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 나이에 고향 영주를 알리는 ‘유튜버’가 되다

여느 지방 중소 도시처럼 영주도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어 지방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당국이 각종 인구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구증가 정책이 출산장려와 귀농 귀촌 운동에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귀향운동으로의 패러다임 변화가 절실하다.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머물고 있는 지역 출향인은 대략 3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에 본지는 이들 출향인이 은퇴 후 자신이 평생 직장생활을 하며 쌓아온 경륜을 귀향을 통해 고향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애향인 인터뷰를 마련했다. 이번 애향인 인터뷰를 통해 인구증가를 위한 귀향정책과 지역발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편집자 주>

고향 관련 유튜브 영상 제작은 바로 자신의 의뢰

고향 동창회 참석 위해 생업인 가게문도 닫기도

인구 소멸 방지위해 조무모의 육아 참여 늘어났으면

소백산 비로봉에서
소백산 비로봉에서

나이가 들어서 유튜버를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영주시 출신으로 늦게 유튜브 영상 제작에 흠뻑 빠진 사람들이 눈에 띈다. 정치적 소신이나 사회에 대한 비평을 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과 주변의 생활을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하는 사람도 있다. 유튜브를 보는 사람은 많아도 칠순의 나이에 자신이 직접 유튜브 영상을 제작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영주 출신으로 늦은 나이에 유튜브 영상을 제작하는 최태현(70) 유튜버를 만났다. 그의 아이디는 ‘초이타이현’이다. 그의 유튜브는 날이 갈수록 고향 관련 내용이 많아지고 있다. 또 그의 유튜브는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일상생활 기록이기도 하다. 그는 고향 관련 모임이면 자신의 생업을 뒤로 하고 참석하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사회적 성공 사례도 아니라며 인터뷰를 사양했으나 영주시민신문의 애향인 코너는 고향 사랑에 중점을 둔다는 말을 듣고서야 인터뷰에 응했다. 그를 추천한 애향인 이강기씨도 그의 고향 사랑을 말한다. ‘영주라면 깜빡 죽는 사람’이라고.

최태현 유튜버는 지난 7일부터 열리고 있는 풍기인삼축제를 찾아 유튜브 영상을 만들고 있다. 누군가의 의뢰가 아니라 ‘자신의 의뢰’다. 오는 14일에도 그는 영주를 찾는다. 풍기온천에서 친구 칠순 잔치에 참석하고 자신을 비롯한 풍기초 동기들이 금선계곡에서 하는 합동 칠순잔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물론 관련 유튜브 영상을 만들어 추억을 기록할 예정이다.

소백산 비로봉 등정
소백산 비로봉 등정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유튜브 영상을 제작하신다 들었습니다.

그런 거창한 표현은 부담인데요(함께 웃음). 그냥 제가 좋아서 나가는 영주 출신의 동창회 향우회 등 영주 관련 유튜브 영상을 만들고 그 속에 영주 정보가 있을 뿐인데요.

‘만드신 유튜브에 들어가면 ‘산악회 동호회 여행 등 함께 한 분들과 공유하고 추억의 앨범으로 소장키 위함’이라고 목적을 밝히셨더군요.

네. 저는 정치적 문제라든지 사회비평과 같은 거창한 분야는 잘 모릅니다. 또 그런 문제로 골치를 썩히기도 싫습니다. 산악회, 동호회, 여행 등이 대부분 고향과 관련이 있습니다. 봉화군과 단양군이 배경이 되기도 하는데 고향인 영주시와 붙어있기 때문에 정이 갑니다.

재경영주제일고동문 산행대회
재경영주제일고동문 산행대회

유튜버를 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요?

12년 전부터 모임에 가거나 확 끌리는 장면을 보면 동영상을 찍었습니다. 온라인 카페에 올리곤 했습니다. 카톡에도 올리려 했는데 동영상 용량이 넘쳐 못 올릴 땐 무척 아쉬웠습니다. 그 전엔 유튜브란 게 뭔지도 잘 몰랐는데 동영상 용량이 커도 올릴 수 있다 해서 엄청 기뻤습니다.

