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

그랬더라면

                                  -이소영

 

힘들어 그 말에 위로를 얹었더라면

희망도 부패한다는 깨달음을 얹었더라면

사랑도 이사 갈 수 있다는 걸

조금 빨리 알았더라면

 

그 사람 이야기를 활자보다 더 믿었더라면

몸이 전하는 소리에 귀 기울였더라면

모든 걸 말하지 않고

비밀 하나 간직했더라면

 

마트에는 없는 긴 이름의 그랬더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먹어 본 그랬더라면

늘어진 생활을 쫄깃하게 세워주던 그 라면

 

-허기의 맛, 회복의 맛

겨울로 접어들면서 따뜻한 음식들이 당기기 시작합니다. 그중에 김치 몇 조각 놓고 먹는 라면 맛도 빼놓을 수는 없지요. 혹시 “그랬더라면”이 출시된 걸 아시나요? 다 찾아봐도 없다고요? 물론 가게에는 없는 라면이지만 다들 입이 아닌 생각으로는 몇 번쯤 먹어(삼켜) 보았잖아요. “얹었더라면/ 믿었더라면/ 기울였더라면// 그랬더라면, 그랬더라면”, ‘~더라면’으로 되씹는 자체가 우리네 삶이기도 하니까요.

우리가 먹어 본 ‘그랬더라면’은 어떤 맛이었을까요? ~더라면으로 첩첩 쌓아온 삶은 만족보다 아쉬움이 더 배였을 것 같은데요. 그래도 그 라면 맛을 모르고 산 사람들보다 그 맛을 가끔 음미하는 사람들이 훨씬 유려하고 희망적인 열정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 시조는 구성이 조금 독특한데요. 첫째 수와 둘째 수는 아픔 밴 노을처럼, 셋째 수는 “마트에는 없는 긴 이름의”의 라면이 등장합니다. 여러분도 살짝 눈치챘겠지만, 동음이의어를 활용해서 썼잖아요. 언어를 변형한 표현 덕분에 의미와 재미를 동시에 잡고 있어요.

어쩌면 우리도 너무 많은 “그랬더라면”을 되씹으며 살고 있지는 않을까요? “그랬더라면” 정말 뭐가 달라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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