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야만 고향인가요, 조상이 있는 그곳이 바로 내 고향이죠”

여느 지방 중소 도시처럼 영주도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어 지방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당국이 각종 인구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구증가 정책이 출산장려와 귀농 귀촌 운동에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귀향운동으로의 페러다임 변화가 절실하다.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머물고 있는 지역 출향인은 대략 3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에 본지는 이들 출향인이 은퇴 후 자신이 평생 직장생활을 하며 쌓아온 경륜을 귀향을 통해 고향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애향인 인터뷰를 마련했다. 이번 애향인 인터뷰를 통해 인구증가를 위한 귀향정책과 지역발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편집자 주>   

 

조상이 살고 조상 산소 있는 영주가 내 고향

고향 문중 행사, 가족이 함께 ‘당연히’ 참가

 

고향을 지키기 것도 ‘당연’... 귀향 준비 중

지인에게 영주 방문 권하며 자주 동행하기도

여러 해 전부터 귀향을 말하며 귀향을 준비하는 애향인이 있다. 황홍섭씨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그에게 고향은 영주이다. 고향의 문중 행사엔 가족이 함께 참가한다.

어릴 때 고향을 떠난 선친의 묘소도 풍기읍 욱금리에 모셨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비롯, 조상들이 사셨고 묻힌 곳이 고향이 아니겠냐고 그는 말한다.

나이 어린 중학교 때부터 마음의 결정을 할 때면 홀로라도 고향 할아버지 산소를 찾았다는 그는 영주에서 태어나지 않았으면서도 언제 어디서나 고향이 어디냐고 하면 영주라고 하며 영주의 특산품을 홍보하고 영주 사람을 보면 반긴다.

영주와 연고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영주를 방문하도록 한 그는 최근 좋은세상연구소 워크샵의 영주 개최를 주선하기도 했다. 워크샵 참가자들을 인솔해 소수서원에서 회헌 안향을 비롯 이 지역 출신 선비들의 업적을 이야기했다.

출세한 사람도 아닌데 무슨 인터뷰냐고 사양하는 그에게 본 인터뷰가 귀향의 실마리 찾기가 중요한 취지라고 설득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귀향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귀향하려고 하시는데 계기가 무엇인지요?

한 마디로.. 고향을 지키려고요. 고향이니까요(함께 웃음)

복잡한 이유가 아니네요(함께 웃음). 어디에서 태어나 성장하셨는지요?

저는 서울 청파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자라기도 서울에서 자랐습니다만 서울이 고향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제 고향을 물으면 저는 늘 영주라 말합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풍기 욱금동이라 합니다.

때로는 외가집이 있던 영주 한절마(가흥1동)라 합니다. 외가는 병산 김난상 선생 후손으로 병산종택 아래에 있었습니다. 군대는 본적 출신에 따라 소집되는지라 영주 출신인 ‘영주 장정’으로 입대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선친이 본적을 서울로 옮기자 했을 때 제가 반대했습니다. 제가 반대하길 바라셨던 듯도 합니다(함께 웃음)

그동안 자주 만났습니다만 당연히 영주에서 출생한 줄 알았습니다. 또, 고향의 집안 행사에 동생과 아들이 동행하기도 했는데... 요즘 매우 보기 드문 모습입니다.

가까운 친족이 아니면 대부분 제가 영주에서 태어난 줄 압니다(함께 웃음). 사회에서 사귄 사람들은 저를 당연히 영주 출생으로 알고요(함께 웃음). 아마도 제가 영주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고 아는 척해서 그런가 봅니다.

아들에게 고향을 대물림하고 싶습니다. 아들이 어렸을 때부터 고향 이야기를 자주 해주었습니다. 동생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인지 고향의 집안 행사에 동생과 아들에게 동행을 권하니 따라나서더군요. 동생과 아들이 집안 행사에 참석해서도 쭈볏거리지 않아 뿌듯했습니다. 집안 행사에 오면 준비와 뒤치다꺼리도 같이 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요.

