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복 (소백산백년숲 사회적협동조합 이사)
남미 베네수엘라와 브라질, 가이아나 3개국의 국경에 ‘기아나’라는 고지대가 있는데 그곳에는 1,000m 수직 절벽 위로 솟은 바위 평원이 있다. 원주민 말로 테푸이(Tepui)라고 부른다.
쿠케난 테푸이와 로라이마 테푸이가 나란히 있는데 가장 높은 부분의 높이가 2,810m에 달한다. 그곳에는 ‘오리오프리네’라는, 올챙이를 거치치 않고 알에서 바로 성체로 부화하는 개구리가 산다. 학자들에 의하면 테푸이는 20억 년 동안 지각변동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테푸이가 솟아오른 것이 아니고, 20억 년 비바람에 깎이고 닳고도 아직 남아있는 것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동백이라는 이름의 나무가 여러 종이 있는 것에 의문을 품고 지냈다. 동백은 머릿기름이고, 동백으로 머리 단장하고 하늘을 받들던 춘부장(椿府丈)이 있었고, 단군과 환웅과 환인의 역사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로라이마 테푸이에서 쏟아지는 ‘앙헬폭포’의 물이 1,000m를 낙하하며 부서져 흩어지고 안개가 되어 골짜기를 메운다. 역사도 그렇게 부서져 안개처럼 제대로 알기 어렵지만 언제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영주에 이사와 사월 초파일에는 동네 형님들 따라 절에 갔었다. 불공은 관심 없고 봄기운이 좋았고 절밥을 맛보는 것이 즐거웠었다. 단오 무렵이었다. 아주머니들은 궁궁이를 구해 머리에 꽂아야 하는데 산에 궁궁이가 없어졌다고 아쉬워했었다.
궁궁이(Angelica polymorpha Maxim. 산형과)는 천궁이라고 불리는 약재다. 궁궁이를 머리에 꽂는 풍습도 재액을 물리치는 단오 풍습일 것이다. 재액을 물리치기 위해 머리에 꽂는 풍습의 유래가 짧지 않다. 신라 사람 최항은 더운 땅에서 자라는 석남石楠의 붉은 가지를 연인과 나누어 머리에 꽂으며 정을 나누었다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당나라 때 시인 왕유王維가 지은 시, 九月九日 憶山東兄弟(구월구일 억산동형제)에는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 형제가 산에 올라 서로의 머리에 붉은 수유나무 열매가지를 꽂아주며 건강을 기원하는 풍속에 형제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낸 명시를 남겼다.
이 시에 나오는 수유茱萸를 산수유라고 오해한 글이 많다. 여기서 말하는 수유茱萸는 쉬나무(Tetradium daniellii (Benn.) T.G.Hartley, 운향과)다. 중국과 한국에 분포하는 키 큰 나무로 가을에 열매가 익는다. 열매는 기름이 많아 머릿기름이나 식용유, 등유로 썼다. 글 읽는 선비는 마당에 한두 그루 심었다고 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쉬나무 추출물이 뼈를 튼튼하게 하는 성분이 있다고 한다. 그뿐 아니다. 쉬나무는 꽃이 귀한 8월에 피는데 꿀도 많다. 밀원으로 좋은 나무다.
나는 동백의 근원을 찾아 헤매고 있다. 옛날의 것이라면 무엇이든 예사로이 넘기지 못한다. 우리 말의 시원을 보여주는 갑골음 연구와 어원풀이는 이제까지 우리가 역사를 얼마나 잘못 배웠는지 알게 해준다. 예穢, 조선朝鮮, 낙랑樂浪과 왜倭가 모두 “가사라”로 읽혔고 환桓과 단檀 한韓이 모두 “가라”로 읽혔다는 갑골음 연구를 접하고 전율했다.
어릴 때, 추수가 끝나고 나면 수확한 머드리콩으로 두부를 해 먹었다. ‘망’으로 콩을 갈아 두부를 끓였다. 가마솥에 하나 가득 끓인 두부를 친척과 이웃이 모여 한 모씩 든든하게 먹었다. 해마다 가을이면 이집 저집 돌아가며 두부를 먹고 여름내 축난 몸을 추스렸던 시절, 우리 마을에서는 ‘망’으로 콩을 갈았다. ‘망’을 맷돌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중학교 가서야 알았다.
‘망亡’은 연장으로 쓰는 손잡이가 없는 돌을 말한다. 그 손잡이 막대기를 ‘지止’라고 했고 ‘지’가 ‘치’로 바뀌어 동사 ‘치다’가 되었다. 돌에 나무 손잡이를 묶으면 ‘망치’가 된다. 이런 것들은 석기시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우리의 말과 풍속과 이야기는 부서져 온 계곡을 채우고 있는 앙헬폭포의 물안개와 같이 모두 역사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獨在異鄉爲異客(독재이향위이객)/每逢佳節倍思親(매봉가절배사친)/遙知兄弟登高處(요지형제등고처)/遍插茱萸少一人(편삽수유소일인)。- 타향살이 외로운 나그네 신세/명절이면 부모 생각 더욱 사무치네/멀리 있어도 나는 알지, 형제가 함께 산에 올라/수유 열매를 머리에 꽂으며 한사람이 없는 것을 깨닫고 슬퍼할 것을. - 왕유(王維), 구월구일 억산동형제(九月九日 憶山東兄弟)
이 시를 읽으면 언제나 외로워진다. 가마솥에 끓인 모두부가 먹고 싶다. 형제와 친척과 이웃이 모두 모여 시끄럽게 먹던 그 뜨끈한 정이 배워야 아는 역사가 되었다. 아, 쓸쓸한 가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