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

재춘이 엄마

-윤제림

재춘이 엄마가 이 바닷가에 조개구이집을 낼 때
생각이 모자라서, 그보다 더 멋진 이름이 없어서
그냥 ‘재춘이네’라는 간판을 단 것은 아니다.
재춘이 엄마뿐이 아니다
보아라, 저
갑수네, 병섭이네, 상규네, 병호네.

재춘이 엄마가 저 간월암(看月庵) 같은 절에 가서
기왓장에 이름을 쓸 때,
생각나는 이름이 재춘이밖에 없어서
‘김재춘’이라고만 써놓고 오는 것은 아니다.
재춘이 엄마만 그러는 게 아니다
가서 보아라, 갑수 엄마가 쓴 최갑수, 병섭이 엄마가 쓴 서병섭,
상규 엄마가 쓴 김상규, 병호 엄마가 쓴 엄병호.

재춘아, 공부 잘해라!

 

-재춘아, 사랑한다!

‘씩씩하고 참된 소년이 됩시다. 그리고 늘 사랑하며 도와갑시다.’ 지금으로부터 딱 100년 전 방정환선생님이 첫 번째 어린이날(1923년 5월 1일) 기념행사에서 한 말씀입니다. 그렇게 또 5월이 되었고, 어린이날도 되었습니다. 어쩌면 5월 5일은 세상천지 가장 중요한 날이기도 합니다. 아이들보다 더 큰 보물은 없을 테니까요.

세상 모든 것이 다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면, 자식 사랑 바로 그것입니다. 자식의 표정이나 행동에 따라 울고 웃는 엄마가 됩니다. 본인 이름보다 재춘이 엄마로 불리는데 더 익숙하고, 기왓장에도 “생각나는 이름이 재춘이밖에 없어서” 쓴 건 아니겠지요.

이 시는 특별한 음률도 없이 산문시 형태로 가다가, “재춘아, 공부 잘해라!”란 이 한 줄로 명치 끝을 건드립니다. 따뜻한 부탁 하나 새겨 넣었을 뿐인데 묘한 울림을 줍니다. 재춘이는 정말 부담스럽겠지만, 마지막에 낙관처럼 붙어 있는 느낌표조차 새삼 묵직합니다.

이제는 다 커서 누군가의 부모가 되었을 재춘이와 친구들. 그들도 아이들을 물고 빨면서 키우고 있겠지요. 마치 날마다 어린이날인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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