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남 (작가)
봄의 길목을 지키고 있는 2.28민주운동 기념일이 다가오고 있다. 올해로 63주년을 맞이하는 2.28민주운동은 대구 경북고 학생들의 시대정신에 부응한 자발적인 민주적 운동의 첫출발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학생들의 주체적인 참여로 시작되어 전국으로 번진 민주화 운동의 불씨를 퍼뜨린 2.28민주운동은 자발적이고 민주적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는 역사적 사건이다. 이 운동의 직접적인 원인은 1960년 2월 28일 민주당의 장면 후보가 대구에서 유세를 계획하자 당국은 학생들이 유세장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일요일인 28일, 등교 명령을 내린 것이 단초가 됐다.
당시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이승만 독재에 반발해서 어린 학생들이 반기를 들자 대구 언론도 힘을 얻어 불의에 저항하는 학생들의 용기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기에 이르렀다. 확산된 운동은 부산, 마산, 대전, 서울 등으로 계속 번져 나갔다. 이 운동이 발판이 되어 3.15마산의거와 4.19혁명의 기폭제가 된 것이다.
당국은 일요일 학교에 등교하라고 명령하면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학생들의 반발은 예상을 넘어 큰 규모의 사건으로 확산된 것이다. 학생들이 투쟁의 포문을 열자 시민들이 합세해 민주화 운동에 더욱 불을 댕기게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중요한 기틀이 되었다. 이 사건이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최초의 학생민주화 운동이다. 이 첫 시작점을 기념하기 위해 사건일로부터 58년이 지난 2018년에 법정기념일로 지정됐다.
시대는 변했지만 우리나라는 근래까지 민주화운동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고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새로 써가고 있다. 특히 지난 촛불혁명은 개개인의 신성한 권력을 행사하며 집단적 신체로 물화했던 정치적 사건이었다. 이 실재감의 바탕에는 소비 주체나 생존 기계로 전락한 나약한 개인이 아니라 정치적 정동(精動)으로 연결된 단합되고 조직적인 고양감을 동반한 모습으로 드러났다.
그런가 하면 전혀 다른 기제로 연결된 우리를 경험하게 한 것이 팬데믹 상황이다. 이 과정을 지나면서 우리는 그동안 눈에 보이지 않았던 타자들의 존재를 실감했다. 인간뿐 아니라 비인간 존재들과의 연결망을 뚜렷하게 목격했다. 이때도 자발적이고 민주적인 참여정신은 강력했다.
바이러스에 대항해서 타인을 배려하고 솔선수범하는 시대적 영웅들의 아름다운 희생은 희망을 꽃피웠다. 이들은 사회 곳곳에서 불굴의 정신을 발휘하면서 묵묵히 현장을 지키며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개인의 노력과 희생정신은 정부의 방역정책에 공동체적 배려로 빛을 발했다.
우리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촛불과 바이러스를 통해 정치적, 문화적인 것의 물적 토대를 체감했다. 존재들 간 연결성의 실감은 새로운 집단적 주체화의 잠재성으로 내재화되기에 충분했다.
한때 신종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인간의 고통에 무차별적이었고 우리의 희생을 요구하며 무시할 수 없게 했다. 우리 곁에 오래 머물고 있지만 아직도 기세가 약화되지 않고 잠복 중이다. 언제든 면역기능이 약해지면 다시 활개를 치며 숙주를 괴롭힐 수도 있다.
이제 미래를 위한 민주주의를 재구성해야 하지 않을까. 오랫동안 자연의 영역, 객관적인 외부세계로 미루어 두었던 것들을 포함하는 운동이 필요한 시점이 도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