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는 수학 강사’, 아파트 비리척결 투사가 된 까닭은

여느 지방 중소 도시처럼 영주도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어 지방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당국이 각종 인구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구증가 정책이 출산장려와 귀농 귀촌 운동에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귀향운동으로의 패러다임 변화가 절실하다.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머물고 있는 지역 출향인은 대략 3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에 본지는 이들 출향인이 은퇴 후 자신이 평생 직장생활을 하며 쌓아온 경륜을 귀향을 통해 고향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애향인 인터뷰를 마련했다. 이번 애향인 인터뷰를 통해 인구증가를 위한 귀향정책과 지역발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편집자 주>

 

90년대 아파트 비리 척결 활동 ‘신지식인’ 선정

정직을 강조한 부친, “신지식인이 선비입니다”

현재 사과화상병 문제 해결 방안 강구에 ‘몰입’

신지식인 교육강사단 출범식-강사단과 관계자(1999.8.27)
신지식인 교육강사단 출범식-강사단과 관계자(1999.8.27)

‘신지식인’은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발상으로 지식의 활용 가치를 높이 끌어올린 사람이 선정대상이다. 신지식인 선정 초기인 1999년, 아파트 비리 해결 관련 신지식인도 있었다. 우리고장 영주 출신의 김용진씨다. 김용진씨는 한국신지식인연합회 대표 총재이다.

김 대표는 30대에 ‘아파트 비리 해결사’로 통할 정도였다. 그는 원래 잘 나가던 수학 강사였다. 그러던 그가 아파트 비리 해결에 뛰어든 건 자녀의 성장과 함께 이주한 아파트 놀이터의 고장 난 놀이기구 때문이었다. 아파트 비리의 실체를 접하고는 30대 중반에 본업도 미뤄둔 채 비리 척결을 위한 ‘시민운동’을 시작했다. 당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에 뛰어들어 생업에 타격도 받았고 마음고생도 많았다고 한다.

그의 활동은 많은 호응을 받아 도움 요청과 제보 전화가 매일 수십 통이었다. ‘아무도 손대지 않는 불모지를 개척해 아파트 관리비가 거의 들지 않는 새로운 개념의 아파트 단지 문화 형성’이 그의 목표였다. 그의 활동은 PC통신으로 널리 알려지고 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 중요한 정보제공의 장이 됐다.

그의 신지식인 선정은 이같은 활동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요즘 지구온난화에 따른 사과 질병, 특히 사과화상병 해결에 꽂혀 있다. 영주시 ‘선비세상’에서 개최된 지역문화탐방워케이션에서 그를 만났다.

지금도 아파트 관리를 둘러싼 비리가 있습니다. 아파트 비리 척결을 위한 활동을 일찍 시작하셨는데 동기가 있었나요?

아이들 교육을 위해 단지 내 학교가 있는 아파트로 이사했습니다. 놀이터 그네가 고장나 있었습니다. 관리실에서는 동대표 통하라 했는데 해결되지 않아 동대표에 출마했습니다. 동대표도 한계가 있어 동대표 회장에 출마했습니다. 상대 후보가 주민 추천 명의도용하고 자기 손가락으로 지문을 찍었더군요. 무효 다툼이 법정 싸움으로 이어지고 협박도 많이 받았습니다.

고생이 많았겠습니다. 그래서 바로 동대표 회장으로 아파트 문화 혁신 활동을 하셨나요?

웬걸요. 상대가 동대표를 오래 한 사람이라 멋모르고 도전한 저를 너무 힘들게 했습니다. 합의하자고 해서 합의했더니 또 소송을 하더군요. 저는 제가 학원 운영 겸 운영하던 싸이트를 ‘아파트 하자와 관리’로 바꾸어 문제점을 하나하나 밝혔습니다.

언론에도 제보했습니다. 검사님들을 만나니 관련 공부를 하면 좋겠다 하더군요. 아파트 관리 관련 공부도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학원 운영에 신경을 덜 쓰게 되어 생업도 어려워졌습니다만 성과가 보이기 시작하는 일을 중도에 그만둘 수 없었습니다. 상대의 집요한 공격에 대응해야 하기도 했고요.

