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의 화가’, 생명의 삶을 그려내다

개인전에 오신 분들과 함께(왼쪽에서 세번째가 박화백)
개인전에 오신 분들과 함께(왼쪽에서 세번째가 박화백)

여느 지방 중소 도시처럼 영주도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어 지방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당국이 각종 인구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지금까지의 인구증가 정책이 출산장려와 귀농 귀촌 운동에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귀향운동으로의 페러다임 변화가 절실하다.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머물고 있는 지역 출향인은 대략 3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에 본지는 이들 출향인이 은퇴 후 자신이 평생 직장생활을 하며 쌓아온 경륜을 귀향을 통해 고향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애향인 인터뷰를 마련했다. 이번 애향인 인터뷰를 통해 인구증가를 위한 귀향정책과 지역발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편집자 주>

붓보다 나이프와 손을 더 많이 사용하는 화가
지점토, 도자기 가루, 한지, 먹을 주로 하는 화법
시간 속에서 사물이 변하는 ‘생명의 삶’ 그려

미술 문외한인 기자는 미술은 붓과 물감으로만 하는 줄 알았다. 붓보다 나이프와 손을 더 많이 써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도 있다. 영주 출신의 화가 박동수이다.

박 화가는 현재 태백시에서 활동 중이다. 태백시 미술협회장과 태백예총 수석부회장을 역임했다. 세간에 알려진 그의 작품 대부분은 태백시에서 생활하면서 그린 것이다.

박 화가의 작품은 여백이 두드러진다. 시인 박용재 교수는 박 화가가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해 하는 말을 “사물이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변화해가는 모습을 생각하며 매 순간의 기억과 느낌을 이미지화한 작품을 통해 여백이 주는 여유로움을 표현”으로 요약했다.

그 여백은 원래의 빈 공간이라기 보다 채워졌던 것이 비워진 공간이기도 하며 그림을 보는 사람을 위해 남겨 놓은 공간이기도 하다. 지점토, 도자기 가루, 한지, 먹은 그의 그림에 주가 되는 재료이다. 이 재료들이 이 땅에서 예부터 이어져 온 시간과 공간적인 맥락에서 매우 한국적이란 점도 흥미롭다.

그는 자신의 작품 활동을 넘어 태백 미협 회장으로 태백 예총 수석부회장으로 태백시 문화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나라를 넘어 다른 나라와의 공동 활동에도 나선다. 필리핀 바기오시 미술협회와의 교류전 및 중국(산동대학교)과 공공미술세미나 및 전시도 했다.

소백 송재진 화가가 영주의 문화예술 공간으로 사비를 털어 운영하고 있는 갤러리 즈음에서 박 화가를 만났다. 고향을 자주 찾는 그가 반가웠다. 그는 자신이 대가가 아니라면서 처음에는 인터뷰를 사양했다. 그에게서 대쪽 같은 기운을 느꼈다. 그가 차기 태백 예총 회장이라는 소식을 듣고 있었는데 그 표현도 매우 부담스러워하며 빼달라고 했다.

여백의 정원Ⅲ  65×45㎝ 지점토, 혼합재료, 2022
여백의 정원Ⅲ 65×45㎝ 지점토, 혼합재료, 2022

화가이신데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잘 그리셨나요?

어렸을 때 그림을 잘 그렸는지는 모르겠습니다(함께 웃음). 어릴 때부터 그림을 잘 그렸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림이 재미있었습니다. 영주 동부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이 재미있었고 그림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나요?

글쎄요.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렸다는 걸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대영중학교에 입학해 김종한 선생님을 뵙고 그림 지도를 제대로 받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김종한 선생님은 영주 미술의 산증인입니다. 영주미협의 초대지부장을 지내셨고 영주여고 교장을 역임하셨습니다. 김종한 선생님과는, 사제가 함께 출품한 전시회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정말 의미 있는 전시회였습니다.

영주에서 초중고를 다니셨군요.

봉화 명호에서 태어나 봉화 북곡초등학교를 다니다가 3학년 때, 아버님의 직장 관계로 영주동부초등학교로 전학했습니다. 중학교는 대영중, 고등학교는 영주고를 졸업했습니다. 아버님께서 영주 연초제조창(현 KT&G)에 재직하셨습니다. 아버님은 직장생활 할 때부터 불교에 심취하셨고 한문으로 된 책을 자주 보시고 붓글씨를 즐겨 쓰셨습니다.

아버님이 매우 엄하셨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네. 아버님은 어떻게 언행을 해야 한다는 훈계의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어렸을 적엔 그 말씀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고 반항심도 생기곤 했습니다. 어머님은 자식들에게 별 말씀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버님께서 봉화 거주하시며 노인 세대가 다 되어가는 저희 남매들에게 지금도 옛 말씀을 인용해 훈계하십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아뵙는 손자 손녀들에게도 여전하십니다. 이번 설에도...(함께 웃음).

필리핀 바기오시 화가들과 교류전 기념 사진
필리핀 바기오시 화가들과 교류전 기념 사진

자식들이 다 잘 되라는 뜻으로 하시는 말씀이겠지요?

그럼요. 옛 말씀 속에 담긴 이치가 지금에서야 느껴지는군요. 저도 잘 지키지 못하지만...(함께 웃음). 두 분 다 연세가 드시니 오랫동안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형제분들이 모두 출향하셨나요?

