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의 군생활 바탕, k-방산 보안현장서 ‘인생2막’ 열다

재경영주고총동문회 체육회(국회의사당 운동장)
재경영주고총동문회 체육회(국회의사당 운동장)

여느 지방 중소 도시처럼 영주도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어 지방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당국이 각종 인구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구증가 정책이 출산장려와 귀농 귀촌 운동에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귀향운동으로의 페러다임 변화가 절실하다.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머물고 있는 지역 출향인은 대략 3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에 본지는 이들 출향인이 은퇴 후 자신이 평생 직장생활을 하며 쌓아온 경륜을 귀향을 통해 고향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애향인 인터뷰를 마련했다. 이번 애향인 인터뷰를 통해 인구증가를 위한 귀향정책과 지역발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편집자 주>


육군사관학교 수석 입학, 고향 영주 빛내고
선진국형 k-방산 보안의 중추적 역할 담당

더 많은 동문 참여하는 재경동문회 운영 시도
고향 후배, 꿈 찾고 열정 갖고 뛰게 지원해야

k-방산이 뜨고 있다. k-방산이 한국의 자존심이 되어가고 있다.

해외 수출이 이전과 차원을 달리하고 k-방산 기술 탈취를 노리는 나라들이 많아졌다.

k-방산 보안의 현장에서 방산 보안 선진화 추진의 중심에 영주 출신의 김익수 재경 영주고 총문회장이 있다.

육사 수석 입학으로 고향 영주를 빛냈던 그는 군 전역 후 우리나라 대표적 방산업체인 ㈜풍산 보안실장으로 인생 2막의 삶에 열정적으로 임하고 있다.

애향인 인터뷰에 응해주심에 감사합니다. 요즘 제가 소백산농촌관광권역협의체 및 자원봉사자들과 금선계곡 가꾸기를 하느라 밤 시간에 인터뷰를 요청드려 송구합니다.

제가 무슨 큰 인물도 아니고 애향인 인터뷰 요청을 받고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멋진 자연자원 가꾸기를 하시는군요. 우리 고향 영주는 다른 지역이 갖지 못한 자연자원이 많습니다. 제가 전문가가 아니지만, 영주가 꼭 개발 중심, 도시화 추구가 아니더라도 또 다른 방향도 좋다고 봅니다. 미개발 상태로 잘 보전돼 희소가치를 갖는 세계 관광지역도 있으니 말입니다. 많은 외지인들이 하루 이상 묵어가는 데 초점을 두는 것도 좋은 방안입니다.

재경영주고동문회 임원단 계룡대 방문
재경영주고동문회 임원단 계룡대 방문

어디에서 태어나 자라셨는지요?

봉화군 춘양 애당리에서 태어나 열 살 때까지 살았습니다. 각화사에서 약 2km 떨어진 두메산골입니다. 애당초등학교에 입학해 동네 형들과 누나들 따라 등하교를 했는데 약 4km거리 였습니다. 겨울 등하교 때는 참 추웠습니다. 비가 많이 올 때는 징검다리가 떠 내려가 먼 거리를 빙 돌아 등하교해야 하거나 등교할 수 없을 때도 많았습니다.

10살 때 영주로 전학했습니다. 아버님께서 두메산골 농사가 힘들고 자녀 교육을 위해 얼마 안 되던 논밭을 팔고 영주로 이사했습니다. 3학년 1학기부터 영주초등학교에 다녔습니다. 아버님은 이사 후 감자 도매상을 하셨습니다.

부친이 사업으로 업종 전환을 하셨군요?

바로 1년 만에 실패하셨습니다. 아버님은 사업 실패 후 자본이 없으니 생선장수로 행상을 하시며 저희를 키우셨습니다. 어머니도 같이 고생하셨습니다. 월세살이를 전전했지요.

주한러시아대사관 국경일 리셉션 참석
주한러시아대사관 국경일 리셉션 참석

부친이 생선행상을 하셨다니 대단하십니다.

