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

견고한 잠

-김진희

면사무소 휘휘 돌아 납작한 외딴집에
열여섯에 시집와서 칠십 년 산 큰어머니
구십도 꺾인 허리를 땅속에서 펴신다

그날 그 후, 아래채도 무릎 꺾여 쓰러졌다
탄알이 후둑후둑 쏟아지는 한밤중에
한숨도 못 잔 담벽이 포격에 무너졌다

몸보다 허한 마음 서둘러 찾아가는
내 안의 정류장에 기다리는 사람 없어
빛바랜 가족사진이 소리 없이 웃을 뿐

빈집에는 그늘처럼 적막이 쉬고 있다
눈을 뜨다 감았다 꽃잎이 피고 지고
낭자한 풀벌레 소리 파도처럼 일렁인다

 

-그림자만 가득하다

그림자의 그림자, 그 그림자의 그림자만 남아 가족사진과 빈집 사이에 머물고 있습니다. 각각의 사정을 제쳐두고, 각각의 연유를 매일 작별하는 사람들. 선잠에 잠깐 들어 꿈 몇 번 꾼 것 같은데, “구십도 꺾인 허리를 땅속에서 펴”는 아득함이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개별적 이야기를 보편적 이야기로 이끌고 있습니다. 상처를 내고 약도 같이 주는 글도 좋지만, 상처만 드러내고 스스로 약을 찾을 수 있게 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폭격기처럼 머리를 쥐어뜯을 정도로 서늘한 이야기가, 호국보훈의 달 6월의 위로로 연결됩니다.

6월도 중반을 지나고 있습니다. 국가 유공자와 그 유족에 대한 보훈, 제대 군인의 보호와 보훈을 저 살기 바쁜 사람들이 알기나 할까요? 분명 있었는데 사라지고만, 애국의 그림자들을 기억이나 할까요?

제가 사는 지역에 ‘오늘 하루 참전용사에게 음식을 대접합니다. 6월 15일 오전 11시 ㅇㅇ식당’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내걸린 것을 보았습니다. 보훈의 길, 애국의 길에 이런 맛도 포함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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