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사업 실패 후 성공 “쓰는 걸 아껴야 남을 도울 수 있다”

같은 해 중학교 졸업한 영주출신 모임 77회 친구들과
같은 해 중학교 졸업한 영주출신 모임 77회 친구들과

여느 지방 중소 도시처럼 영주도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어 지방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당국이 각종 인구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구증가 정책이 출산장려와 귀농 귀촌 운동에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귀향운동으로의 페러다임 변화가 절실하다.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머물고 있는 지역 출향인은 대략 3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에 본지는 이들 출향인이 은퇴 후 자신이 평생 직장생활을 하며 쌓아온 경륜을 귀향을 통해 고향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애향인 인터뷰를 마련했다. 이번 애향인 인터뷰를 통해 인구증가를 위한 귀향정책과 지역발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편집자 주>

보수적 경영으로 다진 내실, 이제 ‘공격적 경영’ 나서
실패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역량 키울 수 있어

부모님의 힘이 있는 ‘한 말씀’이 다시 일어서는 계기
영주지역 중학교 동기모임 ‘77회’ 선배들이 부러워해

지금까지 애향인 인터뷰를 다양한 방법으로 했다.

대면을 원칙으로 하다 코로나 19 펜데믹으로 비대면 인터뷰도 했다.

비대면 인터뷰는 인터뷰 대상자가 대체로 집 또는 사무실에 위치할 때였다.

이병훈 비오워크 대표와의 인터뷰는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방식의 인터뷰였다.

이 대표는 승용차 속에서 인터뷰 전화를 했다. 운전은 이 대표의 아드님이 하고 있다고 했다. 고향 영주에 사시는 부모님을 뵙기 위해서 영주로 오는 중이라 했다. 열심히 일하는 사업가라고 듣고 있었고 이 대표의 사업 스토리도 파악하고 있던 터에 승용차 이동 중의 인터뷰는 시간을 아끼는 그의 모습으로 보였다.

승용차 타고 인터뷰를 하신다니 특이합니다. 어디로 가시는지요?

고향 영주의 본가로 가고 있습니다. 아들이 운전하니 통화가 가능합니다.

고향 본가엔 어떤 일로 가시는지요?

아버님이 당신의 손자를 보시고 싶다고 해서 아들과 함께 내려가고 있습니다. 아버님은 금년 90세이고 어머니는 88세입니다. 부모님을 찾아뵙고 모처럼 3대가 저녁 식사를 할 계획입니다.

부모님 모시고
부모님 모시고

어른들은 당신의 손자녀를 보고 싶으시나 자녀나 손자녀가 찾아뵙는다는 게 보통의 일은 아니라 봅니다. 어른들 연로하신데 자주 찾아뵈니 참 보기 좋습니다.

부모님이 두 분 다 연세가 있는데 지금도 부지런하십니다. 조그만 밭을 사 달라 해 사 드렸더니 밭에서 사십니다. 걱정되어 일하시지 말라고 하면 취미 생활을 왜 막냐고 하십니다(함께 웃음). 사실 취미 생활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밭에 매달리시는지라 걱정이기도 합니다.

공기 좋은 곳에서 몸을 움직이시니 오히려 건강하심에 도움도 될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고향 영주의 공기, 참 좋습니다. 영주는 정말 복 받은 곳입니다. 전국을 다녀 보았지만 제가 태어나 자란 곳이라 그런지 죽령을 넘어서 풍기 땅에 닿으면 심리적 안정도 듭니다. 다른 지역 지자체는 우리 고장 영주에서 별 가치 없게 보는 것도 크게 띄워 홍보하는 걸 봅니다. 영주는 자랑거리가 참 많습니다.

자랑거리가 많아서 홍보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면도 있습니다.

서울에서 소백산에 가는 사람들은 소백산을 단양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갖고 있는 자연 자원을 활용해야 합니다. 물론 덜 가꾸는 게 더 비싼 자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 물을 사 먹는다는 걸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어쩌면 소백산 공기가 상품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점을 감안해 개발하면 좋겠습니다.

