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율 (동양대학교 교수)
9월 28일부터 중추가절(仲秋佳節) 추석(秋夕) 연휴가 시작된다. 추석은 문자 그대로 가을 저녁이다. 많은 가을 저녁이 있지만 유독 추석을 말하는 것은 바로 햇곡식과 햇과일을 거두어 조상에게 올리는 천신(薦新)을 하고 밝은 보름달을 볼 수 있는 명절이기 때문일 것이다. 추석의 유래는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거의 모든 명절이 그렇듯이 추석 역시 농업 문명을 기반(基盤)으로 생겨났다. 따라서 농업 문명의 주기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오랜기간 명절 본래의 정신은 시대를 달리하면서도 잘 지켜져 왔다.
그러나 농업 문명에서 오늘날의 소위 AI 문명으로 문명의 기반이 달라진 지금 대부분의 명절이 그렇듯 추석도 본래의 면모에서 많이 퇴색되었다. 천신(薦新)을 통한 제사는 물론이고 떨어져 지내던 가족 간의 모임도 점점 줄어드는 대신, 국외(國外)로의 여행 같은 점차 개인적인 여가활동으로 그 영역이 변화하고 있다.
각종 매체를 통해 들려오는 소식으로는 벌써 외국으로 나가는 항공권이 매진(賣盡)될 정도라니 가히 명절의 의미가 무색해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다소 변형된 양태(樣態)이기는 하나 아직도 기성세대들에 의해 명절의 잔영(殘影)이 남아 있다. 실례로 추석 명절을 앞두고 조상의 묘소에 소분(掃墳)하는 일이라든가 조상에 대한 제사도 일정 부분 유지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문명과 인식의 변화로 이런 잔영조차 서서히 퇴색해 가는 것만은 사실이다. 도시에서 출생해 성장한 세대에게 산과 들에 조성된 조상의 무덤 관리는 이미 벅찬 일이 되어버렸다. 산이 우거져 자주 가지 않으면 어디가 어디인지를 기성세대들조차 헤매곤 하는데 젊은 세대들이야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 가운데 최근 기사를 보면 농협에 의뢰하는 벌초 대행 신청도 크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여기에는 장례문화의 변화가 한 몫 하는 듯하다. 과거 매장이 주류를 이루던 것이 화장으로 변화하였고 또 화장을 하더라도 해양장(海洋葬)이나 수목장(樹木葬) 등으로 산골(散骨)을 하는 시대가 되어 더 이상 소분(掃墳)의 모습은 보기 힘들게 되었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최근 백 년간의 변화를 일찍이 어떤 인류도 경험한 적이 없었다. 지금의 60대 이상 세대들은 농업 문명을 비롯하여 산업 문명, 지식정보화 문명, AI 문명 등을 한 생애에 살아내고 있다. 왕조의 군주주의 잔영 의식에다가 민주 시민의식이 혼재(混在)된 터수에 의식의 혼란으로 갈팡질팡하고 있다. 그런데 자신들이 낳은 아들과 손자의 세대는 완전히 다른 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그야말로 의식의 낀 세대이다. 또한 기성세대들은 부모를 모신 마지막 세대이지만 그 아래 세대에게는 대접다운 대접은 받지 못할 첫 세대라는 것이다. 그러나 문명적, 사회적, 시대적 변화가 초래한 도도한 세월의 흐름을 어찌 탓하랴?
다만 한 가지는 꼭 말하고 싶다. 아무리 사회가 달라지고 인식의 변화를 어찌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근본적인 삶의 원리나 정신, 의미는 유지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런 가치들마저 변화의 흐름에 밀려 사라진다면 인간의 세상이 너무 삭막(索漠)해질 것이란 생각이 얼핏 든다.
⌈예기(禮記) 제통(祭統)⌋편에 이런 말이 나온다. 뭔고 하니 “제자(祭者)란 소이추양계효야(所以追養繼孝也)요 효자(孝者)는 축야(畜也)니 순어도(順於道)하야 불역어륜(不逆於倫)이 시지위축(是之謂畜)이라”가 그것이다. ‘제사는 부모에게 생전에 미쳐 못다 한 봉양을 추후에 하고 못다 한 효도를 계속 이어서 하는 것이다. 효라는 것은 축(畜 모음, 간직함)이니, 도에 순히 하여 인륜에 거스르지 않음을 축이라 한다’라고.
사람은 누구나 생물학적인 수명이 있어서 영생(永生)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부모를 봉양하는 일을 소홀히 하다가 막상 부모님이 돌아가시게 되면 봉양할 수가 없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제사는 효도나 봉양을 가능하게 만드는 하나의 기회인 셈이다. 부모님이 부재(不在)한다 해도 제사라는 형식을 통해 마음의 위로와 평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대 변화에 따라 명절의 본래 의미가 많이 퇴색하였으나 그래도 우리가 잃지 말고 지켜나가야 할 가치로서의 제사와 효도에 대해 말해보았다. 제사와 효도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근본을 생각하게 해주는 사회적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여하한 경우라도 인간은 자기를 존재케 한 근본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제사의 형식이야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겠으나 그 근본정신만은 유지되기를 기대해본다. 올해 추석부터 모든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해보는 출발점이 되기를 아울러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