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
선생님이 주신 선물
- 권영하
선생님이 벌 대신 수정테이프를 주셨어요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라고
수정테이프에는 하얀 길이 감겨있었어요
펜이 길을 잘못 가면
기다리고 있다가 달려 나왔어요
지우개로 지워지지 않는 길도
공책에 잘못 쓴 발자국도
뚜벅뚜벅 걸어 나와 덮어주었어요
참고 있다가 잘못을 살며시 덮어주었어요
다시 걸어갈 수 있도록 새길을 놓아주었어요
며칠 후, 친구와 또 말다툼을 했는데
선생님은 어깨만 토닥토닥 두드려 주셨어요
꾸중 대신 또 수정테이프를 주셨어요
-훈계의 법칙
나를 키운, 선생님의 한 마디는 무엇이었을까요? 나를 향하던 선생님의 손길이나 눈길은 어떤 게 기억에 남나요? 누구나 겪었을 만한 이야기 한 토막을 풀었을 뿐인데 삶의 길을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요?
친구들과의 말다툼은 예사고 심한 장난질도 공기처럼 흔한 곳이 교실이잖아요. 일이 터질 때마다 바로 날아드는 혼구멍 대신, “기다리고 있다가 달려 나”와 “잘못을 살며시 덮어주”고 “다시 걸어갈 수 있도록 새길을 놓아주”는 선생님이 계시네요. 수정테이프처럼요. 아는 것만 많은 선생님보다, 흔해 빠진 수정테이프에 씨앗 한 알을 심어 마음 훈훈하게 하는 열매로 키울 줄 아는 속 깊은 선생님…
어린이들의 키와 생각이 날마다 자라듯, 키만 다 자란 어른들도 새롭고 깊이 있는 생각은 날마다 자라고 있어요. 딸깍딸깍 긴 시간을 넘은 “선생님이 주신 선물” 같은 추억과 그 이야기를 잘 풀어쓴 동시가 있는 한, 세상은 한 뼘 더 따뜻해지리라 믿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