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세에 이룬 ‘만학의 꿈’, ‘약사 출신 1호 부동산학 박사’별칭 얻었다

서울벤처대학원 부동산학 박사 포럼(2022)
서울벤처대학원 부동산학 박사 포럼(2022)

여느 지방 중소 도시처럼 영주도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어 지방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당국이 각종 인구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구증가 정책이 출산장려와 귀농 귀촌 운동에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귀향운동으로의 페러다임 변화가 절실하다.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머물고 있는 지역 출향인은 대략 3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에 본지는 이들 출향인이 은퇴 후 자신이 평생 직장생활을 하며 쌓아온 경륜을 귀향을 통해 고향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애향인 인터뷰를 마련했다. 이번 애향인 인터뷰를 통해 인구증가를 위한 귀향정책과 지역발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편집자 주>

 

좋은 정보 주려고 시작한 부동산 공부, 박사학위 받아
영주서 부부가 10년 동안 각각 약국 운영하다 서울 이주

선친 생존 땐 30년 가까이 마을 잔치 같은 생신잔치 열어
고향서 영주중 동기회장, 서울서 재경영주중동기회장 맡아

부동산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약사가 있다. 그가 부동산학을 공부한 이유가 특이하다.

정보 부족으로 입지 선정을 잘 하지 못해 고생하는 분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시작한 것이 부동산학 공부였다.

영주 출신의 애향인 김우영 박사가 그다. 김 박사는 고향 영주에서 40년 가까이 한약방을 하시던 선친의 영향으로 약학을 공부했고 영주시에서 두 군데 약국을 경영하기도 했다. 김 박사와의 대담은 고향 걱정으로부터 시작됐다.

잘 지내시지요?

저는 잘 지냅니다. 요즘 지역의 소멸 이야기에 고향 영주가 걱정입니다. 제가 서울로 약국을 옮길 때만 하더라도 괜찮았는데... 이제 영주시 공직자들과 시민들 그리고 출향인들이 함께 영주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얼마 전 사촌 형님(김진영 전 시장)을 뵐 때도 고향 걱정 이야기가 주제였습니다.

고향 걱정부터 하시니 고향에 있는 사람으로서 감사합니다. 건강은 어떤지요?

지난 일요일에도 고향 지인들과 북한산 둘레길을 걸었습니다. 저는 건강합니다.

서울벤처대학원 부동산학박사 포럼(2022)
서울벤처대학원 부동산학박사 포럼(2022)

70대 후반이신데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무릎도 아프셨을 것 같구요.

힘들지 않았습니다. 뭐.. 몇 시간 걷는 정도인데(함께 웃음). 무릎 아픈 것은 아직 모르겠습니다. 동년배들은 대부분 힘들어하긴 합니다.

약사 직업의 덕을 보셨겠습니다.

그 덕도 있지요. 그런데 약사들을 보면 건강을 해치는 분들도 많습니다. 과음과 흡연, 스트레스를 비롯 자신의 생활 습관이 중요합니다. 저는 술과 담배를 하지 않습니다.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요. 그런 생활의 영향이 크지요.

재경영주중총동창회 주관 북한산 둘레길 걷기(2023)
재경영주중총동창회 주관 북한산 둘레길 걷기(2023)

후배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술은 못 하지만 담배를 즐기는 저를 포함해서..(함께 웃음). 약사이신데 특이하게 부동산학을 공부하시고 박사학위까지 받으셨습니다.

진로를 바꾼 건 아니고요. 주변 약사들이 입지 선정을 잘못해 고생하고 심지어 폐업까지 이어지는 것도 보았습니다. 또 투자를 잘못해 고생하여 번 돈을 날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결국은 좋은 정보가 없어서였습니다. 그분들의 걱정을 들으면서 뭔가 도움이 될까 생각하다 자연스레 부동산학을 본격 공부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한독약품에서 약 6년 가까이 영업과 마케팅을 하면서 약사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약국 입지와 약국 경영을 알게 되었던 게 부동산학 공부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인중개사 자격증도 따고 부동산학으로 석사에 이어 박사학위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부동산으로 돈 벌려고 공부한 건 아닌데...(함께 웃음)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이사회(김필여 이사장과 함께)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이사회(김필여 이사장과 함께)

약사 1호 공인중개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부동산학 공부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려 하셨군요. 남에게 도움을 주려는 그게 바로 선비정신입니다. 같은 고향 출신으로 자랑스럽습니다. 나이 들어서 공부하는 게 어렵지 않았는지요?