생선행상 하신 이유가 돈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저희에게 생선을 먹일 수 있다는 점도 하신 이유인 것 같습니다(함께 웃음). 그렇게 생활하시며 제가 대영중학교 1학년 때 관사골에 집을 사셨습니다. 무허가 주택이긴 했지만 저희 집이 생겼지요. 여기서 성장기를 보냈습니다.

관사골이 집이면 대영중학교가 꽤 먼 거리인데요?

꽤 멀지요? 걸어 다녔습니다. 개근상도 받았습니다. 수업 끝나면 집에 와 저녁 식사하고 다시 학교 가서 공부했습니다. 토요일 일요일에도 학교 가서 공부했습니다. 가정 형편이 극빈이었으나 부모님이 농사짓는 친구들 보다 공부 시간이 많았습니다. 초등학교 때 키 작고 덩치도 작고 병약해서 부모님의 걱정도 많으셨지만 먼 거리를 걸어 다니다 보니 체력이 좋아지는 장점도 있었습니다.

대단하십니다. 영주고를 나오셨는데 그렇다면 고등학교도 걸어서 다니셨나요?

네. 관사골에서 이산 쪽의 영주고까지 걸어서 다녔습니다. 걸어서 학교를 다닌 게 제 체력과 건강의 큰 바탕이 되었습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에는 아버님이 비교적 젊으셔서 5남매 중 동생들에 비해 제가 부모님 혜택을 많이 받았습니다.

육군사관학교 수석 입학으로 당시 영주의 뉴스거리였는데 집안 경제 사정 때문에 육사에 진학하셨군요?

서울대에 입학한다고 해도 학비와 생활비가 걱정이었습니다. 당시 영주고 선생님들이 저희에게 공부를 엄청 시키셨습니다. 선생님들이 일반대 진학을 권유하시기도 했지만 제게 육사는 당연히 가야 할 곳이었습니다.

육사동기생 부부동반 초청 영주견학
육사동기생 부부동반 초청 영주견학

육군사관학교 진학이 경제적인 면도 있지만 다른 동기도 있군요?

학창 시절, 독서를 많이 했는데 위인들의 이야기와 함께 전쟁 관련된 책도 많았습니다. 제가 비록 병약한 소년이었지만 남북 분단 상황에서 더욱 군인의 길을 가야겠다고 결심했으니 조숙했다고나 할까요? 어쨌든 많은 독서가 제 갈 길을 제시했다 하겠습니다.

군 생할을 어떠셨는지요? 군사기밀이 아니라면?(함께 웃음)

군 생활을 열정적으로 보람차게 했습니다. 사관학교 포함 35년의 군생활을 했습니다. 처음 보병 장교 5년 근무하다 차출되어 기무사에서 26년을 근무했습니다. 당시 제가 모신 사령관 중 영주 출신의 김영한 장군도 계십니다. 기무사 생활은 제가 현재 봉직하고 있는 회사 업무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고향 관련 모임에 열성이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사령부가 서울에 있다 보니 동향인 모임에 자주 나갈 수 있었지만, 뿌리를 소중히 여기자는 제 가치관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용기와 힘을 주고, 살아가는데 의미를 주는 게 고향이고 학교이고 가정이라 생각합니다.

재경 영주고 총동문회장에 취임하셨지요?

이번에 재경 영주고 총동문회장을 맡았습니다. 그동안 사회적 재정적으로 안정된 분들이 맡으셔서 봉사하셨는데 이번에 그렇지 못한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저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자 합니다. 회장 개인의 능력보다는 많은 동문이 참여하는 동문회 운영을 하려 합니다.

동기생들도 그런 관점에서 저를 추대하였다 생각합니다. 특정 기수나 개인보다 동문 전체가 참여하는 동문회가 더 건강하고 더 화합하고 더 단결하는 동문회가 되리라 봅니다.