직원들과 함께
직원들과 함께

네. 그런 미래도 생각하며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선비들의 시 등 기록을 보면 선비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추구했지요.

서울을 조금만 벗어나도 서울 사람들이 줄이어 갑니다. 저는 동쪽 서울에 사는지라 영주까지 가는데 두 시간 약간 더 걸립니다. 서울 사람들에게 그 정도 이동 시간은 별 것 아닙니다. 영주는 서울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소수서원과 선비촌, 부석사 등 역사 문화적 자원도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네. 저도 그런 점을 살리기 위해 제가 사는 금선계곡을 예전처럼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훌륭한 일입니다. 사실 몇 사람의 노력으로 어느 한 곳을 명소로 만들기는 힘듭니다. 여러 사람의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고위공직자 출신의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인근 도시는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우리 고향 영주는 상대적으로 그런 점에서 약하다고 합니다.

어쩌면 공직자 평가 인사시스템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기업을 경영하시니 그런 업무 평가 기준에 대해서도 달리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공직자들이 새로운 걸 만드는데 껄끄러워하는 듯합니다. 새로운 시도를 하고 전례를 만들어가는 공직자가 나오려면 인사시스템을 바꾸어야 합니다. 기업은 새로운 일을 하다 실패했다고 그 사람에게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물론 업무 추진 과정에서는 의견을 내거나 개입하기도 합니다만 실패한 사람이 회사를 그만둘까 오히려 걱정합니다. 실패하더라도 실패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역량을 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사평가 기준만 바꾸어도 달라질 수 있다고 봅니다.

거주하는 서울에서는 어떤지요?

저는 송파구에 삽니다. 송파구청장이 도와달라 해서 송파구 체육회와 통합방위협의회 등 몇 단체 활동하며 구청 행정에 대해 엿볼 수 있었습니다. 구청장의 인사방침에 따라 공무원들의 행동이 달라짐을 많이 보았습니다. 영주시도 이제 달라지리라 기대합니다. 새로운 걸 시도하는 고향 공직자의 모습은 더욱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회헌 안향 선생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교육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삼봉 정도전 선생이 새로운 나라를 기획하여 세웠으며 수많은 고향 출신 선비들이 새로운 시도를 했습니다. 그런 전통이 이어지길 저도 바랍니다.

네. 바로 그겁니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가끔 고향에 대해 쓴소리도 합니다만 고향을 아끼는 마음에서입니다.

고향에서 나고 자라셨다고 하셨는데 언제 외지로 가셨는지요?

고등학교와 대학을 대구에서 공부했습니다. 형님이 대구로 유학을 가시면서 저도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형제가 자취를 하셨나요?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별로 고생하지 않았습니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같이 가셨습니다.

자녀는 어떻게 되는지요?

남매입니다. 저희 부부는 일을 했습니다. 저는 직장으로 독립해서는 사업을, 아내도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아들은 저희 어머니가 키우셨습니다. 아들이 어린 시절 영주에서 조부모님 아래에서 컸습니다. 딸은 이웃에게 자주 맡겼습니다. 아이들에게 미안한 면도 있습니다만 저희 아버지와 어머니가 손주를 자주 보고자 하심도 어릴 때 키우셨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현재 사업을 하시는데 언제 시작하셨는지요?

대구에서 자동차 관련 기업연구소에서 7~8년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직장에서 인정을 받았습니다만 독립하고 싶었습니다. 사업을 시작하며 탁상으로 파악하던 세상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결국 실패했습니다. 몇 년 고생했습니다. 아내가 어렵게 돈을 구해 서울에 가서 새 일을 하라 해서 서울로 갔습니다만 1년 만에 또 실패했습니다. 실패 후 5, 6개월 서초동 국립도서관에서 책만 읽다 사업실패 후 찾아뵙지 못하던 시골 부모님을 뵈러 갔습니다.