국정신문 김용진대표 관련 소식(1999.6)
국정신문 김용진대표 관련 소식(1999.6)

아파트 문화 혁신활동을 어떻게 하셨나요?

3천 세대가 넘는 단지였는데 아파트 관리를 둘러싸고 주민들끼리 싸우는 게 아파트 관리 실상을 잘 알지 못해서이기도 했습니다. 주민들 교육을 통해 아파트 관리에 대해 알렸습니다. 그 과정에 검사님들과 판사님들의 조언도 받았습니다.

온라인(당시 pc통신)으로 질의응답을 하니 좋은 사회적 활동이라 생각하셔서 도움을 주셨습니다. 방송과 신문 기자들이 정보를 요청하면 공론화 차원에서 적극 응대했습니다. 홍보전단지도 배포했습니다. 찌라시 배포했다고 벌금도 냈습니다(함께 웃음).

저도 아파트에 살아 보았지만, 동대표 중엔 재무제표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대학 전공 수학과 대학원 전공 회계학이 아파트 주민들에게 아파트 관리 실상을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파트 관리 회계장부를 알기 쉽게 주민들에게 설명했습니다. 지금은 아파트 동대표들이 그러지 않겠지만 당시만 해도 동대표가 밥벌이 수단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비리는 그런 데서 출발했습니다.

신지식인 선정 초창기인 1999년 신지식인으로 선정되셨더군요.

어려움 속에서 아파트 관리 정상화를 위한 활동을 하여 아파트 신문화 창조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당시 정부가 정보통신산업 발전에 중점을 두었는데 PC통신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주민 교육을 했던 게 신지식인 선정에 작용했다고 합니다.

신지식인으로 선정되셔서 주변의 관심도 많이 받으셨겠군요.

신문과 방송에 소개됐습니다. 많은 사람이 박수치셨습니다. 오랫동안 연락이 안 되던 고향 친구들 연락도 왔고요. 아파트 문제와 관련 방송과 신문에서도 연락이 많이 왔습니다. 아파트 관리 상담이 하루 1만 건이 오기도 했습니다. 온라인 상담이지만 대응이 힘들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힘들기도 했습니다. 생업이었던 학원 강의에 차질이 많이 생겼습니다. 아이들과의 소통에도 문제가 생겼고요. 지금 생각하면 식구들에게 미안하기도 합니다.

아파트 관리 문제 해결에 뛰어들기 전 학원 강의가 잘 되었었나 보군요?

입시학원 강사를 할 때 ‘잘 나가는 수학 강사’란 평을 들었습니다. ‘과학고 입시연구소’를 만들어 전국 1천600여 명의 영재들에게 수학과 논술 문제를 PC통신으로 무료 배포하고 동사무소에서 ‘무료 수학교실’을 열기도 했습니다. 당시 수입이 잘 나가는 직장인들 보다 많았습니다. 그러다 아파트 문제 해결에 온 정신을 쏟다 보니...(웃음)

신지식인으로 선정되시고 강의 의뢰가 많이 오지 않았나요?

당시 정부 관련 부처를 통하여 강의 의뢰를 많이 받았습니다. 전국 여러 지역에 갔습니다. 당시 그런 강의 강사료 수준이 매우 낮았습니다. 어떤 때는 정말 교통비 수준이었습니다. 당시 아파트 문제 해결 관련 강의로 엄청 바빴는데 강의로 돈을 벌지는 못하는 사람이었지요.

사회적 문제 해결에 나섰다가 개인적 희생도 보셨군요. 사회적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는 게 평소 지론이셨나요?

처음엔 아파트 단지 내 고장 난 그네 문제를 해결하려는 개인적 희망이었는데... 어쩌면 경찰관 생활과 공무원 생활을 하신 부친의 영향을 받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버지는 정직을 강조하셨습니다. 저는 순흥면 읍내리 137이 고향입니다. 신지식인이 선비라 합니다.

