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율 (동양대학교 교수)

사람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누구의 현손(玄孫), 증손(曾孫), 손자(孫子), 아들로부터 누구의 부친, 조부, 증조부 등으로 생물학적 역사적인 존재, 생명의 연쇄 고리로 이 세상에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이런 평범하면서도 당연한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

생명의 연쇄 고리가 하나 사라지면서 더 이상 생명을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녹록치 않은 삶의 무게로 인해 비혼(非婚) 내지는 불혼(不婚)에다가 설령 혼인하더라도 계대(繼代)에 관심이 없는 극한의 상황으로까지 우리 젊은이들이 내몰리는 현상은 이유야 어찌 되었든 기성세대로서는 감내하기 어렵다. 그러기에 언감생심 가르침과 배움을 통한 진정한 사람 만들기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조차 멋쩍어져 버렸다.

그러나 절망적인 상황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포기하거나 양보할 수 없는 일이 가르치고 배워서 사람다운 사람을 만드는 교육의 문제라고 하겠다. 사람은 동물과는 달라 사람다운 사람을 만들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전 세대가 습득하고 경험한 것을 다음 세대에게 가르치고 후속 세대가 이것을 배우는 일을 교육이라고 한다면 교육은 세대를 달리하더라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고, 그 초점은 단연 사람다운 사람을 만들기 위한 교육에 두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교육을 해야 제대로 된 사람을 만들 수 있을까? 사람다운 사람을 만드는 교육은 언제부터 시작해야 효율적일까? 사람들은 대체로 조기교육을 언급하면서 태교를 이야기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현재와 같은 이런 접근법은 좀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아이의 교육에 앞서 부모가 먼저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한다.

⌈대학⌋에서는 “자식 기르는 것을 배운 뒤에 시집가는 사람은 있지 아니하다.(未有學養子而後嫁者也)”라고 했으나 오늘날에는 자식을 기르는 것을 배운 뒤에 혼인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부모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선행되고 나서 부모가 된다면, 육아의 문제점을 훨씬 줄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야 비로소 생명의 잉태와 태교가 필요하다. ⌈소학(小學)⌋의 「내편(內篇) 입교편(立敎篇)」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열녀전에 말하였다. 옛날에 부인이 자식을 임신하면, 잘 때 옆으로 눕지 아니하고, 앉을 때 가장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설 때 한쪽 발로 서지 아니하며, 간사한 맛을 먹지 아니하고, 벤 것이 바르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고, 자리가 반듯하지 않으면 앉지 아니하며, 눈으로 간사한 빛을 보지 아니하고, 귀로 음란한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밤이면 소경 악사(樂師)로 하여금 시를 외우게 하고, 올바른 일을 말하게 하였다. 이와 같이 하면 자식을 낳음에 용모가 단정하고, 재주가 남보다 뛰어날 것이다. (列女傳曰古者.婦人妊子.寢不側.坐不邊.立不蹕.不食邪味.割不正.不食.席不正.不坐.目不視邪色.耳不聽淫聲.夜則令瞽.誦詩.道正事.如此則生子.形容端正.才過人矣.) ” 오늘날의 태교와 별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구절만 보자면 태교는 여성만 하는 것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성이 생명을 잉태하고 있으니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도 직접적이고 절대적일 수 있겠으나 그 배우자인 남성도 간접적 영향을 미치는 바 여성에 준하는 태교를 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남성들은 태교에 대해 무지하거나 소극적이다. 그러다 보니 교육이 마치 여성만의 몫인 양 생각하는 경향이 일반화되었고 남성들은 자녀 교육 문제에서 자발적으로 소외되는 상황이 되고 있다. 부부가 힘을 합쳐 노력해도 모자랄 판에 한쪽만 교육에 신경 쓰고 다른 한쪽은 방관하니 당면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없다.

다행히 최근의 상황을 보면 부부가 공동육아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다만 여기에는 부부만이 아니라 조부모가 계시면 조부모들도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신생 부부들보다 오랜 경험을 가진 조부모들의 참여가 중요하다고 본다.

최신 육아이론에 조부모들을 배제하는 경향이 있는데 어찌 보면 경험의 무시가 낳은 노하우의 사장(死藏)이 안타까울 뿐이다. 아무튼 궁극적으로 육아는 부부만의 일이 아니라 집안 전체의 일이고, 나아가 사회나 국가가 나서야만 되는 국가중대사라는 인식의 일대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작금의 상황은 결코 한가롭지 않다. 그렇지만 긴급상황이라고 해서 근본적인 가치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 긴급 상황일수록 긴급한 상황에 맞게 대처하면서 근본적인 가치의 구현도 병행해야 한다. 속담에 “엉겁결에 엄나무 잡기”라는 말이 있다.

급하다고 엄나무를 잡다가는 그 가시에 손바닥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상황이 엉겁결에 엄나무를 잡아야 할 만큼 절박하다해도 근본적인 가치인 사람다운 사람을 만들기 위한 교육은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진정한 교육이 계속될 수 있도록 모두가 떨쳐 일어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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