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율 (동양대학교 교수)
삼일절이 다가오고 있다. 1919년 기미년 3월 1일에 일어난 만세운동을 기려서 삼일절이라고 한다. 올해는 기미년 만세운동이 일어난지 104년째 되는 해이다. 무려 한 세기 전에 일어났던 민족사의 일대 사건이자 전 세계가 주목했던 쾌거(快擧)이다.
주지하다시피 기미년 만세운동은 무기력한 군주와 민족과 역사에 대한 투철한 인식이 없이 그저 일신상의 안위와 영달에만 눈먼 매국노들이 팔아먹은 나라의 주권을 되찾아 당당하게 독립을 쟁취하려는 거족적인 의지의 표출이라고 하겠다.
일제는 경술년인 1910년 8월 29일 우리의 주권을 완전히 늑탈(勒奪)해 갔다. 우리는 이를 ‘경술국치(庚戌國恥)’라고 부른다. 개인이 당하는 수치도 참고 견디기 어려운데 하물며 나라가 당한 수치인 ‘국치’야말로 국민들이 어떻게 감당해낼 수 있겠는가?
몇몇 위정자들의 민족과 역사 앞에 저지른 과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었던가?. 나라라는 공동체를 지켜내지 못하면 필연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공동체를 지켜야 하는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이 국치가 36년간이나 이어지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어찌보면 오천년 우리 역사에서 경술국치로 인해 사실상 나라가 처음으로 망한 것이다. 거의 일천 번에 가까운 외침(外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조상들은 나라를 지켜내었는데 1910년 무렵 위정자들의 무능과 탐욕으로 인해 역사에 씻지 못할 과오를 남긴 것이다. 그래서 우리 역사가 중단되고 무려 36년이란 역사의 공백기가 생긴 것이다.
그렇게 긴 시간 일본제국주의로부터 나라를 빼앗기다 보니 우리가 입은 인적, 물적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다가 목숨을 잃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해 근대국가로 연착륙(軟着陸)하며 나라와 역사발전에 기여할 기회를 박탈당했던가?
그뿐만이 아니다. 일제는 우리의 지하자원을 얼마나 많이 실어갔으며, 얼마나 많은 생산물들을 수탈해갔는가? 5천년 역사에서 일구어놓은 문화유산을 또 얼마나 많이 빼앗아 갔는가? 36년 동안 우리가 입은 피해는 표시할 숫자가 부족하여 표시하지 못할 정도라고 하겠다.
그리하여 일제의 압제와 수탈이 임계점을 넘어서자 결국 들고 일어선 것이다. 그것도 비폭력, 평화적인 방법으로 저항했다. 여기에는 대외적으로 민족자결주의라는 시대정신과 재일 유학생들의 2・8 독립선언이 작용하였고, 대내적으로는 고종의 갑작스런 붕어(崩御)가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민족의 주체적인 평화 의지가 노정(露呈)된 우리의 3.1 운동은 다른 나라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중국의 5・4운동, 인도 간디의 비폭력 평화운동 등도 모두 기미년 만세운동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겠다. 많은 사람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평화적으로 만세 시위에 나섰음에도 일제는 무자비한 탄압을 가하였다. 헌병을 앞세워 수많은 사람들을 구금, 폭행, 고문하고 심지어는 살해까지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36년 동안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활동하다가 순국한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나라의 주권을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목숨을 초개처럼 여기며 나선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이 누리는 번영도 사실 이 분들의 고귀한 희생 덕분이다. 우리는 순국선열에게 적지 않은 빚을 지고 있다.
그 값진 희생에 대한 보답이 바로 보훈(報勳)이다. 보훈은 문자 그대로 공훈(功勳)에 대한 보답이다. 이 보답은 당연히 대한민국 정부가 해야 한다. 왜냐하면 다른 것도 아닌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아까운 목숨을 바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가의 사업 가운데 보훈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보훈보다 복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복지는 눈앞의 일이고, 보훈은 과거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복지도 중요하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따져보면 보훈은 복지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야 공동체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사람들은 공동체의 존립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나서게 된다. 만약 보훈이 제대로 정착되지 않다면 누가 공동체를 위해 나서겠는가?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주저하여 나서지 않으면 그 공동체는 무너지게 된다. 그 다음 일은 말할 필요도 없이 주권을 빼앗긴 36년의 악몽이 재현될 것이다. 우리는 역사적 사실에서 역사적 교훈을 얻어 다시는 그런 흑역사(黑歷史)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다가오는 삼일절에는 나라를 되찾기 위해 헌신하고 희생했던 독립유공자들을 꼭 기억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