어머니는 제 사업실패를 미리 알고 계셨습니다. 아버지와 술을 사이에 두고 “제가 다시 일어 설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니 아버지는 버럭 화를 내시며 “니가 왜 못 일어서냐?!”라시며 어머니께 당장 이삿짐 꾸려 서울로 가서 날품팔이라도 해 아들 돕자고 하셨습니다. 아버님 말씀을 듣고 다음 날 새벽에 서울로 왔습니다. 아버님의 말씀에 마음을 새롭게 했습니다.

우연히 현재의 사업을 접하고 뛰어들었습니다. 나이 40세 때의 일입니다. 2002년 현 사업을 시작했으니 벌써 20년 업력이군요. 현재 건물관리, 하나로마트 청소 미화 등 여러 아이템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로마트 관리 업무는 농협중앙회 회장으로부터 감사패도 받았으며 1년 단위 계약임에도 연속으로 계약을 갱신하고 있습니다.

연속으로 도급을 받는다는 건 일을 잘 하신다는 건데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직원들이 열심히 잘 하고 있습니다. 맡은 일을 잘 해야 직원들을 정리하지 않고 계속 같이 갈 수 있습니다. 저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저희 아들도 회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말단부터 뛰고 있습니다.

회사 창립 20년도 넘고 새로운 도약을 하고자 합니다. 직원들 앞에서 선언했습니다. 현재까지 보수적 경영을 했는데 그동안 다져진 내실을 바탕으로 앞으로 공격적으로 하자고 했습니다. 직원들에게 좀 더 열심히 한 성과물에 대해서는 나누어 갖자고 했습니다. 결과는 지켜봐야겠지만 현재까지 잘 되어가고 있습니다.

향우회 활동은 어떻게 하시는지요?

재경 향우회에는 잘 참석치 않았습니다. 영주초 동기회와 영주의 모든 중학교 같은 해 졸업 동기들이 모이는 ‘77회’ 활동을 했습니다. ‘77회’는 제가 2대 회장을 할 정도로 애정이 깊으며 지금도 많은 동기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골프모임을 하면 보통 10여팀 이상 됩니다. 대단한 친구들이 많습니다. 3,000원만 들고 서울 와서 자리 잡은 친구도 있습니다. 이러한 동기들의 단합을 선배님들이 부러워합니다.

부모님이 사시는 영주에는 자주 오시겠군요? 부모님이 주신 교훈도 소개해주시지요.

아버님 어머님 계시니 자주 찾습니다. 친구들이 어떻게 저의 귀향을 먼저 알고 전화를 해 만나 소줏잔을 기울이기도 합니다. 저희는 제가 3남1녀 중 둘째인데 사업을 하신 아버님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다들 사업을 하며 부모님을 잘 찾아뵙고 있습니다. 저희 세대로는 드물게 유치원도 다녔습니다. 어렵지 않게 살았는데 부모님은 늘 “자기가 쓰는 걸 아껴야 남을 도울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자기가 풍족하게 쓰면 남을 도울 여력도 없어진다는 말씀이었지요. 제게는 삶의 지침이기도 합니다. 저도 가장 존경하는 분을 꼽으라면 아버지를 꼽습니다. 제 동생도 아버지를 제일 존경한다고 합니다. 제 아내도 저 보고 ‘아버님의 반만이라도 닮아라.”고 할 정도입니다.
 

이병훈 대표의 프로필

- 영주초등학교, 대영중학교
- 대구 성광고등학교, 계명대학교 물리학과
- (현) 비오워크 대표이사
- (현) 송파구 체육회 이사
- (현) 송파구 통합 방위 협의회 위원
- (전) 재경 대구 경북 도민회 청년회 부회장
- (전) 보훈신문 이사
- (수상) 송파구청장 표창장

오공환 기자/황재천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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