아내와 작은아들과 함께 가족 여행
아내와 작은아들과 함께 가족 여행

영주에 대해 ‘아는 척’ 수준이 아니라 많이 아시던데요.

고향 사람이랑 고향 이야기를 많이 나누다 보니 저절로 그렇게 된 것도 있고 인터넷 검색을 많이 하기도 합니다. 요즘엔 검색하면 웬만한 건 다 나옵니다.

선친의 산소를 고향 선산에 모셨는데 고향 사랑의 일환인가요?

아버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고향에 묻히고 싶다 하셨습니다. 저도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살고 있는 서울에서 가까운 곳에 모시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만 고향에 모시는 게 당연하니 다른 대안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고향이라 하지만 대부분이 대도시로 떠난 지역이고 태어나 자라지 않았으니 동창들도 없어서 자주 들리시기는 어색하고 서먹하셨을 듯 합니다만...

욱양서원 후신인 욱양단 춘향사 참례
욱양서원 후신인 욱양단 춘향사 참례

제가 좀 특이하다 평하는 지인들도 있습니다만 저는 고향 땅만 밟으면 편안한 느낌입니다. 조상들이 살고 묻힌 곳이라 생각해서 그런 것도 있고 어릴 땐 할머니도 생존해 계셨고 나이가 비슷한 사촌(황양섭, 현 대구 거주)도 있었습니다.

당시 큰댁이 있던 욱금리는 집성촌이라 만나는 어른들께 누구의 아들이라고 하면 다들 반겨주셨습니다. 한절마에 있던 외가에 가면 늘 반겨주셨습니다. 나이가 비슷한 외가 아제(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도 있어 잘 어울렸습니다. 어른들이 그 아제와 공부 비교를 할 때면 스트레스도 받았습니다만(함께 웃음).

외가가 병산 김난상 선생 후손이시군요.

네. 외가에 가면 병산선생 사당에 들려 참배를 했습니다. 풍기 큰댁에 가면 금계선생 사당에 들려 참배했습니다.

지금 영주는 인구 10만 선이 깨지는 위험선에 있습니다. 귀향하신다니 반갑고 고맙습니다. 

그동안 도시로 인구 집중은 시대적 현상입니다.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이농현상이 일어났습니다. 농촌에서는 일자리가 빠르게 줄어들고 도시에서는 새로운 일거리가 빠르게 많아졌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농촌이면서도 그 전과는 다른 시도로 인구 감소를 늦추는 곳도 있습니다. 그런 곳도 농업 인구 증가가 아니라 인구 감소 추세 속에 새로운 일거리로 사람들이 유입되었습니다.

우리 농촌은 인구 감소를 멈추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퍼붓지만 별로 효과가 없습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법을 써야 합니다. 꼭 거주인구 증가만 목표로 할 것도 아닙니다.

잠시라도 머무는 사람들이 있도록 하는 새로운 방안을 계속 시도해야 합니다. 제가 창립 때부터 관여한 좋은세상연구소도 지난 5월 ‘지방소멸시대, 몬드라곤에서 찾는 대안’을 주제로 포럼을 개최했었지요.

전문가적 말투입니다(함께 웃음). 구체적으로 아이디어가 있다면 말씀을 해주시지요.

제가 전문가는 아니고요(함께 웃음). 제가 거주하는 서울에서 도시재생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주민참여로 한 분과의 위원장을 맡고 있어서 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물론 귀향을 하고자 이미 오래전부터 말해온지라 도시재생 관련 강의를 듣거나 토론을 하면서 고향 영주에 대입하여 생각도 했습니다. 구체적인 아이디어는 이미 전문가들이 많이 제안했을 겁니다.

제 경험으로만 말씀드리면 고향에 왔을 때 당장 머물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건 많이들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고 저는 귀속감이 느껴져야 한다고 봅니다.

