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
봄날은 간다
-구양숙
이렇듯 흐린 날엔 누가
문 앞에 와서
내 이름을 불러주면 좋겠다
보고 싶다고 꽃나무 아래라고
술 마시다가
목소리 보내오면 좋겠다
난리 난 듯 온천지가 꽃이라도
아직은 니가 더 이쁘다고
거짓말도 해 주면 좋겠다
-마음 허물지 말자
봄은 왜 이다지도 애틋할까요?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로 시작하는 고 백설희 님의 노랫말만 들어도,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란 명대사를 남긴, 영화의 한 부분만 떠 올려도 왈칵 눈물이 일 것 같은 아까운 봄입니다. 여기에 구양숙 시인의 시까지 보태며 봄을 덮어써 봅니다.
“난리 난 듯 온천지가 꽃이라도”가, “이렇듯 흐린 날”로 표현된 봄이 살짝 아픕니다. 화자는 물론, 계절의 봄과 함께 황금기까지 보내야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니까요. 그 와중에 꽃보다 “니가 더 이쁘다”고 인간적인 거짓말을 해 주는 사람은 몇 명이나 곁에 있을까요? 단 한 사람도 없을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보고 싶다고 꽃나무 아래라고” 내가 먼저 수줍은 목소리를 보내본다면 정녕 더 환한 봄이 되지 않을까요?
삶은 늘 고정된 형태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계절의 속도와 깊이가 다르듯, 사랑의 그것이 다르고, 인생의 그것도 다릅니다. 다만, 이 봄이 가고 나면 다음 봄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에 사뭇 안도하면서 아직은 마음 너무 허물지 않기로 합니다.
영주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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