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풀 칼라LED전광판 개발, 한 때 세계시장의 90% 점유

대한전광 홍보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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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지방 중소 도시처럼 영주도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어 지방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당국이 각종 인구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구증가 정책이 출산장려와 귀농 귀촌 운동에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귀향운동으로의 페러다임 변화가 절실하다.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머물고 있는 지역 출향인은 대략 3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에 본지는 이들 출향인이 은퇴 후 자신이 평생 직장생활을 하며 쌓아온 경륜을 귀향을 통해 고향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애향인 인터뷰를 마련했다. 이번 애향인 인터뷰를 통해 인구증가를 위한 귀향정책과 지역발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편집자 주>

 

중학교 때부터 전자에 미친 한국 LED전광판 기술 개발의 주인공

값싸고 국가적 지원 배경으로 한 중국산과 경쟁할 제품 개발 중

아이 낳고 보육하기 좋은 환경 만들어 젊은 사람 모여 들게 해야

 

도시를 밝히는 심야 속 태양의 빛, 바로 LED전광판이다. 중소기업으로 세계 최초 풀 칼라 LED전광판을 개발해 전 세계 칼라 LED전광판 시장의 90%를 장악했던 ㈜대한전광은 영주 출신의 김재을 대표가 창업했다. 김 대표는 어렸을 적부터 전자에 빠져 살았다. 줄 세우기식 한국의 교육 풍토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만들고 그 꿈을 실현해 나간 사람이 바로 김 대표이다. 김 대표는 중학교 때부터 전자에 빠져서 그 한 길로 나아가며 지금도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현재 전 세계 LED시장은 값싼 노동력과 국가적 지원을 바탕으로 한 중국이 큰손이지만 김 대표는 신기술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제품을 세계시장에 계속해서 선보이고 있다. 그동안 그가 받은 특허만도 수백 개에 이른다.

영주에서는 어디에서 태어나 자라셨는지요? 또, 학교는?

김재을 회장
김재을 회장

저희 집은 원래 단산면 사천2리 속칭 바우에 있었습니다. 500년 전 입향한 함창 김씨 서영공 13대 손입니다. 아버지가 영주지방철도청에 근무하셨는데 부임지가 여러 곳입니다. 제천, 강릉, 속초 등 당시 영주지방철도청 관할 지역이 엄청 넓었지요. 아버지를 따라 생활 근거지를 옮겼습니다. 타지에서 태어난 형제도 있습니다. 그래도 중학교는 꼭 영주에서 다니게 하셨지요. 현재 영광중학교 근처에 저희 집이 있습니다. 형님이 지키고 계십니다. 저는 영주에서 태어나 영주중부초등학교 다니다 영주서부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영주중학교를 나왔습니다. 고등학교는 영주에서 다니지 않고 서울에 와서 다녔습니다.

고등학교 진학을 영주에서 하지 않고 일찍이 서울로 유학을 가신 거네요?

대학 재학 시절
대학 재학 시절

입시 교육 중심으로 제가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입시로 고등학교에 진학하기에는...(함께 웃음). 저는 중학교 1학년부터 전자에 미쳤습니다. 학교 공부를 제껴 두고 말입니다.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해야 좋은 고등학교를 가는데 저는 진공관으로 라디오 만들고 라디오 만든 걸 이용해서 무전기 만들고... 이러는데 빠졌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도 전자고등학교를 찾다가 서울의 광운전자공고에 입학했습니다. 당시 한국에서 유일한 전자공고였습니다. 대학도 광운전자공대 전자공학과로 갔습니다. 당시 대학 이름도 광운전자대학교였지요.

어릴 때 전자에 빠져 지내셨는데 에피소드도 있겠군요. 소개 하나 해 주시지요?

