. 소비가 살아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치솟은 집값이 떨어질 조짐을 보이자 정부는 신혼부부 주택구입자금 대출을 필두로 떨어지는 집값을 떠받치기 위한 정책을 폈다. 나랏돈으로 이자를 지원해 빚을 떠넘긴 것이다. 그 와중에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쌀값 하락을 방치함으로써 어려운 농촌 현실을 외면한 것이다. 나라의 미래를 밝힐 연구개발 예산을 20%나 깎아 국가 RND사업의 기반이 무너지고 인재들이 해외로 유출될 위험에 처했다. 많은 전문가가 성장이 멈춘 대한민국을 걱정한다.

차를 운전하는 자가 운전대를 잡고 딴생각을 하면 반드시 사고가 난다. 해마다 하던 이태원의 할로윈 축제장이 151명이 죽고 82명이 다치는 생지옥이 되었다. 공사 임시제방을 방치했던 청주 오송 지하차도에서는 20명이 넘는 생떼 같은 목숨이 시들었다. 또, 예천 효자면에서 비극적인 산사태가 났을 때 실종자를 찾기 위해 해병 1사단이 투입되었는데 안타까운 사고로 채 아무개 상병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해병 1사단장이 실종자 수색보다 언론에 노출되는 것에 관심이 더 많았으며 내성천 급류 속으로 구명조끼도 입지 않고 물속으로 들어가 수색하라는 상식에도 어긋나는 지시를 한 것이 밝혀졌지만, 대통령의 뜻에 따라 국방장관과 대통령실 참모들이 조직적으로 개입해 해병 1사단장을 구하기 위해 경찰에 이첩한 서류를 빼앗아오는 등 해괴한 짓을 벌이고 수사 지휘관을 항명수괴라는 엄청난 죄목으로 입건하는 일이 벌어졌다.

내년 4월 9일에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 신성한 주권의 행사에 말을 보탤 생각은 없다. 그러나 국기문란에 해당하는 채상병 수사 개입 논란의 당사자 중 하나가 우리 지역에 출마를 검토하고 있단다. 권력에 빌붙어 부역하던 자가 곧바로 지조 높은 선비의 고장, 영주를 대리할 의원이 되겠다고 나선다는 것이다. 어쩌다 국회의원 선거가 영주사람 의식을 시험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집권 2년 만에 성장을 멈춘 나라를 구하는 길이 있다는 것은 아,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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