그게 5년 전입니다. 5년 전 유튜브란 걸 알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몰랐습니다(함께 웃음). 배우면 잊어버리고.. 그러면서 유튜브 영상 제작에 점점 더 빠졌습니다. 1년 전 쯤에야 ‘유튜브란 걸 나도 만들 수 있구나’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겸손하십니다. 저는 아직 유튜브 영상을 어떻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유튜브 영상제작 전에도 동영상을 찍으셨군요?

12년 전부터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동영상을 찍긴 했는데 동영상 찍는 습관이 만들어진 게 그때쯤이었습니다. 그땐 감각도 없었고 그냥 동영상 찍는 게 좋아서 동창회, 향우회 갔다 와서 온라인 카페에 올리곤 했습니다. 지금은 유튜브에 흠뻑 빠져 있습니다. 잘 하지는 못하지만(함께 웃음).

가장 보람이 있었던 일이 무엇인가요? 지금 떠오르는 것 중심으로 말씀하시면?

가장 어려운 질문인데요(함께 웃음). 지금으로선 유튜브에 영상 올렸을 때 기분이 좋습니다. 팩트(fact)에서 어긋나면 안 되니 자료를 많이 찾아봅니다. 그러니 편집 시간도 길어집니다. 시청자에게 재미없을지라도 팩트(fact)가 중요합니다. 누가 보지 않아도 정확히 기록하려 합니다. 제 유튜브를 본 분 중에 자료 오류를 지적한 사람도 있는데 고마운 일이지요.

보람도 유튜브에서 찾으시는 걸 보니 역시 유튜브에 빠지셨나 봅니다. 유튜브 영상제작에 빠져 있으면 부인이 싫어하지 않으시나요?

같이 여행하면서 영상을 찍으니 오히려 좋아하던걸요. 현재 다른 생업도 하지 않고 있고요.

그렇군요. 그 전엔 어떤 일을 하셨는지요?

예전엔 자영업으로 슈퍼마켓을 했습니다. 그 전엔 챠트사, 필경사 일도 하고 사우디 건설현장 행정요원으로 2년을 가 있기도 했습니다.

영주제일고 동문산악회(2019.3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영주제일고 동문산악회(2019.3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영주제일고 동문산악회 히말라야 등정(2019.3)
영주제일고 동문산악회 히말라야 등정(2019.3)

영주 향우 모임에 적극 참여하신다면서요? 자랑거리가 무엇인지요?

영주중 19회 재경동창회 회장을 7년 하다 최근 물려주었습니다. 영주제일고 재경총동창회 산악회장을 8년째 하고 있는데 동창회 산악회 중 잘 한다고 소문났나 봅니다. 대구경북산악회가 벤치마킹을 했으니까요. 2019년엔 안나푸르나도 갔습니다. 내년에 또 갈 계획입니다.

영주중 동창 카페를 보니 2003년 영주중 동창회 때를 기록한 친구분의 글 속에 이런 내용이 있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모임을 위해서 애쓰는데, 나는 몸만 따라가면 되는데, 가게 문을 닫고서라도 참석할테니 걱정하지 말아라...’란 내용이었습니다.

그런 기록도 있었나요? 무서운...(함께 웃음). 그렇습니다. 슈퍼마켓 하루 닫더라도 동창회에는 나가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었습니다. 몸이 그렇게 움직였습니다. 저는 딸만 둘입니다. 딸이 결혼해서 아이 낳으니 키워주고 싶었습니다.

육아 때문에 출산율이 줄어드는 시대인지라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봐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손주들 머리 빗고 땋고.. 그런 게 좋았습니다. 그렇게 딸과 함께 살며 외손주들을 18년 동안 돌보다 최근 저희가 분가해 나왔습니다.

드디어 독립하셨군요(함께 웃음). 외손주들 머리 빗어주고 땋아주며 돌보아주는 데서 보람도 있었겠습니다. 출산율 저하가 정말 국가의 안위와 연결될 정도인데 큰일 하셨습니다.

