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
기억
-황화섭
기억력으로 우리는
서로를 깔보고 혹은 기가 죽는다.
기억할 것도 별로 없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다가
문득 내가 세상을 살면서 가장 오래된 기억은 뭘까,
궁금해 한 적이 있었다.
도무지 그 맨 처음을 기억하지 못해서
그저 먼 하늘만 쳐다본 날이 있었다.
기억의 혹독함을 맨 처음 경험한 그날 이후로
기억의 습작 연습은 내 삶의 중요한 일상이 되었다.
혹독할 수 있었던 삶에
가벼움을 던져주는 그런.
-기억 이식
모퉁이마다 크고 작은 조각들로 이어 붙인, 다시 돌아오지는 않겠지만 선연히 재생되는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선명한 기억이건, 녹슨 기억이건 마주해야 할 때 말이에요. “기억할 것도 별로 없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다가/ 문득 내가 세상을 살면서 가장 오래된 기억은 뭘까,” 하면서요.
역경인 줄 알았는데 낭만이 되는 기억 몇 가닥, “혹독할 수 있었던 삶에/ 가벼움을 던져주는” 맛있었던 기억 몇 가닥에 새삼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합니다. 또 생각해보면, 비릿했던 추억을 함께 만들었던 친구들. 잊지도 못했는데 만나지도 못한 그들 몇몇이 아직은 남아 있어, 하늘을 받들 듯 기억을 받든 기차를 타 보기도 합니다.
가끔은 길을 잃어 기억을 더듬어보는 것도 괜찮겠지요. 찬란했던 깜깜했던(혹은 혹독했던), 기억의 심지가 지금을 살아내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남은 삶에는 좋은 기억들이 더 많이 쌓일 것을 믿습니다.
영주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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