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있다. 사전에는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용어를 얘기할 때 자주 거론되는 유명한 용례가 있다. 로댕의 조각 작품 ‘칼레의 시민'에 주제가 된 사건이다.

백년전쟁 때의 일이었다. 프랑스의 해안도시 칼레는 영국의 거센 공격을 받고 항복을 하게 된다. 영국의 왕 에드워드 3세는 당초 모든 시민들을 죽이려 했으나 측근의 조언을 받아 그 말을 취소한다. 대신 그는 다른 조건을 걸었다. 시민들의 안전은 보장하겠다. 다만 시민들 중 6명을 뽑아오라. 시민 전체를 대신하여 그들을 처형하겠다는 거다. 그리하여 칼레의 부유층과 고위관료 등 소위 기득권자 6명이 자발적으로 죽음 앞에 나서게 된다. 자신들이 사회에서 누린 만큼 사회를 위해 희생하겠다는 정신의 발로였다.

말이 나왔으니 국내의 사례도 소개하기로 한다. 경주의 만석꾼 최부자는 역시 국내의 대표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하나이다. 최부자 댁은 대대로 집안의 재산이 1만석을 넘지 말 것과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는 가훈을 철저히 따랐다. 그리하여 흉작이나 기근이 들었을 때는 소작료를 낮추어 주었고, 또한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 자금을 댔는데 그 규모가 당시 임시정부 1년 예산의 3분의1 정도였다고 전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등잔 밑이 더 어두운 법이다. 우리 시 농업인 최초로 아너 소사이어티에 이름을 올린 안정면 권용호(74)씨의 경우도 결은 다르고 재력의 체급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이들에 견줄만도 하다. 그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오직 자신의 정직한 땀으로 부농이 됐다. 어려운 요즘 농촌 현실에서 시골 부자의 반열에 오른 것도 대단하지만, 그렇게 힘들여 일군 재산을 기꺼이 사회에 기부하는 행위는 사실 무엇보다 아름답고 값지다.

본지가 10월 5일자 기사에 소개했듯이 20년 넘게 봉사를 해 온 영주시종합사회복지관 경로식당이 운영난에 처했다. 후원은 줄고 자원봉사자를 구하는 일도 여의치 않다고 한다. 게다가 식재료비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고 있다. 한마디로 조만간 문을 닫아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빡빡하다는 뜻이다. 세상이 어려울수록 함께의 가치가 그립고 소중해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얼마전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차 내한한 영화배우 주윤발은 사후 전 재산 (9,600억원 상당)을 사회에 기부하기로 한 인물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게 필요한 건 점심·저녁에 먹을 흰 쌀밥 두 그릇뿐이다.”영화의 대사가 아니다. 전 재산을 기부하게 된 동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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