제가 장남으로 여동생 둘, 남동생 하나가 있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둘은 영주를 떠나 있고 둘은 영주를 지키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현재 봉화에 살고 계셔서 찾아뵙는 사이에도 영주에 들립니다.

대학 진학도 미술학과로 하셨는데 계속 작품 활동을 하신 건가요?

생업으로 인하여 한동안 그림을 놓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빈 시간이 무척 아쉽습니다. 태백시로 오기 전 한동안 작품 활동에 회의감도 들고 삶에 대한 생각도 많았습니다. 그 뒤 건강도 좋지 않고 해서 조용한 곳을 찾아 태백으로 갔습니다.

탄광촌이 번성할 때와 전혀 다르게 공기 질도 좋아진 곳이었습니다. 원래 양양으로 가려던 계획이 있었는데 태백시 여러 곳을 다니다 태백이 좋아 태백에 머무르며 작품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Ⅲ 72×99㎝지점토, 혼합재료, 2019
그 자리Ⅲ 72×99㎝지점토, 혼합재료, 2019

태백에 거주하면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시게 되었나 보군요. 역사가는 글로 역사를 쓰는데 작품을 보니 박화백은 그림으로 태백의 변화 역사를 그린다는 생각도 듭니다.

뭐... 역사를 그리는 경지는 생각도 못하고... 태백은 산이 많고 나무가 많은 곳입니다. 나무가 쓰러져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는 걸 오며 가며 보다가 그림으로 표현해 보고 싶었습니다. 사람의 삶처럼 나무도 변화하는 걸 나타내어 보고 싶었습니다. 저 자신의 삶을 자라다 넘어져서 변해가는 나무에 투영하려니 붓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지점토, 도자기 가루로, 한지로 표현을 하며 느낌이 살아났습니다.

지점토는 흙이고 한지는 나무에서 나오고 나무는 땅에서 자라고, 도자기 가루는 땅에서 나옵니다. 사람도 나무도 흙에 발을 딛고 있고 흙 속에 뿌리를 내리며 태어나 살다가 다시 돌아갑니다. 그 변하는 모습의 느낌을 줄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지점토를 쓰게 된 계기가 있었군요.

지점토란 매개체가 재미있습니다. 지점토는 색을 칠하면 스며들며 발현되는 색이 매력적입니다. 지점토에 처음 색을 칠했을 땐 어떤 색이 나올지 모르는 경우도 많으며 아직도 많은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저처럼 지점토, 도자기 가루, 한지, 먹, 물감 등을 활용하는 분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림에 여백을 많이 두신다는 평을 받습니다. ‘여백의 화가’라 부를 수도 있겠습니다.

제 그림에는 여백이 많습니다. 그냥 빈 공간이 아닙니다. 여백을 많이 두는 이유는 흔들리고 소리 나는 걸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여백은 보는 사람의 공간이기도 하고 보는 분들이 자신의 생각으로 그 여백을 채우시라는 뜻도 있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하니 화단 활동을 태백시와 인근 지역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만.

사)한국미술협회 태백지부장을 하며 필리핀 바기오시 화가들과 교류전시회를 열었습니다. 필리핀 바기오시는 태백시의 자매도시입니다. 바기오시는 필리핀에서 특이하게도 온대지역이며 소나무를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바기오시 미술협회 화가들과 같이 그림을 그리고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2016년에는 필리핀 공영방송에서 저희들의 활동을 크게 방영한 적도 있습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그동안 중단되었으나 다시 교류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중국 산동대학교와도 교류전을 가졌습니다. 중국 예지원, 엄청 크더군요. 외국 작가들이 거주하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특이하게 건물 주차장을 전시장으로 활용한 공간이 인상 깊었습니다.

영주시 당국자 또는 영주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을 부탁합니다.

제가 무슨... 영주는 예향의 도시이고 선비의 고장입니다. 화단의 여러분이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걸 듣고 보면서 느낌이 새롭습니다. 작고하신 영주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그분들의 작품세계를 정리하고 지역 미술 역사를 기록하는 소백 송재진 화백님을 만나보면서 감탄합니다. 저도 영주 출신으로 그림을 그리는 입장에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박동수 화가의 프로필

- 영주동부초등학교, 대영중학교, 영주고등학교 
- 강릉원주대학교 예술체육대학 미술학과
- (현) 사)한국미술협회 태백지부장
- (현) 강원현대작가회, 초설회, 영주미술작가회 회원
- (전) 사)태백예총수석부회장 역임
- 개인전3회 / 초대개인전 2회 / 단체전 및 국제전 130여회
- 2009~2022 사)한국미술협회 태백지부 정기전(태백문화예술회관)
- 2022 강원미술 100년의 봄 / 영주미술 작가회展 / 강원현대작가회展 / 강원화단 60년 조망‘화가들의 회갑展’/ 강원도 미술협회전(강원예술제)
- 2021 지학순주교 탄생100주년 기념미술전시회 ‘다시 빛으로’/ 공공미술 프로젝트‘ 물길따라 전설따라 예술아’ 참여 작가
- 2020 힘내라 강원미술 릴레이 웹 전시회(강원문화재단)
- 2017 마을미술 프로젝트 참여작가(태백) Global Nomadic Project 展(중국. 웨이하이)
- 2015 평창비엔날레 GIAX FAIR(평창)
- 2011 필리핀. 바기오시 국제교류展(바기오시 SM몰)

황재천 프리랜서 기자/ 오공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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