제 친척이 있고 그 친척들이 반겨주었고 아버지 이름을 말하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공통점이었고 몰랐던 친척들을 만나면 금계선생 이야기가 공통점이었고 외가에 가면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공통점이었고 가까운 외가 사람이 아니라도 병산선생 이야기가 공통점이었습니다.

공통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걸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금계선생 후손이 오게 하려면 그 후손들이 금계선생에 대해 알도록 하고 병산선생 후손들이 귀향하게 하려면 병산선생에 대해 미리 잘 알도록 하면 더 좋지 않을까요? 살갑게 대하는 분위기도 중요합니다.

훈계식의 말투, 차가운 거래식의 말투, 무뚝뚝한 말투를 가끔 접하면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만 귀향하고 싶었던 사람들도 머뭇거리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분위기를 만들려면 시민운동이 필요하겠군요. 각 문중은 조상의 이야기를 후손들이 알 수 있도록 알려주어야 한다는 말씀이겠고요? 

관 주도로 인구 늘리기가 물론 주가 되겠지만 영주 사람들이 귀향의 뜻을 가진 사람을 하나라도 더 끌어들이려는 열의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시민단체만이 아니라 각 문중과 각 동창회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출향인들은 다양한 연고를 활용해 많은 사람들이 영주를 방문하도록 하면 영주는 더욱 활성화되리라 봅니다.

저도 지금까지 여러 번 지인들과 함께 영주를 방문했었지요. 이번에 좋은세상연구소 학술 포럼이 영주 금양정사에서 개최되도록 했습니다(금양정사 수해로 인한 출입금지로 금선정으로 옮겨서 개최됨). 포럼의 공식 주제가 끝나고 뒤풀이 때 많은 이야기 소재가 영주이더군요.

참가자들이 영주에 대해 더욱 각인을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소수서원 방문을 통해 평소 지식으로 알던 소수서원 이야기가 아닌 또 다른 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서 좋았고요.

저도 지역 유력 문중의 일원이고 시민단체에도 속해 있는데 좀 찔립니다(함께 웃음).

매스컴 등 각종 소식 통로로 알기로는 귀촌인들과 현지인들이 서로 어울리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작은 마을인데도 서로 얼굴을 모르기도 한다지요. 서로 알아야 서로에게 도움이 됩니다. 귀촌인들은 현지인들이 배타적이라고 말하고 현지인들은 귀촌인들이 어울리기 보다 따지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저는 그게 오해에서 비롯됐다고 봅니다. 지나다니면서 잠시 멈추고 인사만 나누어도 관계가 나빠질 수 없습니다. 물론 서로 상대를 나쁘게 자극하는 선을 건드리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아는 척’ ‘잘난 척’하는 기운을 빼고 환하게 웃으면서 일상의 안부 인사만 주고받아도 분위기는 좋아질 겁니다.

혹시 귀향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하셨다면 어떤 준비인지요?

전통주 만들기 강의중
전통주 만들기 강의중
전통주제조과정 지도 중, 찹쌀과 고두밥 식히기
전통주제조과정 지도 중, 찹쌀과 고두밥 식히기

우리 전통 술을 만들고 있습니다. 가양주이지요. 가양주 모임에 정기적으로 참가하고 강의도 하고 실제 만들어 품평회를 갖기도 했습니다. 좋은세상연구소 학술포럼 뒤풀이에 내온 막걸리가 바로 제가 만든 술입니다. 다들 다른 술보다 더 좋아해서 뿌듯합니다. 

귀향을 하시면 고향을 대표하는 술을 만드시길 기대합니다.

저도 가끔 그런 꿈을 꿉니다(함께 웃음). 고향에서 나는 특산품과 조화를 이룬 술을 만들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황재천 프리랜서 기자

 

황홍섭 프로필

- 욱금동이 선조와 선친의 출생 생활 근거지.

- 한절마가 외가

- 단국대 사학과 졸업

- (현)좋은세상연구소 사무국장

- (현)전통주 제조 강의

- (현)강서수협 무진수산 경영

- (전)수협중앙회 중도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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