약사 1호 공인중개사인지는 확인하기 어렵고요. 또 선비라는 찬사는 과분합니다. 안 어려운 게 있나요. 약국 입지에 대해 회사 다닐 때부터 그리고 제가 아내와 약국을 경영하면서 생각을 했던 사안인지라 사실 재미있었습니다. 제 조언으로 입지 선정한 약사들에게 감사하단 말을 듣는 것도 좋았고요.

부동산학 공부를 하며 약사 관련 전문지에도 칼럼을 쓰고 그 칼럼이 약사들의 약국경영을 비롯 생활에 도움 되었다는 감사에 보람이 컸습니다. 지금도 조언을 구하는 분들이 있고 기쁘게 조언하고 있습니다. 도움을 주다 보니 제게도 축복이 오더군요.

약사들의 고민을 들어주며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내친김에 좀 더 전문적으로 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해 부동산학으로 석사를 했습니다. 2003년 ‘의약분업 시대의 약국입지’가 석사학위 논문이었습니다.

약국 경영 제대로 안 하고 딴 데 신경 쓴다고 집에서 잔소리 듣지 않으셨는지요?(함께 웃음)

결혼 하면 배우자의 의견이 중요합니다. 다행히 저는 집에서 지지를 받았습니다. 아내도 약사입니다. 부부가 약국을 합니다. 영주에서는 각기 약국을 했지요. 서울로 옮겨서는 약국을 같이 경영했구요. 부동산학 공부를 하고 싶다 해도 경제적으로 힘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약국경영을 잘 하는 아내 덕을 보았지요. 고맙지요.

고향에서도 약국을 두 개나 하셨다고요?

한독약품을 사직하고 고향에서 약국을 개업한 건 아버님의 권유가 컸습니다. 선친은 한약방(현 영주 신한은행 위치 옆에 있던 동일한약방)을 하셨습니다. 약국 개업 후 몇 달 뒤 영주 아카데미 극장 맞은편에서 약국을 하시던 선배님(박용만 의원 장조카)이 은퇴하면서 강권하셔서 그대로 인수해 아내가 경영했습니다.

영주에서는 10년 약국경영을 했습니다. 후배 약사인 이광섭 회장이 먼저 서울로 갔습니다. 이광섭 후배가 병원약사회 회장으로 있을 때 자문위원으로 참가해 나중에 병원약사회 건물 선정에 큰 도움을 주어 감사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고향에서 약국을 하시다 서울로 진출하신 거네요?

복합적인 사연이 있었습니다. 아이들 공부 문제도 포함해서. 서울 송파에 자리를 알아보았습니다. 고향으로 가는 동서울터미널이 가깝기도 했구요. 약국 자리를 물색하면서 약국입지 관련 부동산 공부를 자연히 심도 있게 했습니다.

6개월 동안 주말이면 영주의 약국 문을 닫고 송파에서 약국입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약국을 할 건물을 매입해 선친의 한약방 이름을 따서 동일빌딩이라 명명했습니다. 각각 운영하던 약국을 부부가 같이 근무하니 여유도 생겼습니다.

그때부터 부동산학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신 건가요?

본격적 공부는 서울로 간지 10년 후인 2000년 부터입니다. 그때까진 관심이 컸다는 정도였지요. 그해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경매과정을 수료하고 다음 해 건국대부동산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008년~2009년 약사공론에 약국입지 칼럼을 쓰고 그 칼럼을 묶어 차연택 약사와 함께 『원포인트 약국경영』 책을 출간했습니다.

