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율 (동양대학교 교수)
바야흐로 축제(祝祭)의 계절이 돌아왔다. 축제의 계절이라 할 수 있는 가을 10월을 제외하고 봄의 끝자락인 5월에도 전국에서 다양한 모습과 주제로 많은 축제가 열리고 있다. 우리 영주시에서도 해마다 여러 축제가 열리고 있다. 가히 축제의 나라라고 할 정도로 경향(京鄕) 곳곳에서 많은 축제를 만날 수 있다.
농담(弄談) 삼아서 ‘자기 집에서는 제사도 안 지내면서 축제는 열심이다.’라는 말을 가끔 듣게 된다. 입맛이 씁쓰레하다. 언제부터 축제가 이렇게까지 성행(盛行)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지방자치 제도가 시행되고 나서 부쩍 늘어났다고 느끼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축제란 말은 어디에서 왔을까? 고전(古典)을 뒤적이다 보니 축제란 말이 최초로 등장하는 책은 ⌈시경(詩經)⌋으로 보인다. 이 책의 「소아(小雅)・초자(楚茨)」 2장에 ‘축제우팽(祝祭于祊).사사공명(祀事孔明.선조시황(先祖是皇).신보시향(神保是饗)’이란 구절이 있다. 그 의미는 ‘축관(祝官)이 팽(祊)에서 제사를 지내니 제사하는 일이 심히 갖추어져 선조가 이에 크게 강림(降臨)하시며 신보(神保)가 이에 흠향(歆饗)하시네.’이다. 여기에서 ‘팽(祊)’은 묘문(廟門)의 안이니 효자가 신이 계신 곳을 알지 못하므로 신관(神官)으로 하여금 문 안의 빈객(賓客)을 기다리는 곳에서 널리 찾게 한다는 주석(註釋)이 달려 있다.
그런데 ⌈시경⌋에서 쓰인 축제의 의미는 오늘날의 의미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아마도 옛날에는 조상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미로 쓰인 듯하고 후대로 내려오면서 제사의 기능은 약화(弱化)되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 벌이는 잔치에 무게중심이 놓인 것은 아닌가 한다. 축제의 본래 의미가 퇴색(褪色)된 것이 아니라 변질이 되었다고 하겠다. 용어만 그대로 쓰고 본질과 성격은 달라진 형태로 말이다.
작금의 축제는 동양의 전통적 의미와는 다르게 서양에서 벌이는 ‘페스티벌’이나 ‘카니발’의 성격이 짙다. 서양의 축제문화를 생각없이 받아들인 결과가 아닌가 한다. 그 의미가 어찌 되었든 오늘날은 가히 축제의 시대라고 할 만큼 세계적으로나 국내적으로 보아 축제가 끊이지 않고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만 진정한 축제의 의미를 구현하는 축제가 과연 얼마가 될지는 의문이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축제는 그러한 본래의 의미에서 상당히 벗어나 그저 먹고 마시고 떠들고 노래하는 유흥(遊興)의 의미가 지나치게 강조되어 무엇 때문에 축제를 하는지 헛갈릴 지경이다. 우리 지역에서 벌어지는 몇몇 축제도 예외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지역 축제 가운데 다른 여느 축제와는 사뭇 성격이 다른 ‘한국선비문화축제’가 5월 초에 열린다. 이 축제는 정신문화를 축제로 승화시켜 오늘을 사는 국민들에게 삶의 방향성, 삶의 전범(典範)에 대한 제시, 삶의 가치를 어떻게 구현해 나가야 하는 지를 보여주는 축제이니만치 축제의 콘셉트를 잡는 데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벌써 여러 해 축제가 개최되고 있지만 그간 몇 번의 축제에 대한 경험을 토대로 말해보자면 정착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하기는 아직도 어려워 보인다. 물론 선비축제는 이렇게 진행되어야 한다는 뚜렷한 모델이나 대안(代案)을 제시할 만큼 전문적인 식견이 없어서 언급하기가 조심스럽다. 그래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축제에 대한 소견이나 감상을 말해보자면 더 많은 고민과 더 많은 모색이 있었어야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다.
외국을 포함한 다른 지역의 축제 가운데 정신문화를 주제로 삼는 축제들을 살펴서 거기에서 영감을 얻거나 시사(示唆)를 받는 것도 부족함을 줄이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물론 그들의 노력을 액면 그대로 가져와서는 안 되고 우리 현실과 여건에 맞게 변용(變容)하여야 할 것이다. 창작은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니 본래 어려운 일이다. 변용 역시 말은 쉽게 하지만 오히려 창작보다 어려울 수도 있다. 자칫 잘못 바꾸면 새로 만드는 경우보다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외한(門外漢)이지만 마지막으로 조심스럽게 제안을 하자면 선비 연구가 깊은 학자와 축제 전문가, 행정관서 관계자, 시민이 모여 난상(爛商) 대토론회를 개최하여 거기에서 얻은 결론을 바탕으로 몇 차례의 가상확인(假像確認)을 거쳐 어느 정도 확신이 선 상태에서 ‘한국선비문화’ 축제를 시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치단체장이나 축제문화담당자가 바뀌어도 축제에 대한 기본 개념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잘못된 점을 바로잡고 부족한 부분의 보완(補完)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나 괜찮은 부분이 갑자기 없어진다거나 합의되지 않은 엉뚱한 항목이 갑자기 들어오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잘 쌓은 돌담도 돌 하나 잘못 빼거나 다른 돌 하나 억지로 잘못 집어넣으면 담이 무너지게 된다.
멋지게 쌓인 돌담을 욕심을 부려서 무너뜨릴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듯이 매사(每事)는 모두가 인정하고 합의하는 지동도합(志同道合)을 디딤돌로 삼아서 일을 해나갈 때 모두가 바라는 목적 달성을 제대로 이룰 수가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