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남 (작가)

교과서가 부족하여 책 한 권을 짝꿍이랑 함께 보면서 공부했던 초등학교 때 기억이 있다. 어린 시절 교과서를 제외하고 읽을 수 있는 것은 자그마한 학급문고에 꽂혀 있던 것들이 전부였다. 더 많은 책을 읽고 싶어 했던 목마름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지금은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책을 읽을 수 있고 소유할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쓰레기 배출장에서 수북이 쌓여 있는 책더미를 종종 보게 된다. 얼마 전 지인이 이사를 가면서 책을 정리한다는 연락을 했다. 방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책들을 어쩔 수 없이 버리고 간다는 것이다. 필요한 것을 골라보니 두 박스나 됐다. 또 다른 이들이 일부를 가져가고 나머지는 모두 쓰레기가 됐다.

이처럼 집집마다 버려지는 책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족 구성원의 성장 속도에 맞추어 구입해서 어느 시점이 되면 자연스럽게 버려지는 것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나둘 버려지는 책 중에는 지역의 소중한 역사 자료가 있을 수도 있다. 책은 사회적 자산이다. 우리나라에서 해마다 버려지는 책이 천만 권이 넘는다고 한다.

이렇게 버려지는 책을 모아 마을마다 작은 도서관을 만들면 어떨까? 거창하게 새롭게 건물을 짓거나 꾸밀 필요 없이 있는 공간을 활용하면 좋을 것이다. 2015년에 개관하여 2019년 대한민국 공간복지 대상을 수상한 서울의 은평구 ‘구산동도서관마을’은 낡은 연립주택 3채를 연결하여 공간복지를 이뤄낸 도서관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기존의 공간을 활용하여 독특한 구조로 재탄생한 도서관이자 공공의 열린 공간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다.

우리 지역에도 동네마다 마을을 대표하는 번듯한 집이 한 채 있다. 겨울에는 동네에서 제일 따뜻하고 여름에는 제일 시원한 곳, 바로 경로당이다. 영주시에는 현재 364개의 경로당이 있다. 경로당이면서 마을회관 기능을 하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여기에 한 가지 기능을 더 추가한다면 활용도가 그만큼 넓어지지 않을까.

경로당은 이미 마을 주민이 모여서 문화 활동을 하고 있고, 그 외 여러 정보 공유를 하거나 단합을 위한 최적의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처럼 다기능적 경로당의 한 부분을 도서관 공간으로 탈바꿈한다면 어떨까. 주민뿐만 아니라 휴가를 이용해 고향을 다녀가는 자녀들, 손자, 손녀들에게도 유용한 공간이 될 것이다. 굳이 비싼 돈을 들여 시스템을 재정비할 필요도 없이 여유 공간을 활용하자는 얘기다.

영주시에는 고령의 농사 인구가 많은 편이다. 시내에서는 그나마 문화적인 접근이 수월 하지만 외곽 지역에서는 도서관을 이용한다거나 취미생활을 위해서 시내까지 나온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가뜩이나 농번기에는 농사일 외에는 따로 시간을 낼 수 없을 정도로 바쁘다. 하지만 농한기에는 여유로운 시간이 많다.

문화 혜택이 단절되고 소외된 지역에서 책으로의 문화공간이 마련된다면, 부족했던 시골의 문화 활동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경로당’하면 지금까지는 겨울이면 방마다 빼곡하게 모여 앉아서 ‘화투놀이’가 한창인 것이 대부분의 풍경이었다. 생각해 보면 어르신들이 할 수 있는 마땅한 놀이가 없기도 하다.

그렇다면 버려지는 책을 모아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마도 마을마다 특색 있는 도서관이 될 것이다. 마을 사람들 구성요소에 따라서 책의 종류도 다양할 것이고, 이 또한 특별한 재미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도서관을 누구나 부담 없이 드나들면서 자발적으로 책을 꽂아두거나 필요한 것을 가져갈 수 있도록 개방형으로 운영하면 될 것이다. 누구든지 원하는 책을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마을을 대표하는 제법 훌륭한 도서관이 되지 않을까. 아마도 경로당 활성화에도 기대효과가 있을 것이다. 책으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책을 이용하여 어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면, 작지만 접근성이 좋은 의미 있는 장소로 거듭날 것이다. 책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기도 하지만, 또 하나의 삶을 만들어 갈 수도 있다. 비록 어느 한적한 마을의 작은 도서관일지라도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이루어진다면 결코 작지 않은 ‘가치’를 만들어 낼 것이다.

경로당의 주인은 인생을 오래 살아온 어르신들이다. 어르신들이 주체적으로 공간을 나누고 마음을 내어 마을을 대표하는 문화공간을 마련한다면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영주시를 떠올리면 마을마다 작은 도서관이 활성화되어 책도 읽고 환경도 지키는 ‘책 읽는 도시’가 될 수 있기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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