조부모가 손주들을 돌보는 건 시대적으로 필요하단 생각도 합니다. 저는 손을 쓰는 재주가 있나 봅니다. 아이 머리 빗어주고 땋아줄 때 좋았습니다. 젊을 때 했던 필경사 챠트사도 손으로 하는 것이고요, 이제 손주들이 나이 드니 더 이상 손이 가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게 해서 저희가 분가해 나왔지요. 시간이 더 남으니 유튜브도 더 본격적으로 할 수 있고.. 좋습니다.

필경사, 챠트사 일을 하셨군요. 이제는 없어진 역사 속 직업이지요?

컴퓨터가 발전하면서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 전문직업군에 속했습니다. 어려서부터 글씨를 이쁘게 썼다 합니다. 군 입대해서도 육군정보사령부에서 차트사를 했습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제 글씨를 좋아한다 해서 육본에 불려가 많이 썼습니다. 제대 후 국토통일원에서도 관련 일을 했습니다. 말단 공무원들 보다 월급이 많았습니다. 그 뒤 대림건설 사우디현장에서 행정업무를 한 후 슈퍼마켓을 차렸습니다. 당시 슈퍼를 하면 돈 잘 번다 해서(함께 웃음)

영주에 사실 때, 영주 어디서 사셨는지요?

광승(휴천1동)에 살았습니다. 아내도 거기 출신입니다. 처제도 거기서 태어났고요. 원래 저는 동해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철도청에 근무하시며 근무지가 바뀌면 이사하고 전학해야 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은 동해시 송정초, 2학년은 묵호 동호초, 3,4학년은 현동 소천초, 5학년은 치악 금대초를 다니다 6학년에야 영주 풍기초등학교로 옮겨 졸업했습니다. 영주중학교와 영주제일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영주제일고는 당시 영주종합고등학교로 저는 상과였습니다.

철도청 근무하던 분들은 이사를 많이 다니면서 자녀들도 여러 학교를 다녔다더니 바로 그런 사례이군요. 요즘 시대적 문제이기도 한 왕따 같은 걸 당하지 않으셨는지요?

별로 그런 기억이 없습니다. 제가 붙임성이 좋았나 봅니다(함께 웃음). 잦은 전학으로 졸업을 한 풍기초등학교를 제외하고는 그 많던 여러 지역의 초등 친구들과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아내와 함께 안나프르나 베이스캠프(2019)
아내와 함께 안나프르나 베이스캠프(2019)

초등학교 졸업 후 광승으로 이사하시면서 부인과 한 동네 사시게 되었군요?

아내는 광승으로 이사하면서 알게 되었지요. 아내와는 동네 친구입니다. 사실 동네 친구라기 보다 선배지요. 아내가 네 살 연상입니다.

당시로선 드문 연상연하 커플이었군요?

고려시대 조선시대엔 여자 쪽이 연상인 경우가 많지 않았나요?(함께 웃음). 하긴 저와 같은 연상연하 커플이 당시 드물었습니다. 아내가 연상이니 좋은 점이 많습니다. 아내가 이해심도 깊고 요즘 제가 잘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함께 웃음). 아내와는 함께 해외도 가고 국내도 가고 여행도 하며 유튜브 영상을 찍습니다.

고향을 위해 한 말씀 해 주시지요.

나이가 들수록 고향은 더 마음속에 애틋합니다. 고향 인구가 준다니 걱정입니다. 방안을 찾으리라 봅니다. 관광객 등 체류 인구도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영주는 유명한 곳도 많잖아요.

풍기인삼축제에 오시고 다음 주에도 영주에 오신다니 제작하시는 유튜브 ‘초이타이현’이 영주를 많이 알리고 많은 사람들이 영주를 찾는데 도움을 주리라 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황재천 프리랜서 기자

 

 

 

 

 

 

 

 

 

최태현 유튜버 프로필

- 풍기초등학교 졸업

- 영주중학교 졸업

- 영주제일고등학교 (당시 영주종합고등학교 상과) 졸업

- (현)유트브 ‘초이타이현’ 제작 운영

- (현)영주제일고등학교 재경총동창회 산악회회장

- (전)영주중학교 재경 19회 동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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