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
가방 하나
-백무산
두 여인의 고향은 먼 오스트리아
이십 대 곱던 시절 소록도에 와서
칠순 할머니 되어 고향에 돌아갔다네
올 때 들고 온 건 가방 하나
갈 때 들고 간 건 그 가방 하나
자신이 한 일 새들에게도 나무에게도
왼손에게도 말하지 않고
더 늙으면 짐이 될까 봐
환송하는 일로 성가시게 할까 봐
우유 사러 가듯 떠나 고향에 돌아간 사람들
엄살과 과시 제하면 쥐뿔도 이문 없는 세상에
하루에도 몇 번 짐을 싸도 오리무중인 길에
한 번 짐을 싸서 일생의 일을 마친 사람들
가서 한 삼 년
머슴이나 살아주고 싶은 사람들
-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라
낯선 나라에 와 40년을 봉사했으면서도 “올 때 들고 온 건 가방 하나/ 갈 때 들고 간 건 그 가방 하나” 뿐입니다. 얼마나 도를 닦아야 “자신이 한 일 새들에게도 나무에게도/ 왼손에게도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소록도 두 수녀님의 이야기는 독자들도 잘 알고 계시죠? 이 시에 대한 단상의 제목으로 잡은 건, 그분들 방문 앞에 한글로 새겨져 있던 평생의 다짐 글입니다. 그분들 다짐이 우리의 다짐, 혹은 자녀들에게 가르칠 교훈과 별반 다르지 않아요. 다만 실행력과 의지만 다를 뿐입니다. 역사를 바꾼 사람들만 영웅일까요? 이성적 성찰보다 모성적 본능이 먼저였던 이들은 어떤 영웅일까요?
화자는 “가서 한 삼 년/ 머슴이나 살아주고 싶은 사람들”이라고 감동의 무게를 더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시를 공부하는 저는, 더 늦기 전에 ‘가서 한 삼 년, 겸손한 시나 배우다 오고 싶은 시인들’ 속에 백무산 시인도 살포시 넣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