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

택배

-김물

끝도 없이 자라는
도로를 달립니다

트럭에 꽉 찬
상자들을 한 개 두 개
떼어 냅니다

얼음덩어리처럼
뭉쳐 있던 상자들이
집집마다 풀어지는 동안

아빠 몸에
물기가 번집니다

등 뒤의 상자들이
덜컹입니다

마지막 남은 아빠가
집으로 배달되어 옵니다

 

-꽃소금 핀 노동이 조용히 몸을 씻는 동안,

사람보다 물건을 더 기다리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 기다림을 문 앞까지 놓고 가는 일은 얼마나 많은 협업적 노동의 대가일까요?

이 동시는 택배 일을 하는 아빠를 조명하고 있습니다. 화자는 아빠가 모는 트럭을 타고 움직이면서 “아빠 몸에/ 물기가 번”지는 모습을 봅니다. 그렇게 “마지막 남은 아빠가/ 집으로 배달되어” 올 때까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물론 시적 표현(장치)에서요. 아이는 집에, 아빠는 일터에 있어도 마음의 거리는 손이 닿을 듯 가깝습니다.

삶도 때로는 택배 상자를 실은 트럭처럼 덜컹대곤 합니다. 그 여정 속에서 아빠는 아이에게 길을 열어주고, 아이는 아빠에게 기대면서 큽니다. 부모의 고단함을 알고 위로할 줄 아는 아이, 그 연한 마음이 마중물로 퍼지면 세상의 옆구리도 좀 더 든든해지지 않을까요?

꽃소금 핀 노동이 조용히 몸을 씻는 동안, 아이는 덜컹대는 아빠의 차 소리를 기다립니다. 하지만 그 기다림도 조금은 천천히 안전하게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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