박사학위는 2012년에 받았습니다. 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약국의 입지 특성 및 서비스 품질이 약국의 추천의도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약사 출신 1호 부동산학 박사란 과분한 칭찬을 받습니다. 사실 박사는 만학이지요. 67세에 학위를 받았으니 말입니다.

고령화 시대이니 만학이 시니어 세대의 사회 기여에 도움되리라 봅니다. 은퇴하셨다고 했지만 고향의 발전을 위해서도 활동을 기대합니다.

고향은 늘 마음에 있지요. 몸이 고향을 떠나 있지만 마음만은 고향에 있다는 소리에 그치지 않고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적극 도우려 합니다. 고향에 있을 때 영주중 동기동창회 회장으로, 서울 와서는 재경영주중 동기동창회 회장으로 적극 참여했습니다.

재경향우회는 앞으로 가능하면 참석하려 합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 향우회 행사에 가서 어른들 심부름을 하는 등 행사 진행을 했는데 요즘 젊은이들이 보이지 않아 참 아쉽습니다.

이젠 젊은이들이 자발적 참여를 기대하기보다 그들이 참여하도록 선배님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이실 시기가 되었나 봅니다.

맞습니다. 집행부도 그런 쪽으로 신경을 쓰고 향우회 회원들이 노력해야 합니다. 그동안 재경향우회가 활성화되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영향도 있었고요. 이제부터 잘 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고향에 자주 들리시는지요?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는 자주 들렸습니다만 두 분 다 돌아가시고 우리 5남매가 모두 떠나 있으니 이젠 부모님 산소에 가끔 들리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무언가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하지 않나란 생각도 합니다.

5남매, 당시는 대부분 가족이 5~6남매였지요?

위로 누님이 대구 사시고 나머지 4남매는 모두 서울에 삽니다. 한 두 달에 한 번 만납니다. 부모님 살아계실 때, 아버님은 회갑 이후 매년 당신의 생신날에 우리 5남매와 손자녀까지 모두 불러 내리시고 친구들을 초청해 잔치를 하셨습니다. 시끌벅적한 잔치 모습이 선합니다. 많게는 100명이 넘기도 했습니다. 저희는 심부름하느라 바빴습니다만(함께 웃음).

98세에 타계하셨는데 그 몇 년 전까지 매년 잔치를 하셨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모두 98세까지 사셨습니다. 부모님 편찮으실 때마다 아산병원 VIP병동에 모셨는데 참 좋아하셨습니다. 약사로 대를 이은 아이는 없습니다만 의료 분야에서 큰딸, 손주, 외손주 각 부부 전문의 3커플로 의사가 여섯입니다.

전공이 다양해 종합병원급입니다(함께 웃음). 비의료분야에서도 각기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아이들을 봅니다. 늘 겸손하시고 나눔을 하시는 부모님 덕이라 봅니다.

부모님이 장수하셨군요. 남을 도우셔서 그런 복 받으셨나 봅니다. 후배들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

지역 소멸을 걱정하는 시대입니다. 우리 고향 영주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나 다시 살아나는 도시를 세계 여러 곳에서 봅니다. 공직자, 시민, 출향인 모두 관심을 갖고 힘을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 인근 지역인 안동 사람들은 잘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우리는 더 잘 했으면 좋겠습니다.

황재천 프리랜서 기자/ 오공환 기자

김우영 박사의 프로필

- 문수면 연동(현 휴천3동) 출생
- 문수초등학교, 영주중학교
- 영광고등학교 중퇴, 인창고 졸업
- 서울대 약학대학 졸업
-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경영관리 석사, 서울벤처대학원 부동산학 박사
- (현) 약사, 공인중개사
- (현) 서울대 총동창회 이사, 약대 동창회 감사,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이사, 송파구 약사회 감사
- (현) 약사공론 명예기자
- (전) 약사공론 운영위원, 병원약사회 자문위원, 서울벤처부동산대학원 총동문회 회장
- (저서) 원포인트 약국경영
- (수상) 약사 금탑 수상(20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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