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
식당
-이윤학
한 그릇 짬뽕을 시켜놓고
흰 플라스틱 컵을 들었다.
짧은 머리카락 하나가
바닥 귀퉁이에 빠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머리카락이 아니었다.
짧은 금이었다. 때가 낀
짧은 금이었다.
물을 한 모금 마신 것뿐인데
컵에 있던 금이
내 머릿속에 옮겨와
선명해졌다.
밥을 시켜놓고
혼자 앉아 있을 때마다
컵을 확인하게 되었다.
네 부재를 확인하게 되었다.
-오래된 안부
그가 나를 떠났습니다. 아닙니다. 내가 그를 떠났습니다. 그가 흘렸을 듯한 머리카락이 실금 간 컵으로 내 앞에 놓였습니다. 부재가 확인되는 순간입니다. 부재 위에 또 다른 부재를 쌓는 순간입니다. 남겨진 것은 흔적과 뻥 뚫린 마음뿐입니다.
“밥을 시켜놓고/ 혼자 앉아 있을 때마다” 화자는 고백합니다. 그와 함께 숨 쉬고 싶다고. 그러면 앞에 없는 그의 대답이 들리는 것도 같습니다. ‘파김치 척척 얹어 햅쌀밥 한 공기 배 터지게 먹이고’ 싶다고.
식당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가요? 달큼한 냄새와 말랑말랑한 이야기와 몽실한 웃음이 번지는 곳이잖아요. 음식을 먹고 나면 배부름보다 마음이 한껏 부른 곳이잖아요. 그런데 이 시 속의 풍경은 그림자 한 바가지 풀어 놓은 것처럼 스산합니다. 현대인의 칼날 같은 고독과 마주하게 합니다. 그래서 더욱, 당신과 함께여야 하지 않을까요? 이토록, 아픈, 고백과 밥을 먹다가는 한술도 뜨지 못할 테니까요.
영주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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