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경(수필가)

친구로부터 꽃 선물을 받았다. 한 아름의 꽃다발이다. 특별한 날이 아님에도 의미를 부여해 멋진 하루를 열어 준 친구다.

모양과 색, 향이 다른 여러 종류의 꽃들이 보기 좋게 어우러져 있다. 꽃마다 개성이 강해 어우러지기 힘들 줄 알았는데 괜한 염려다. 꽃들이 힘을 뺀 자리에 들어선 아름다운 조화다. 사람도 이처럼 주어진 위치에서 힘을 뺀다면 조화로운 관계가 형성되지 않을까 싶다. 특히 갑과 을의 관계라면 더욱 그렇다.

갑은 강자이고 을은 약자다. 대부분 갑의 요구를 을이 들어줘야 하는 구조다. 둘은 상대적이다. 양 당사자 간, 서로가 원하는 걸 교환함으로써 그 대가를 받는다. 갑이 서비스를 요구하면 을은 용역을 수행함으로써 서로의 욕구가 충족된다. 갑은 영원한 갑이 될 수 없으며, 을 역시 영원한 을이 될 수 없다.

이쪽에서 갑인 사람이 저쪽에서 을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갑과 을은 언제든 자리바꿈이 가능하기에 어떤 상황에 처하든 교만하지 말고 겸손히 살아야 한다. 갑은 갑질로 자신을 과시하기보다 갑이라는 제 이름값을 해야 하고, 을은 을만큼 그 몫을 다 하면 된다.

사람 관계에서 갑과 을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불평등이고 모순이지만, 각자 주어진 자리에서 제 역할에 충실하면 될 일이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의 인격을 시험해 보고 싶다면 그에게 권력을 줘 보라.”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명언에서 깊은 깨달음을 얻는다.

갑보다 을이 많은 세상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어떤 분야는 가졌으나 또 다른 분야는 갖지 못한 게 태반이다. 자신이 갖지 못한 걸 상대가 갖고 있으면 그는 이미 우위에 놓인 셈이다. 상대가 나보다 우위에 있으면 갑이 되는 세상이다.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 결핍된 채 살아가는 이들에게 가진 자는 자신이 가진 만큼, 더 많은 이해와 배려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한다. 공부를 잘 하거나, 노래를 잘 부르거나, 그림을 잘 그리거나, 운동을 잘 하거나, 외모가 준수하거나, 돈이 많거나, 지위가 높거나, 권력을 가졌을 때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결국 자기만족으로, 삶의 보람으로 이어진다.

매슬로우의 인간 욕구 5단계 이론에서 마지막 단계인 자아실현도 만족에 따른 행복이다. 결국 자신의 욕구가 성취됨으로써 돌아오는 보상이며 보람이다. 그 보람을 감사히 여길 줄 알아야지 잘났다고 오만해서는 안 된다.

갑은 을이 되어보지 않아 을의 입장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갑과 을, 이 단어부터가 갑질로 해석되는 건 필자만의 생각일까. 간혹 부, 명예, 권력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을을 자처하는 이가 있다. 스스로 을을 원했을 때는 그만한 이유도 있을 터, 하지만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인 갑질까지도 을이라는 이유만으로 수용한다면 갑의 잘못된 관행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갑은 자신이 힘이 있다고 약자인 을을 함부로 대해선 안 된다. 을에게 무조건 참고 이해하며 복종하길 바라는 건 잘못이며, 부당한 것에 대해 을은 그 이유를 충분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을의 권리이기도 하다. 갑은 자신의 갑질을 두고 그럴 의도가 전혀 아니었다고 항변할 테지만, 을의 입장에선 자신이 을이라는 걸 정확히 알고 있기에 갑질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몇 해 전, 학원을 경영하는 지인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부자는 가난한 사람 앞에선 부유한 티를 내면 안 되고, 부자 앞에선 초라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했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 앞에서 부를 자랑하면 가난한 사람은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것이며, 부자 앞에서 가난하게 보이면 자신의 모습이 비굴하게 느껴져 자괴감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듣고 많은 생각을 하였다. 부자는 잘못도 없는데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반문할 수 있으나 부자는 다른 사람보다 많이 가졌기에 행동 하나에도 신중을 기해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공자의 논어 학이편(學而篇)에 나오는 ‘빈이무첨 부이무교(貧而無諂 富而無驕)’ 즉 ‘빈곤하게 살지만 아첨하지 않고, 부자이지만 교만하게 굴지 않는다.’에서 그 가르침을 배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많이 가졌다는 것 자체가 갑이 될 수 있지만, 갑이 진정 그 이름값을 다 하기 위해서는 너그러움과 관용을, 을 역시 그에 상응한 이해와 마음의 여유를 지녀야 한다.

치우침 없는 갑과 을의 조화, 결국 불평등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낼 초석이며 사회를 떠받치는 보이지 않는 힘이란 걸 우리는 한시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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