선비의 고장 영주시 출신 답습니다(함께 웃음). 신지식인이 선비라는 말에 동의합니다. 부모님은 생존해 계시는지요? 영주에는 자주 오시고요?

어버님은 타계하셨습니다. 어머니는 고향에 계시면서 농사도 짓고 하셨는데 지금은 편찮으셔서 서울 요양원에 모셨습니다. 제가 5남매의 장남으로 제가 있는 곳 가까이에 모셨습니다. 어머니는 순흥안씨로 현존 최고령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1주일에 한 번 올 때도 있고 드물게는 한 달에 한 번 올 때도 있습니다. 영주에 오면 영주에서 열리는 행사에 가능하면 많이 참석하려 합니다. 기자님을 만난 이번 행사(8.24과 8.25 양일간 개최된 영주문화관광재단 주관 ‘지역문화탐방워케이션’)도 고향의 ‘선비세상’ 행사인지라 시간을 내어 참석했습니다. 폴리텍대에서 전기 관련 공부도 하고 있구요.

고향에 오시면 친구들도 만나시겠지요? 영주에서 학창시절을 얼마나 보내셨나요?

저는 영주에서 영주남부초등학교, 영주중학교, 영주중앙고를 나왔습니다. 영주중앙고는 1회 졸업생입니다. 당시 신설학교로 선생님들이 전통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열정적으로 공부를 시키셨습니다. 영주에 오면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후배들의 공부를 돕는데 많은 신경을 씁니다. 내일도 자격증 시험 볼 친구들을 만납니다.

대학 가실 당시는 지역에서 공부 잘 하면 서울대 아니면 지역 대표 대학인 경북대라고 했었지요? 경북대 입학을 하셨으니 공부를 잘 하셨겠군요.

성적이 좋았습니다만... 저는 친구들 보다 더 많은 시간을 공부하려고 했습니다. 친구들이 밤 12시 까지 공부하면 새벽 2시까지... 이런 식으로 공부했습니다.

요즘에는 사과 농사에 관심을 쏟고 계시다구요?

선친이 갖고 계시던 농토도 있고 귀농 아이템으로 사과를 택했습니다. 선친께서 능금을 좋아하신 탓도 있고요. 영주시농업기술센터에서 종자관리 관련 수업도 들었습니다. 그때 영주에서는 저 혼자 종자관리사 자격 시험에 합격을 했는데 담당 공무원들이 매우 기뻐했습니다.

서울과 영주를 비롯 여러 지역을 지금도 다니고 계시다는데 고향에 대해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고 느끼는 점이 많으시겠지요?

사실 조심스럽습니다. 도시재생은 여러 지역에서 하는데 저도 서울 도시재생 사업에 참여했습니다. 문화도시로 지정된 곳을 방문했더니 영주시에서 참고하셔야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농사는 앞으로 스마트팜이 중요합니다. 조직배양과 스마트팜으로 사과대목의 바이러스프리 무병묘사업의 정착이 필요합니다. 뜻을 같이하는 1천명의 사과과수원 사장님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국가신지식인 관련 모임도 하고 있나요?

국가신지식인 400인 중 지역에서 활발한 활동능력을 보이는 분들이 책임을 맡는 ‘한국신지식인연합회’ 재창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신지식인 2세를 포함하는 교류의 단체로 자녀들을 성장시키는 프로젝트도 금년 10월 14일 어린이 대공원 숲속의 무대에서 할 계획입니다.

                                                                               황재천 프리랜서 기자

김용진 대표
김용진 대표

 

 

 

 

 

 

 

 

 

김용진 대표 프로필

-영주남부초등학교, 영주중학교, 영주중앙고등학교

-경북대 수학과, 경북대 대학원 회계학과

-(현)한국신지식인연합회(재창립) 대표 총재

-신지식인(1999년 선정)

-(전)아파트실천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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