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

   화병이 있는 풍경

                                 -이우걸

 

화병은 언제나 한 계절의 음악이다

정성껏 조율해 놓은 꽃들의 악보를 보라

그 곁에 놓인 의자는

친절이 마련한 객석

실비처럼 나직한 꽃들의 눈인사로

그 분위길 받들어주는 화병과의 담소로

때맞춰 오신 손님은

누구나 귀빈이 된다

 

-풍경을 짓는 소품

화병에 꽂힌 꽃들의 기운이 심상치 않아요. “꽃들의 악보를” 따라 생명인 듯, 사랑인 듯 온기 조용조용 번지는 분위기를 만들었어요. 무심히 현관문을 열었을 때 “실비처럼 나직한 꽃들의 눈인사”를 받는다면, 정갈한 토크 콘서트장으로 순간 이동한 것 같겠지요. “때맞춰 오신 손님”이 되어, 기쁘게 객석 한 자리를 차지하는 행운은 덤이고요.

자연이 부렸던 꽃들이 모두 졌어요. 산과 들로 보냈던 눈길을 거두고 안으로 찾아드는 계절입니다. 꽃 몸살 난 겨울이 눈발을 흩날려도, 손바닥만 한 공간만 있으면 되잖아요. 꽃은 꽃대로 그저 그 자리에 꽂혀 있을 뿐인데, 아쉬움 없이 한 자리 지키고 있을 뿐인데, 화병이 놓인 곳은 왠지 따듯함이 느껴지지 않을까요.

“정성껏 조율해 놓은” 시조 한 편이 우아하면서도 고급스럽지 않나요? 누구나 공감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게도, 몸을 낮추게도 하는 걸 보면요. 당장이라도 꽃 한 다발 사야 할 것 같은 심정인 걸 보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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