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경(수필가)
설이 지나고 입춘도 지나면서 여기저기서 봄 준비하는 손길이 바빠진다. 겨울 끝자락은 아직 떠날 채비를 하지 않고 있는데 마음이 먼저 계절을 앞당긴다. 봄은 들추기만 해도 공연히 설레고 들뜨는 계절인 것 같다. 이번 겨울, 몇 번의 매서운 한파와 이상 기온으로 힘이 들었음인지 봄이 유난히 기다려진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은 모두에게 희망이다. 그 희망은 추운 겨울을 버티게 한 원동력이자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기댓값이다. 더불어 고난 앞에 좌절하지 않고 두 주먹 불끈 쥘 힘을 갖게도 한다. 아무리 긴 겨울이라도 그 끝은 찾아오는 법, 만약 힘든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있다면 이번 봄을 시작으로 힘듦에 마침표가 찍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들녘을 거닌다. 2월의 텅 빈 들녘은 소란함이라곤 찾아볼 길 없이 고요로 넘쳐난다. 간혹 참새 떼가 무리 지어 날갯짓하더니 이내 눈앞에서 사라진다. 양지바른 곳에선 냉이가 단단한 지면을 뚫고 올라오니 기다림의 보상인 양 대견함 마저 인다. 햇살 아래 평화로운 풍경은 봄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자의 몫임을 실감한다.
빈 들녘의 논바닥은 뭉툭한 벼 그루터기만 남은 채 쓸쓸함을 더해가고 있다. 생산 활동이 중단된 들녘은 전성기와는 달리 각자 힘을 내려놓은 채 모든 걸 비운 상태다. 봄을 시작으로 빈 들에 채워질 생명체, 모두가 때를 기다리고 있다. 비워야만 하나씩 채울 수 있는 들녘, 무언가 새로움을 위한 준비가 시작되고 있음이다. 봄은 한달음에 달려오는 게 아닌 보폭을 줄여 가장 알맞은 시기와 장소에 적확하게,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다가오고 있다.
볏짚을 둘둘 말아 놓은 원형 곤포 사일리지가 군데군데 널브러져 있다. 지난해 추수가 끝난 후, 소 사료용으로 사용할 볏짚에 특수첨가제를 넣어 하얀 비닐로 말아둔 모습이다. 가까이서 본 볏짚 원형은 그 규모가 생각보다 컸다. 곤포 사일리지는 벼 그루터기와 함께 볏짚이 필요한 누군가를 기다리며 논바닥에서 긴 겨울을 보냈다.
최근 들어 한우 폭락에 볏짚마저 상승한 실정이다 보니 볏짚 한 올마저도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한우 농가의 타들어 가는 속내야 말해 무엇하랴. 농민의 답답한 마음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봄과 함께 종식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텅 빈 들녘은 얼마 지나지 않아 파릇한 새순을 시작으로, 무성한 초록으로 채워질 것이다. 모든 게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계절의 순환이다. 인간에게 생로병사가 있듯 계절의 순환은 자연의 섭리로, 때가 되면 꽃은 피고 지고를 반복하다 그 흐름에 순응한다. 순응만큼 순리적인 단어가 또 있을까 싶다.
가식과 허위가 필요 없는, 생성과 소멸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 앞에 역행하지 않고 순종할 수 있는 여유, 무위자연에서 얻는 깨달음이다. 우리가 자연과 호흡하며 모진 겨울을 보내는 동안 시공은 있어야 할 그곳으로 바르고 정확한 길을 안내했다. 봄은 어떤 상황에서도 어김없이 찾아오기에 묵은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고 새롭게 거듭날 힘을 얻기 위해선 계절의 흐름에 순응해야 한다.
봄은 새로운 출발의 시작이며 설렘과 기대를 안겨 주는 계절이다. 긴 겨울방학을 보내고 상급생이 되면서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가슴이 뛰던 시절이 있었다. 새로움에 담긴 의미는 늘 가능성이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지난날의 어눌함과 부족함을 보상이라도 하듯 만회할 기회를 안겨줬다.
지금까지는 인정받지 못했으나 ‘다시’라는 가능성에 힘입어 도약할 수 있는 봄, 주눅 든 마음에 자신감을 불러일으켜 재도전의 길을 안내하던 봄, 그 봄을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꿈과 의욕은 되살아났다. 다시 찾아온 기회는 어둠을 견딘 희망의 불씨이기도 했다.
차가운 땅 아래서 생명 잉태를 꿈꾸고 있을 3월, 절망 앞에서조차 용기를 내 다시 일어서게 할 새봄, 모든 가능성을 열어줄 봄을 맞음으로써 희망은 보이기 시작한다. 그 봄이 지금 가까이서 손짓하고 있다. 이제 마중할 일만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