지역소멸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학교 동문 모임, 읍면동 지역 출신 모임, 각 문중 모임 등 다양한 연결고리가 출향인과 고향 영주 사이에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절대 동감입니다. 영주시의 외연 확장 방법이 더욱 다양해져야 합니다. 출향인들도 여러 네트워크를 활용, 고향과 연결되었으면 합니다. 재경 여러 동문회가 재경향우회 산하조직으로 더욱 발전해야 재경향우회도 더욱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읍면동 단위로도 소모임을 활성화해서 전체 모임과 연계성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지연, 학연, 혈연을 따지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을 나무라기보다 후배 기수들 많이 참여케 하고 자녀들도 함께 나오게 하여 즐거운 추억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동문체육대회의 경우, VIP중심의 따분한 개회식 보다는 참석자 위주 진행으로 좋은 학교란 인식을 주고 즐겁게 참여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종친회도 젊은 세대가 혈연을 중시하지 않는 점을 감안, 새로운 방식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군에 오래 봉직하셨는데 전역에 대해 한 말씀 부탁합니다.

취업 자리를 정해 놓고 전역하지 않았습니다. 몇 년 더 근무할 수 있었지만 미리 전역을 신청했습니다. 운이 좋아 류찬우 회장이 창업하신 방위사업체 ㈜풍산 보안실장으로 일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군에서 주로 했던 일이 보안 분야인지라 제 경력을 평가받았습니다. 이러한 경력이 k-방산 시대에 방산업체에서 보안 업무를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k-방산 시대에 현재 하시는 업무의 역할이 크겠는데요?

우리 방산은 이제 수출 규모가 이전과 차원이 다르고 기술도 추격자 형에서 선진형이 되었습니다. 방산 기술의 탈취도 막아야 합니다. 적성국만이 아니라 우방도 포함해서입니다. 저희 ㈜풍산만 해도 웬만한 군 보안보다 더 보안이 철저합니다. 방위산업기술이란 정보자산을 철저히 보호하려 합니다. 공격 기술이 발달할수록 방어 기술도 선진화하여야 합니다.

전에 없던 보안 기술과 기법 개발 운용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방산보안 분야 외에 러시아 무관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국방외교협회 활동을 합니다. 무관 등 해외 근무 경험이 있는 예비역 직능단체로 군사외교 지원 활동과 세계정세 분석, 방산수출 지원 활동을 합니다.

공직이나 기업에서 은퇴한 사람들의 인생 2막 활동이 매우 중요합니다. 평생 근무를 통해 습득한 경험과 노하우를 사장시키지 말고 필요한 부문에 봉사하는 삶이 바람직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끝으로 영주시 및 영주시민들에게 당부하시고 싶으신 말씀을 부탁합니다.

꼭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 젊은 후배들 교육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주입식으로 정해진 공부를 더욱 강화해야겠다는 오해가 생길 수 있는데 후배들이 갈 수 있는 다양한 길을 후배들이 스스로 찾아 꿈을 갖고 열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겁니다. 고향 후배들이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도록 다양한 분야 멘토들이 도우면 좋겠습니다. 후배들이 일률적 잣대로 재는 것에 의기소침하지 말고 기죽지 말고 자신의 꿈을 향해 열정적으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시골이라 기죽을 일도 아닙니다. 이젠 세계 어느 곳에 있어도 자신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찾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또 영주에서도 그 꿈으로 새로운 길을 열 수 있습니다. 선배는 후배들이 꿈을 갖도록 하고 용기를 주어야 합니다. 출향인들도 고향 후배 멘토 역할 동참의 계기가 마련되길 바랍니다.

황재천 프리랜서 기자

김익수 보안실장의 프로필

- <학력> 영주초, 대영중, 영주고, 육군사관학교(40기), 미테네시 대학교(교육학 석사), 상명대(박사과정)
- <현재> 주식회사 풍산 보안실장, 한국국방외교협회 감사, 한국방위산업보안협의회 부회장, 재경영주고등학교총동문회 회장
- <경력> 임관이후 기무사령부 근무(국방부, 육군본부, 국방과학연구소, 방위사업청 등 근무), 청와대 민정수석실(행정관) 및 주러 한국대사관(무관) 파견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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