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대군실기’의 국역이 허술하게 번역된 것으로 나타나 논란이 일고 있다.

익명의 고문서 번역 전문가에 따르면 “지난 연말에 출판된 책의 번역 내용이 거의 폐기 수준이었다”고 주장한다. 도대체 번역 상태가 어느 정도이길래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는 본지 1면 기사를 참고하기 바란다.

‘금성대군실기’는 1858년 발간한 책으로 순흥(順興)으로 유배를 당하고 단종 복위운동을 도모한 세종의 여섯 번째 아들인 금성대군 이유李瑜의 기록을 모은 것으로서 현재 소수박물관에 소장 중이다. 실기(實記)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적은 기록이다. 특히 금성대군 실기는 금성대군은 물론 지역 선비들의 절의에 대해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역사서로 평가받고 있다.

다른 무엇보다도 엄밀하고 정교하게 다뤄야할 역사서가 엉터리로 번역되었다는 것은 분명 작지 않은 문제이다. 번역의 오류는 좁게는 사실의 왜곡이겠으나 넓게는 역사 자체를 훼손하는 일인 것이다. 게다가 이런 일이 선비의 고장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시민들로서도 완전 자존심을 구기는 일이다. 이런 상황을 어느 누가 원할 것인가. 여기까지 였다면 그래도 부분적으로 납득이 된다. 고문의 번역이 시중의 생각처럼 호락호락한 작업은 아니다. 또한 모든 용역의 과업이 무오류일 수도 없다. 다만 잘못된 점이 있다면 이를 찾아내어 바르게 고치면 될 일이다.

그럼에도 이번 문제 제기에 대한 시의 태도나 입장은 다소 안타깝다.

사업 담당 부서에서는 “고문서 번역은 번역자마다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있다”며 “전문 연구단체에 근무 경력이 있고 용역업체가 제출한 경력 서류는 믿을 수밖에 없다.”며 원론적인 얘기만 하고 있다. 또한 “학예사 한 명이서 방대한 자료를 감수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히면서, “현재로서는 인쇄본은 수정이 불가능하고, 온라인(PDF) 책자는 틀린 부분을 수정해서 다시 탑재할 예정” 이라고 한다.

얼핏 봐도 시의 이런 행태는 뒤늦게나마 일을 바로잡기보다는 변명에 급급한 것으로 느껴진다. 먼저 시는 이번 문제가 해석의 차이가 아니라 해석 자체가 잘못됐다는 점을 놓치고 있다. 그리고 설령 감수 규정이 없고, 감수 인력이 부족했다 해도 감수 용역을 함께 시행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다음으로 책의 폐기는 이후에 발생할 수도 있는 해당 번역물로 인한 혼선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고 생각한다. 당장은 별 탈이 없어 보이지만 세월이 지나면 어느 게 바른 자료인지 식별이 곤란해 질 수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번 오역 논란의 주범은 감수 시스템의 부재에 있다고 보여진다. 그리하여 번역에 대한 충분한 검증 없이 성과물을 납품 받게 되고, 흠결이 있어도 제대로 걸러지지 않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주지하다시피 소수서원에서는 매년 소장중인 각종 자료에 대한 국역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도 작금의 방식을 시정하지 않고 사업이 진행된다면 이런 사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라도 번역 사업의 제도 개선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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