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복 (소백산백년숲 사회적협동조합 이사)
유달리 덥고 비가 많이 내리더니 계절은 벌써 추분을 지나 한로寒露 턱 밑이다. 코스모스 핀 도롯가에는 몸을 늘이고 볕을 쬐는 뱀이 많다. 몸을 덥혀야 하는 뱀은 달궈진 아스팔트 위나 산책로 양지바른 곳에서도 볕을 쬐는 경우가 많다. 뱀에 물리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한 계절이다.
어릴 적, 초가집 주변에는 구렁이가 살았다. 식구들은 혹시 구렁이가 눈에 띄더라도 집안 재물을 늘려준다 여겨 잡거나 괴롭히지 않았다. 지방에 따라서는 구렁이를 조상신으로 섬기기도 했다. 혹시라도 다른 집으로 옮겨 갈까 걱정하며, 잘 살게 해달라고 구렁이에게 빌었다. 생각해보면 옛날에는 구렁이가 흔했었다. 오죽하면 구렁이 담 넘듯 재밌는 이야기도 그렇게나 많았을까?
옛날 배달국에 복희씨가 있었다. 복희씨는 중국 사서에서도 동이족 수령이라고 했는데, 배달국 신시神市에서 태어나 풍산風山에서 살았기에 성을 풍風이라 하였다. 우리 태극기는 복희씨가 만든 복희팔괘도에서 태극과 4괘를 따 만든 것이다.
지나 사람들은 복희씨를 하반신이 뱀의 모양을 한 신으로 섬겼다. 여와女媧와 더불어 인류의 시조라 믿었다. 뱀의 모양으로 하반신을 꼬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 벽화가 중국 신강의 투루판 아스타나 고분에서 출토되었는데, 지나 천지창조신화에 등장하는 남신인 복희伏羲와 여신인 여와女媧를 소재로 삼은 그림이다.
갑골문을 연구하는 최춘태 박사에 의하면, 바람 풍風 자는 본래 뱀을 나타내는 글자였다고 한다.
뱀의 고대 우리말이 “ᄇᆞᄅᆞ”였는데, 부는 바람도 “ᄇᆞᄅᆞ”였고 실로 짠 베도 “ᄇᆞᄅᆞ”였기에 음이 같은 風자를 가져다 썼고, 동이족의 상商나라가 망하고 화족의 주周나라가 들어서 중국에서는 부는 바람을 뜻하는 말 “ᄇᆞᄅᆞ”가 “프람”을 거쳐 “풍風”이 되었으며, 우리말에서는 명사형 “ㅁ”이 붙어 “바람”이 되고 “배암”을 거쳐 “뱀”이 된 것이라고 한다.
가파른 비탈을 기듯이 오르는 것을 “바라오른다”고 하고, 삼으로 짠 천을 “베”라 하고, 그 베를 한 ‘바람’, 두 ‘바람’하며 잰다. 송파구 풍납동의 풍납風納이나 수나라 당나라의 외침을 물리친 고구려의 백암성白巖城도 틀림없이 “바람성”이었을 것이다.
뱀은 신神이다. 송편을 바람떡이라 하며, 바람막이 굿을 한다. 속에 바람이 들었다고 바람떡인 줄 아는데 그게 아니다. 부는 바람이 잔잔해지라고 하는 ‘바람막이 굿’이 아니다. 신에게 바치는 음식이라 바람떡이고 귀신을 물리치려고 하는 굿이 바람막이 굿이다. 복희씨의 후손이니 뱀을 신으로 섬기는 습속이 남아있는 것 아니겠는가? 휘파람을 불면 뱀이 나온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복희씨, 신농씨, 여와씨를 화하족의 조상, 삼황三皇으로 조작했으나 세분 모두 동이족으로 우리 민족의 조상들이다. 복희씨는 뱀을 수호신(토템)으로 섬기던 족속의 수장으로 뱀을 뜻하는 風자를 만들었다. 화하족은 風자가 뱀을 뜻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니 복희씨가 뱀의 몸으로 그려지는 까닭을 알 리가 없는 것이다.
이같이 고대 한국어가 화석처럼 남겨진 것이 갑골음이다. 은나라에서 쓰여지던 가사라朝鮮의 말과 문자가 주나라에 의해 중국어의 원천이 되었던 것이다. 상고의 역사가 갑골음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아,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
긴 추석연휴 마지막 날, 오늘은 개천절이다.
단군왕검이 아사달에 “가사라朝鮮”를 세운 것을 기리는 날이다. 고려시대 시중을 지낸 행촌杏村 이암(李嵒1297-1364)은 「단군세기」에 ‘개천開天 1565년 상월 3일에 단군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워 조선이라 하였다’고 적었다. 그러니까 개천開天은 커발한 환웅이 신시神市에 배달국을 세운 것을 말한다.
개천, 그날로부터 1565년이 지난 해, 10월 3일에 단군왕검이 아사달에 도읍하여 가사라朝鮮을 세운 날이 오늘 기리는 개천절이다. 명칭이 바뀌었지만, 사대하던 왕조와 외세가 삭제한 우리 상고사를 바로 세우라는 뜻이리라. 복희팔괘를 국기로 쓰는 우리나라 대한민국 국민은 배달국의 자손들이요, “바람”의 후예들인 것도 생각해보는 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