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율 (동양대학교 교수)
세상에서는 이런 말이 사람들의 입에 쉽게 그리고 자주 오르내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남에게 훈수 두기는 쉬워도 내가 하기는 어렵다.’라는 말이 그것이다. 다시 말하면 장기나 바둑을 둘 때 곁에서 여기 놓아라 저기 놓아라라고 훈수를 하기는 쉬워도 막상 자신이 장기나 바둑을 둘라치면 어디에 두어야할지 막막하기만 하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렇게 된 데에는 책임이 있고 없음의 차이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훈수는 아무렇게나 해도 자기가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쉬운 일이지만 막상 자기가 장기나 바둑을 두는 당사자가 되면 모든 책임을 자신이 져야 하므로 그만큼 신중하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고, 그러다보면 길이 제대로 보이지 않게 된다는 뜻일 것이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방관자심(傍觀者審).당국자미(當局者迷)’라고. 이 말은 ‘곁에서 장기나 바둑 두는 것을 구경하는 사람은 잘 알고 직접 장기나 바둑을 두는 사람은 판단이 헷갈리게 된다.’는 뜻이다. 사실 이 말은 『구당서(舊唐書) 권102 원행충열전(元行沖列傳)』에서 유래하고 있는데 당나라 현종(玄宗)이 『예기(禮記)』의 주석본(註釋本)을 만들라고 명하여 원담(元澹) 등이 고생 끝에 새로운 주석본을 만들었다.
이에 우승상 장열(張說)이 새로운 주석본은 필요 없다고 하자 원담은 “당사자는 그 일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옆에서 보는 사람은 자세히 살필 수 있습니다.[當局稱迷.傍觀見審.]”라고 하였다. 훈수가 그만큼 쉽고 쉽기 때문에 깊은 고려 없이 필부필부(匹夫匹婦) 아무나 훈수 두기에 나선다고 하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을 살면서 하냥 훈수를 두거나 조언(助言)을 하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만났을 것이다. 이것은 이렇게 해야 하고 저렇게 하면 안 되고 저것은 저렇게 해야 하고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심지어 핏대를 올리거나 입에 거품을 물고서 훈수와 조언을 하는 경우를 보았을 것이다. 과연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진정한 훈수꾼이나 조언자일까? 아마도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왜냐하면 제대로 알고 보면 쉽게 훈수를 두거나 조언을 하는 것이 얼마나 오지랖이 넓거나 주제가 넘은 일인지, 또는 위험하기까지 한 일인지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훈수를 두거나 조언을 하려는 사람은 많고 훈수나 조언을 들으려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걸핏하면 훈수와 조언을 하며 심지어는 가르치려 들기까지 한다. 모두가 훈수꾼이고 조언자며 교육자이다. 이런 현상을 달리 생각해 보면 그만큼 고매(高邁)한 인격과 값진 경험, 전문적인 지식이 뒷받침된 전문가가 적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소위 자칭 전문가야 많지만 인격과 경험이 바탕을 이룬 위에 전문적 지식을 쌓은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진정한 전문가는 튼튼한 인격의 토대(土臺) 위에 소중한 경험, 전문적인 지식과 능력을 겸비한 사람이라고 하겠다. 그럼에도 전문 지식만 강조하고 인격의 도야(陶冶)와 경험의 축적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는 현행 교육제도와 작금(昨今)의 사회적 분위기가 이런 가짜 전문가를 양산(量産)했다고도 보여진다.
역설적이지만 어쩌면 가짜 전문가도 이러한 교육 제도와 사회 분위기로 인한 일종의 피해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진정한 교육이란 완전한 인격의 함양과 소중한 경험의 축적이 이루어진 바탕 위에 전문 지식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리라. 그런 교육으로 반드시 방향 전환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교육 제도를 들여다보면 가짜 전문가를 양산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인격 형성과 경험 축적의 기초적인 바탕을 소홀히 하고 또 그 과정도 무시하면서 결과 중심주의로만 흐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진정한 전문가가 길러지기 어렵다. 정말이지 본인들의 제대로 된 자각과 피나는 노력으로 진짜 전문가가 되는 사람은 마치 가물에 콩 나듯이 아주 적고 가짜 전문가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되니 누구나 훈수와 조언만을 일삼게 된다. 나아가 가르치려고까지 한다.
그러다보니 어느 누구도 이런 함양 미달한 전문가의 훈수나 조언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훈수나 조언도 제대로 된 사람이 한다면야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얼치기나 엉터리가 하는 것이 언제나 문제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와 ‘반풍수(半風水) 명산(名山) 폐묘(廢墓)한다.’라는 속담이 이 경우에 딱 들어맞을 것이다.
일찍이 맹자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맹자(孟子)』의 「이루상(離婁上)」에 “(맹자왈인지환.재호위인사.)孟子曰人之患.在好爲人師.”라고 하였다. “맹자가 말씀하기를 사람의 근심은 남의 스승되기를 좋아함에 있다.”라는 의미이다. 모두가 진정으로 배우려고 하는 자세를 버리고 오로지 남에게 가르치려고만 든다는 데 근심이 있다는 것이다.
배워서 확고하게 자기 것으로 소화한 후에 확신이 들었을 때 가르치는 것이지 설익은 지식으로 그저 가르치는 겉멋만 들어서 가르치려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맹자가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을 보면 아마도 맹자 당시에도 이런 부류의 사람이 많아서 문제가 되었던 모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