우리 집이 당시 기와집이었는데 옥상에 안테나를 설치해서 무전을 날리고 있는데 왠 아저씨가 저를 붙잡아 가 혼을 내더군요. 당시 무선은 간첩을 연상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오래 철도 공직자로 영주 인근 여러 역의 역장을 하셔서 아버지를 아는 분들이 많았지요. 아버지가 오셔서 ‘내 아들인데.. 공부는 안 하고 저런 데 빠져 지낸다...’, ‘지가 전자를 너무 좋아해서..’라고 하셔서 풀려났지요.

현재의 회사는 언제 창업하셨는지요?

대한전광 본사 사옥
대한전광 본사 사옥

대학을 나와서 회사 생활이 적응이 잘되지 않았습니다. 눈에 전자만 보였으니까요. 31살에 창업했습니다. 창업하고 나선 정말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밤 지새우기가 대부분의 나날이었으니까요. 풀 칼라 LED전광판을 세계 최초로 만들었습니다. 전 세계로 수출했습니다. 그러다 중국 공항 입출국장 40개에 저희 제품으로 LED를 다 설치했더니 중국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한국의 코딱지만한 회사가 했다니 난리가 난 거지요. 그때 중국에서 앞으로 LED전광판을 국가사업으로 해야겠다고 결정했다고 합니다. 선전시 보안구(우리 서대문구 다섯 배 규모)에 전광판구를 만들더군요. 부속부터 국가에서 지원했습니다. 10년이 지나니 우리 제품의 반값으로 내놓더라구요. 그때까지 세계시장 90%를 우리 제품으로 했었는데 중국산에 점령당했습니다. 그 때 우리나라 전광판 관련 회사 수십 개가 문을 닫았습니다. 우리도 급격하게 힘들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기술개발이 난국을 타개한다고 생각하고 일에 임하고 있습니다.

기술을 개발하면 후발 주자들이 많이 주시하겠군요?

사장인 제가 기술자이다 보니 기술개발을 잘 하는 회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 회사가 개발해 전시장에 내놓으면 엄청나게 영상으로 찍어갑니다. 중국에서 전시회 할 때만이 아닙니다. 현재는 한국에서만 전시회를 하는데도 중국 회사 쪽에서 카메라 수십 대가 저희 신개발 제품에 초점을 들이댑니다. 그래도 저희는 신제품을 계속 만들고 있고 앞으로도 만들 겁니다.

중국이 국제 특허를 신경을 쓰지 않는단 말도 들었습니다만...

네. 중국은 특허도 신경 안 쓰더군요. 저희가 보유한 특허가 수백 개입니다. 중국은 전광판 특허 하나 없어도 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중국이 바뀌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우리나라 동종업계가 우리 회사 빼고 모두 다 죽었습니다. 우리 회사만 하더라도 몇백 명의 직원이 있었는데 이젠 절반 이하입니다. 우리 회사도 포기하면 LED전광판 시장에서 우리나라는 먹이로 전락하는지라 치열하게 기술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기술 개발을 하시는군요. 요즘엔 어디에 중점을 두시는지요?

요즘엔 에너지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합니다. 에너지 위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에너지를 절감해야 합니다. 에너지 절감 기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서울 시내에 전광판이 엄청 많습니다. LED가 전기를 조금 먹는다고 하지만 LED 전광판 크기가 커지고 많아지다 보니 전체적으로 전력 소모가 큽니다. 저는 풀 칼라 LED 전광판 최초 개발자로 요즘 에너지 난 시대에 에너지 절약형 LED 전광판을 개발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고 있습니다. 돈을 벌고 못 벌고가 중요치 않습니다. 현재의 에너지 소모 1/3정도가 최고 목표인데 최소한 현재 에너지 소모의 60~70% 선이라도 해야 합니다.

개발하시고 그 개발 기술이 유출되어 회사도 어려워졌는데.. 또 개발하시고... 멋지십니다. 기술 유출을 막으셔야 하지 않을까요?

제가 신기술을 개발하면... 어쩌면 누군가 그 기술 훔쳐 중국 가서 개발제품을 들여올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우리나라를 생각해서라도 개발하려고 합니다.

