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율 (동양대학교 교수)

옛날 서당(書堂)에서 한문의 입문서(入門書)로 아동들이 주로 읽은 책이 있다. 그 책이 바로 천자문(千字文)이다.

천자문은 중국 남조(南朝) 양(梁)나라의 주흥사(周興嗣, ?-521)가 지은 교육서로, 1,000개의 글자를 중복 없이 사언시(四言詩) 250구(句), 125 대구(對句)로 엮어 암송(暗誦)하기 편하게 만들었다. 또 천자문에는 이런 이야기도 전해온다.

양나라 무제(武帝)가 제왕(諸王)에게 가르칠 글을 대신(大臣)인 은철석(殷鐵石)이란 사람을 시켜 종요(種繇)와 왕희지(王羲之)의 글씨 가운데에서 중복됨이 없이 1천 자를 베껴 내게 하였는데, 글자마다 쪽지가 다르고 번잡하여 차서(次序)가 없었다. 하여 이를 다시 주흥사에게 운문(韻文)으로 만들어 내게 하였더니, 주흥사가 하루 안에 엮어 내고는 머리가 온통 하얗게 세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천자문은 일명 백수문(白首文)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소재가 주로 중국의 역사나 문화와 관련된 의미를 함축하고 있어 예비지식이 없이는 의미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우리 선인들은 아동들에게 거의 맹목적으로 천자문을 읽혔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 아동들에게 모화사상(慕華思想)을 심어주는 첫 출발점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필자는 천자문을 초등학교 2학년 무렵 여름 방학 기간에 외가(外家)의 서당에서 처음으로 접했다. 그 천자문 가운데 ‘가을에 거두어 겨울에 갈무리한다.’라는 ‘추수동장(秋收冬藏)’이라는 구절이 있다.

당시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그저 악머구리처럼 목에 핏대를 세우며 고래고래 소리쳐 읽었던 기억이 난다. 참으로 무작한 방법이라고 여겼으나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런 암기 교육 방법이 한문의 경우에는 일정 부분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어릴 때의 기억이 평생을 가고, 또 그렇게 암기해 둔 내용이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해 둔 것 사이에 상호 작용을 일으켜 문득 창의적인 모습으로 떠오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것은 선현들이 철저한 암기 교육만으로 끝낸 것이 아니라 암기를 바탕으로 창의적인 응용을 끝없이 독려하였으므로 서당 교육을 통해서도 훌륭한 인물이 많이 나온 과거의 역사가 이 점을 반증(反證)한다고 하겠다. 그나저나 그때 서당에서 한방 빙 둘러앉아 20여 명이 마치 오늘날로 말하자면 ‘복식수업(複式授業)’ 같은 형태로 각기 다른 책을 읽었는데 그 시절 글을 읽던 사람들의 근황(近況)이 자못 궁금해진다.

근래에 와서 문득 ‘추수동장(秋收冬藏)’이란 말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추수동장(秋收冬藏)’ 즉, 가을에 거두어 겨울에 갈무리하려면 반드시 그 앞선 계절에 심고 기르는 것이 선행(先行)되야 하는데 천자문에는 왜 그 말이 없을까? 천자문에는 단지 ‘한래서왕(寒來暑往)’ 즉, 추위가 찾아오면 더위가 물러간다는 뜻의 구절만 나온다. 유추해보면 심고 기르는 일은 이미 전제된 것으로 간주하고 ‘추수동장(秋收冬藏)’이라 한 것 같다. 그럼에도 완벽하게 문장을 구성하지 않은 듯하여 좀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그런데 봄철에 씨앗을 심고 여름철에 돋아난 새싹을 기르는 것은, 말하자면 ‘춘종하육(春種夏育)’이다. 대체로 심고 기르는 일은 거두고 갈무리하는 것보다 훨씬 힘이 든다. 그럼에도 춘종하육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은 힘이 많이 들수록 나중에 수확할 수 있는 기대가 크기 때문에 힘듦을 견딜 수 있고 또 힘든 만큼 보람도 커지게 된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다. 원인이 없는 결과는 있을 수 없다. 반드시 샘에 가서 물을 힘들게 길어 와야 달콤한 차 맛을 즐길 수 있다.

이를 좀 더 극명(克明)하게 말해주는 구절로 '명심보감(明心寶鑑)・입교편(立敎篇)'에 이런 말이 있다. ‘공자삼계도(孔子三計圖)에 운(云)호되 일생지계(一生之計)는 재어유(在於幼)하고 일년지계(一年之計)는 재어춘(在於春)하고 일일지계(一日之計)는 재어인(在於寅)이니 유이불학幼而不學)이면 노무소지(老無所知)요 춘약불경(春若不耕)이면 추무소망(秋無所望)이며 인약불기(寅若不起)면 일무소판(日無所辦)이니라.’

즉, ‘공자삼계도에 이르되 일생의 계획은 어릴 적에 있고 일 년의 계획은 봄에 있고 하루의 계획은 인시[寅時:새벽 3시-5시]에 있으니 사람이 어려서 배워두지 아니하면 늙어서 아는 바가 없고 봄에 만약 밭을 갈지 아니하면 가을에 바라볼 바가 없으며 인시에 만약 일어나지 아니하면 그날 할 일이 없게 될 것이니라.’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사람의 지식은 어린 시절의 부지런한 배움에 있고, 가을의 풍성한 수확은 수고스럽고 힘든 봄철의 파종(播種)과 여름동안의 재배에 있으며, 새벽 시간에 일찍 일어나 그날 할 일을 해두면 그 결과는 기대하지 않아도 저절로 거두게 될 것이다.

이제 달력을 보면 마지막 한 장을 남겨두는 12월로 세월이 치달아가고 있다. 지금쯤은 모두가 한 해의 결실을 거두어 갈무리하는 시간이다. 소득이 많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소득이 별로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금 소득이 적다고 후회해본들 이미 흘러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시간을 거슬러 씨를 뿌리고 기를 수가 없는 것이다. 올 한 해는 이미 모든 일이 결정되었다.

하루는 내일이 있으므로 고쳐 할 수가 있고 한 해도 내년이 있기에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한번 늙어버리면 다시 젊어질 수는 없다. ‘화쇠필유중개일(花衰必有重開日-꽃은 떨어져도 거듭 필 날이 있다.)이나 인로증무갱소년(人老曾無更少年-사람은 늙으면 일찍이 다시 소년이 될 수 없다.)이라 하지 않았던가?

인생살이에서는 하루와 일 년에 해당하는 일도 있고 한평생에 해당하는 일도 있다. 하루와 일 년에 해당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일의 성격을 잘 살펴서 한평생에 해당하는 더욱 중요한 일에 힘써 노력해야 한다.

후회하면서도 같은 실수(失手)를 반복하는 것은 ‘하지하(下之下)’이고, 후회하고 나서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은 ‘중지중(中之中)’이며, 아예 후회하지 않도록 실수하지 않는 것이 ‘상지상(上之上)’이다. 인생을 언제나 ‘상지상’으로 살 수는 없다 하더라도 ‘하지하’의 삶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 해의 남은 시간만이라도 모두가 후회하지 않는 삶으로 마무리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www.yjinews.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