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드라마국 이교욱 PD


지난 1987년 대통령 선거 직전, 영주 출신의 대학생들로 구성된 공정선거감시인단은 영주에서도 개인적인 성향과 정치적인 지향점은 달랐지만 선거만은 민주적으로 이루어 내겠다는 젊은이들의 의지가 모여서 50여명이 활약을 했었다. 

대선에 출마한 노태우,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후보들의 선거운동원에 대한 감시와 지역 출신 국회의원들의 활동도 평가하는 감시자 역할로 소도시 영주에서는 대단한 의미가 있는 활동이었다.

영주기독교학생회장 역임 등, 학창시절부터 인정 받은 리더십

당시 대학생들의 중심에는 서울대 신문학과에 재학 중이던 이교욱(44)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고교 시절부터 영주기독교학생회장을 맡아서 영주의 모든 교회를 돌면서 학생 간의 단합을 다지는 역할을 했었고, 영광고 문예부장으로 글쓰기에도 열심인 가슴이 뜨거운 청년으로 알려져 있었다.

대학 시절 이미 그의 자질은 리더십과 성실성으로 인정을 받고 있었고, 학생운동의 중심으로 역할도 했었다. 공정선거감시인단 활동도 그의 학창시절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도 놀라움 없이 받아들일 정도로 자연스럽고 그다운 행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글쓰기를 좋아하고 학생회 활동 등으로 지도력도 갖추고 있으며, 정의감이 넘치는 신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운동가가 갈 길은 누구나 신문기자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당연히 그도 신문기자가 되려고 하는 뜻을 세우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는 고향 영주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보겠다고 귀향하여 학원 강사로 한 1년을 보내다가 좀 더 뜻이 있고 보람 있는 일이 없을까 하는 고민을 하다가 방송국PD시험에 응시하여 합격을 한다. 처음에는 방송기자를 할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21세기 문화산업의 꽃인 방송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드라마 PD가 더 좋을 것 같다는 판단에 그 쪽을 지원하게 된다.

드라마 <용의 눈물>, <북경 내 사랑> 등 연출

그래서 90년부터 KBS  TV의 예능국과 교양국을 두루 거치고서 드라마 제작국으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인 드라마 제작에 관여하게 된다. 그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97년의 대하드라마 <용의 눈물>의 연출을 맡고부터이다.

조연출로 <용의 눈물>의 제작을 맡으면서 그는 신예감독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을 했고, 이듬해 입봉작으로 어린이 드라마인 <누룽지 선생과 감자 일곱 개>를 통하여 어린이 드라마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강원도 영월과 정선 지역의 동강 변에 위치한 소학교를 배경으로 6개월 동안 방송된 이 드라마는 시골학교 어린이들의 정서를 잘 담아 주었다는 평가와 함께 그의 인간됨에 반한 용의 눈물에 출연했던 많은 배우들이 참가하여 그간의 어린이 드라마 배우 캐스팅의 어려움도 극복했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이후 <내 사랑 내 곁에>, <파일럿>, <깡패아빠> 등을 연출하여 백상신인연출가상을 받기도 하는 등 주목을 받았다. 단막극 <깡패 아빠>는 이후 장막극으로 재구성되어 영화 <올드 보이>의 기본적인 틀이 되기도 했다. 또한 <북경 내 사랑>은 비록 국내 흥행은 실패했지만, 최초의 한중합작드라마로 중국에서 흥행에 성공하여 한류바람을 일으키는데 한몫을 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실패로 끝이 났던 북경 내 사랑은 이미 제작 과정에서 한국과 중국의 제작 방법이나 구조 등이 너무 달라 이 PD 자신도 국내 흥행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만들었다고 한다. 대본을 20번 이상 수정한 것이나 자막처리 방식 등에서 너무나 한중의 드라마 제작은 상이한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실패로 끝났지만 북경 내 사랑을 통하여 그의 이름은 중국 방송계에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인지 지금도 중국의 여러 방송국에서는 한중합작 드라마를 구상하는 단계에서부터 그의 자문을 구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고 있다.

덕분에 그는 지난 2월 말에 2년 계획으로 북경에 위치하고 있는 중국 최고의 미디어대학인 중국전매(傳媒)대학 아시아미디어연구소 내의 감독학과에서 중국드라마제작에 대한 연구원 및 강의교수로 초청을 받아 출국을 했다. 당분간 중국에서 중국의 드라마와 한국의 드라마를 비교 연구하고 강의하는 일을 맡으면서 한중 간의 문화교류에 일익을 담당하게 될 것 같다.

그의 표현에 따르자면 “무역 장벽은 높이기고 하고 때로는 거부감도 있지만 문화는 직접 진출이 가능하고 앞으로의 시대는 문화가 중심산업이 될 것 같다”고 한다. 따라서 “한류를 중국에 바로 심고 이식할 생각으로 중국에서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한국 문화를 전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물론 문화가 일방적으로 한국에서 중국으로 흐르지는 않겠지만 상호교류를 통하여 발전하는 중간에 자신이 서고 싶다는 의지인 것 같아 보였다.

남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으로 KBS 드라마국의 기획통

그는 KBS 드라마국 내에서도 상당한 기획력을 갖춘 인재로 통한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려하여 최초의 한중합작 드라마를 만들기도 했고, 방송국에서 보내주는 유급연수를 거부하고 스스로 험난한 길이라고 할 수 있는 자비연구원으로 중국최고의 방송 관련 대학에 연구와 강의를 맡으로 간 것이다.

어쩌면 그의 도전이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하는 사람보다는 사회나 국가를 위해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 살자” 는 그의 좌우명과도 통한다. 중국 연수 역시도 고교 시절 기독교 학생회 활동을 열심히 한 것이나 대학시절 학생운동과 공정선거감시인단 활동 등을 통하여, 무엇엔가 헌신함으로써 자기성취를 극대화하고자 하는 사람됨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2년 후 다시 KBS로 돌아와 방송의 꽃 드라마를 이끌 주역으로 우뚝 선 이교욱 PD를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길 바래본다.

(이교욱 PD 연락처   melody3792@hanmail.net 개인 전자우편  melody@kbs.co.kr  방송국 전자우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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