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

울컥, 장마

-이성목

별을 재우려고 방문을 닫았다
캄캄한 낮이었다
스위치를 누르자 꽃이 피었다
꽃의 등잔 밑에 마음이 먼저 누웠다
선풍기를 켜자 잎사귀 휘돌았다
봉창으로 민들레 마지막 홀씨가 날아갔다
목이 쉬도록 울고
우는 내가 가여워서 다시 울었다
흙탕물이 사타구니 아래로 흘러갔다
뒤통수에 대숲이 검게 일렁거렸다
이미 떠난 사람의 몸을 열고
양동이 가득 붉은 물을 퍼냈다
마음을 닦아낸
걸레는 오래도록 빨아 널지 않았다

울컥, 젖은 방문이 열렸다가 닫혔다
울컥, 속울음이 개수대 구멍으로 되올라 왔다

 

-억수, 땡볕을 들이받는

화려했던 ‘장미’가 시들면서, 점 하나 더 붙은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곧 장마가 시작될 거라는 예보로 짓눌린 잠꼬대에 빠진 새벽, 호박전 부치는 소리가 각을 뜨듯 들끓고 있습니다. 큰비가 꼭두새벽부터 마당을 갈아엎을 듯 쏟아집니다.

갑자기 깨어난 경험이 습관처럼 집 안팎을 둘러보고, 미리 만들어 놓았던 물길을 확인합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씻겨 내려가지 않는, 울 수도 없을 만큼 기가 찼던 몇 번의 재해는 오히려 생생합니다. “캄캄한 낮”에 “별을 재우려고 방문을 닫”듯 평온할 수 없는 마음이 까맣게 상하고 있습니다. 기억의 질감은 장마보다 강력하니까요.

덫에 걸린 짐승처럼 또 그렇게 무기력하게 보내야 할까요? 마음만이라도 뽀송뽀송하게 말려야 할까요? “울컥, 젖은 방문이 열렸다가 닫”히면서 “속울음” 쏟아지는 마음을 점검합니다.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www.yjinews.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