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남 (작가)
올해도 어김없이 김장철이 시작됐다. 요즘 김장하기가 겁난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배추며 고춧가루, 생강, 소금값이 죄다 올라서 김장 물가 부담이 커진 탓이다. 소금값은 1년 만에 최대폭인 17%나 상승했으니 계산기를 두드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장은 한꺼번에 많은 양을 하기 때문에 큰 노동이기도 하지만, 수육이 빠질 수 없으니 생각만으로도 군침이 도는 것도 사실이다.
때로는 입안의 즐거움이 노동의 피로를 잊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가족이 많던 시절에는 온 가족이 힘을 합치면 거뜬히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요즘은 함께할 노동 인력이 부족하다. 그런데 가족 수는 줄었지만, 양은 예전 그대로 하고 있는 가정도 상당수 있다.
조금 줄였다고는 하지만 산처럼 쌓인 배추를 보면 나눔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아마도 김치를 담아본 적이 없거나, 담글 줄 모르는 자녀들을 위한 부모 마음이 더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는 겨우내 먹을 식량을 마련한 후 땔감을 준비하고 마지막으로 김장을 해왔다. 이 세 가지는 겨울나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연례행사였다.
요즘은 계절도 없이 사시사철 마트에 가면 많은 종류의 김치가 즐비하게 진열돼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변화된 문화이긴 하지만 아직까지 시골 정서는 겨울이 다가오면 김장 담그기를 하는 것이 흔한 풍경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세월에 따라서 김장 문화도 조금씩 변모하는 게 느껴진다. 김장을 위해서 흩어졌던 형제들이 모여서 오순도순 가족의 정을 함께 버무리는 가정이 있는가 하면, 가족 단위에서 이웃으로 확장된 경우도 볼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시댁 동네에서는 품앗이 김장을 하고 있다.
요즘은 명절이 되어도 동네 어른들을 뵙기가 어려운데, 김장하는 날은 고무장갑을 손에 들고 나타나는 어르신들을 뵐 수 있어서 특별한 정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이 모이는 날은 으레 잔칫날이라는 정서가 한몫해서일까.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김장이 정겹기 그지없다. 한편으로는 부모 세대에게는 당연한 ‘김장 담그기의 모습이 앞으로 얼마나 유지될까?’ 하는 마음도 생긴다. 어쩌면 집마다 김장 담그는 시절은 부모 세대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김포족’ 김장을 포기하는 사람, ‘김모족’ 김장을 모르는 사람이 늘었다고 한다. 김치공장에서는 반길 일이지만 왠지 걱정도 되고 씁쓸한 구석도 있다. 전통적인 김장철은 입동 전후로 주로 하는 편인데, 일반적으로 김장을 담그기 좋은 시기는 일평균 기온이 4도 이하로 떨어지고, 최저 기온이 0도 이하로 유지될 때를 적기라고 한다. 지역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략 11월 중순을 지나서부터 12월 사이로 보면 될 것이다.
김치는 우리의 대표 음식으로 다양한 종류와 맛으로 사랑받고 있다. 김치 담그기는 국가 무형문화재이고, 김장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우리의 소중한 전통 풍습이다. 김치의 역사는 고려 시대부터 전해 온 것으로 오랜 전통을 이어온 한국의 대표적인 먹거리이다.
발효과정을 거치면서 유산균이 생기고 비타민C, 식이 섬유, 베타카로틴 등 다양한 영양소를 함유하고 있어 우리 몸에 좋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또한 김치는 우리 몸에 유익한 미생물이 존재하여 소화를 돕고 장 내 미생물의 균형을 조절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과정을 통해서 김치는 장 건강을 촉진하고 면역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김치는 갓 담근 시기부터 발효를 통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한국의 전통 식품이다. 장기간 숙성된 것을 ‘묵은지’라고 한다. 배추가 따스한 태양의 시간을 품고 자라서, 한나절 절임의 시간을 거쳐 김치가 되고, 오랜 묵음의 시간을 지나 묵은지에 다다른다. 이처럼 김장은 시간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정성의 결과물이다. 이웃사랑 실천에도 한몫하는 김장, 곡진한 마음으로 만든 음식은 몸에 이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세계김치연구소’가 저온에서 숙성된 묵은지로부터 바이러스에 뛰어난 김치 유산균을 발굴하고 바이러스 유전자 등 외부 침입 유전자에 대한 방어작용 기전을 구명했다고 밝혔다. 맛과 건강에도 탁월한 김치, 지역마다 가정마다 조금씩 다른 우리의 김장 문화, 김장하는 날, 영원한 진행형이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