새로운 기술 개발에 들어가면 투자비도 많이 소요될텐데... 대단하십니다.

투자비를 걱정하다 보면 아무 것도 못합니다. 우리 회사는 다행히 임차료가 나가지 않습니다. 강남의 본사 사옥도 임차가 아니고 일산 공장도 임차가 아닙니다. 본사 건물은 현재 대부분 임대를 해서 거기서 들어오는 임대료도 투자비로 씁니다.

새로운 시도를 또 하시는군요. 건강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데...

저 아직 건강합니다. 통풍이 고질이긴 하지만.. 건강하답니다. 일을 열심히 하던 사람은 일 하지 않으면 병이 난다고 하잖아요. 중학교 동기 중에 저 처럼 열심히 일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다들 건강합니다. 지난 5월에도 3D로 LED전광판 개발제품을 전시회에서 선보였습니다. 나이를 먹었지만 새로운 일을 하는 게 즐겁습니다.

형제 분들은 몇 분이신지요? 영주를 지키는 분도 있구요?

4남2녀입니다. 우리 6남매는 아버지가 영주지방철도청 관내 여러 지역의 역장을 하셨는지라 2년 마다 이사를 다니고 전학을 했습니다. 초등학교는 다른 지역에서 다니더라도 중학교 때부터는 영주에 있는 중학교 입학이 아버지의 방침이었습니다. 아버지와 큰아버지는 당시 오사카 유학을 다녀 올 정도였습니다.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는지요? 가풍이라든지 강조하신 말씀이라든지...

부친은 유교적 생활을 중시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소수서원 원장도 역임하셨습니다. 할아버지 살아계실 때 할아버지 앞에서 무릎 꿇고 글을 읽던 생각도 납니다. 한글을 배우기도 전 천자문을 읽었지요. 지금의 제 삶도 유교적 틀 안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회사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때 몰래 교회에 가 보기도 하긴 했습니다(함께 웃음).

스포츠 활동도 지원하신 걸로 압니다.

제가 스포츠를 좋아합니다. 지역 스포츠 활동 지원을 했다고 몇몇 지역 시장님들이 감사장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고향 사람 모임 관련 활동도 많이 하신 걸로 아는데 구체적으로 소개하시면?

지역구 국회의원과 함꼐
지역구 국회의원과 함꼐

영주중학교 동문회 활동 외에는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저와 함께 근무하는 막내 동생이 적극적으로 참여했지요. 출향인 모임에 갔다 온 동생이 보고 느낀 점을 제게 알려 줘 재경향우회 등 출향인 모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았지요. 애향 모임의 활성화를 기대합니다.

며칠 전 중국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내륙 지역은 인건비도 싸고 국가가 공장 건설을 지원하고 일 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사람 구하기가 힘듭니다. 중국에 가니 서너 명의 아이들과 함께 산책하고 즐기는 가족을 많이 보았습니다. 저는 한강 변에서 자주 운동하는데 아이들 손 잡고 산책하는 사람보다 개를 안고 산책하는 사람을 더 많이 봅니다. 이렇게 출산율이 낮아서는 우리나라의 미래는 없습니다. 아이 낳을 수 있는 환경, 보육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젊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영주시를 만들어야 합니다. 꼭 하고 싶은 말입니다.

                                                                                       황재천 프리랜서 기자

 

김재을 회장 프로필

- <학력>영주초, 영주중, 광운전자고, 광운전자공과대학 졸업

- 공군본부 통신부대

- <현> ㈜대한전광 창업, 현재 40년

- (역임) 동양시계공업 기술부장, 전국전광판협의회 의장, 스포츠용기구조합이사

- (자격) 정보통신국가특급기술자

- (수상) 대통령 표창 3회, 국무총리 표창 2회, 수출 100만불탑, 수출 500만불탑, 수출 1,000만불탑, 조달청 우수업체 5회차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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