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경 (수필가)

삶은 채우고 비우기의 연속이다. 부족함을 채우고 넘침을 분배하거나 비워냄으로써 균형 잡힌 삶을 그려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만족일 테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유형의 가치일 수도 있고, 보이지 않는 무형의 효용일 수도 있다. 자신의 삶을 살펴, 불필요하거나 방치된 부분을 과감히 버릴 수 있는 용기, 미니멀 라이프로 살아가는 힘일 것이다.

미니멀 라이프는 불필요한 물건을 줄이고 최소한의 것으로 살아가는 생활방식이다. 이는 물건을 줄이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적게 가짐으로써 삶의 중요한 부분에 집중하는 것이다. 적게 가진다는 건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만 남기고, 용기 있게 버리라는 의미다. 무엇이든 넘쳐나는 요즘 시대에 딱 맞는 생활방식이다.

미니멀 라이프가 한동안 유행처럼 번지던 때가 있었다. 단순하고 가볍게 산다는 건 복잡한 현대사회에 대한 위로다. 많은 이들이 이에 호응할 수 있었던 것도 가벼워짐의 미학 때문이었다. 비움은 또 다른 무언가를 채울 준비 과정이기도 하다.

비우거나 버림으로써 가벼워지는 것이 어디 물건뿐이랴. 우리가 느끼는 감정도 필요 이상으로 비대하다면 정리의 시간이 필요하다. 비움으로써 또 다른 것에 집중해 자신의 삶을 계발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위대한 가치는 없을 것이다.

감정을 비워내는 일에는 많은 집중이 따른다. 그것은 자신의 성장을 돕는 일이며 불필요한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으면서 성숙한 자신을 만들어가는 일이기도 하다. 객관화로부터 멀어져, 감정에 사로잡혀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그 생각을 과감히 정리하는 일이야말로 자신을 가장 안전하게 지킬 장치인 것이다.

친구의 지인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그의 가족은 부고를 알려야 하는데 어느 선까지 알릴지를 고민하다 카톡에 등록된 명단을 보고 모두에게 보냈다고 한다. 그중에는 한때 인연이었으나 그 인연이 다 끝난 이도 있을 테고, 본인과 상관없이 상대의 필요에 따라 등록된 이도 있을 것이다.

평소 카톡을 수시로 점검해 자신과 연이 닿지 않은 이를 삭제했더라면 불필요하게 부고를 보내는 일은 없었을 터, 누군가는 안 받아도 될 메시지를 받고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을 것이다. 간혹 주변을 정리하는 일이 자신을 위한 일임과 동시에 타인을 위한 배려일 때가 있다. 버림으로써 자유할 수 있음에 깊은 깨달음을 얻는다.

지난봄, 거실 한쪽을 차지하던 피아노를 시골 작은 교회에 기증했다. 피아노가 떠난 자리는 거실을 꽤 넓은 공간으로 만들어줬다. 시골 교회의 재정이 넉넉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피아노가 습기를 머금은 채 쇳소리를 내자 그 교회의 상황을 잘 알고 있던 절친이 필자에게 기증을 제안했다. 거실 벽면을 차지하던 피아노를 꼭 필요한 누군가에게 줘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친구의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피아노를 보내게 된 것이다. 조율사의 “피아노 건반도 양호하고 전반적으로 상태가 아주 좋아 평생을 쳐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피아노를 보내면서도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몇 번을 생각해도 참 잘한 일인 것 같다. 사용하지 않는 필자는 나눔을 실천해서 좋고, 피아노가 절실하던 교회는 기증받아서 좋고, 이 얼마나 적확한 소통이란 말인가.

피아노 배웅과 함께 집안의 안 쓰는 물건을 하나둘 정리했음에도 여전히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로 넘쳐난다. 정리하며 버리는 데도 그 숫자가 줄어들지 않는다. 옷장 가득, 신발장 가득, 싱크대 가득, 아까워 버리지 못한 용품들이 수두룩하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정리하면서 자신을 옥죄는 갖가지의 감정도 함께 내려놓는다.

억울한 일 앞에 들끓었던 분노, 믿음의 부재에서 오는 불신과 미움도 어쩌면 비우지 못한 감정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 미니멀 라이프는 외형적 부피만 줄이는 게 아니라 내적 허영으로 무장된 과시와 이기, 교만까지도 힘을 빼는 일이다. 주변 환경도, 마음 자락도 비워낸 자리마다 새롭게 채워질 공백과 마주한다. 미니멀 라이프의 실천이다. 버려서 얻어질 만족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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