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경 (수필가)

말이 범람하는 시대다. 말로 인해 생겨나는 무수한 논쟁, 작은 실수부터 생사를 넘나드는 독기 서린 말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넘쳐나는 말의 홍수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늘 중심에 서는 게 바로 말이다.

새날이 열리면서 시작되는 말, 하루 중 입 밖으로 흘러나온 말은 과연 몇 단어나 될까. 그중에는 반드시 해야 할 말과 하지 않아도 될 말이 동시에 존재할 것이다. 한 번 내뱉은 말은 두 번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혀끝으로 발설된 말은 수정 불가능하다. 말을 조심하지 않고선 어떤 상황에 직면할지 누구도 예상치 못한다.

말의 목적지는 상대의 가슴이다. 잘 안착했을 땐 신뢰를, 불시착했을 땐 불신을 초래한다. 착지에 따라 둘은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상대의 마음을 조금만 헤아려도 안전하게 도착할 말인데, 거름망 없이 감정대로 내뱉다 보니 걷잡을 수 없는 상황과 맞닥뜨리게 된다.

말은 할 때보다 하지 않음으로써 더 편할 때가 있다. 전하고자 하는 말의 원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배달 사고가 날 때 그런 마음이 든다. 말을 어떤 그릇에 담아 전달해야 사고가 나지 않을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말의 품격은 높고 어려운 게 아니라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읽어낸 후 상대의 가슴에 닿게 하는 기술이다.

인근 예천에 가면 언총(言塚)이라는 말무덤이 있다. 말과 관련된 속담이 표지석에 새겨져 있는데 그곳에 가면 말 숲에 갇힌 듯 우리가 사용하는 말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우는 문구들이다.

말무덤의 유래를 살펴보면 500여 년 전, 각성바지들이 모여 살면서 사소한 말로 문중 간 싸움이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마을 어른들이 그 원인과 처방을 찾던 중 지나가던 과객으로부터 예방책을 듣게 된다.

마을에서는 과객이 일러준 처방대로 싸움의 발단이 된 문제의 말들을 각자의 그릇에 담아 말무덤을 만들어 땅에 묻었다고 한다. 마을에서 말무덤을 만든 이후 다시는 분쟁과 싸움이 일어나지 않고 예전처럼 평온해졌다는 것이다.

무덤 주위, 말과 관련된 속담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정독한다. 내 말은 남이 하고, 남의 말은 내가 한다. 말은 적을수록 좋다. 말이 말을 만든다.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 혀 밑에 죽을 말이 있다. 말 뒤에 말이 있다. 말이 씨가 된다.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 길 아니면 가지 말고 말 아니면 듣지 마라. 등등, 말에서 전해지는 힘이 엄청나다는 걸 알 수 있다. 한 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기에 더 많이 생각하고 더 조심해야 한다는 걸 표지석에서 배운다.

이청득심(以聽得心)이라는 말이 있다. 귀 기울여 경청하는 일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최고의 지혜라는 뜻으로, 듣는 것만 잘해도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고 했다. 우리가 누군가와 대화할 때는 70%는 듣고 30%만 말해야 한다.

말을 잘하고 많이 하는 사람보다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을 대부분 좋아하기 때문이다. 경청을 잘하는 넓은 귀를 가진 이가 편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리액션(반응)을 잘하는 것도 대화를 잘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말이 가벼워지지 않게 그 무게를 다하면 될 일이다.

돈이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귀티 나고 존중받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남과 다른 그만의 특징이 있다. 그는 긍정의 말씨를 뿌릴 줄 아는 사람으로, 뿌린 말을 알차게 추수할 줄도 안다. 안 좋은 일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는 희망의 말을, 실패나 실수한 사람에게는 긍정의 말을 건넨다. 긍정의 아우라가 풍기는 사람에겐 언제나 사람이 모여들 수밖에 없다.

사람은 늘 칭찬만 들으며 살 수 없다. 칭찬 1번 들을 때마다 32번의 비난도 함께 들어야 한다는데 누구든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비난하는 사람이 문제지 굳이 그 말에 자신의 감정을 소모할 필요는 없다.

뒷담화를 즐기는 사람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기에 마음의 여유가 없다. 상대를 욕하고 깎아내림으로써 안도감을 느끼기 때문에 자신의 부족함을 뒷담화로 채우려 한다. 나의 성장에 시간을 쓰는 것보다 타인을 깎아내리는 데 시간을 허비하는 것만큼 어리석음도 없을 것이다. 누군가 자신을 뒷담화 하거든 그를 불쌍히 여기면 된다. 자존감이 낮아서 그러는 것이니 상처받을 필요도 없다.

아무리 뒷담화를 해도 그 당사자의 능력이 줄어드는 건 아니니 얘기하는 사람의 입만 거칠어질 뿐이다. 말의 무게를 생각하면 지금 우리가 어떤 말을 사용해야 할지, 혹은 버려야 할지 판단이 설 것이다. 말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나의 입을 통해 흘러 나간 말들이 쓸모없는 쭉정이가 아닌, 속이 꽉 찬 알곡으로 돌아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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