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남 (작가)

설날이 삼일 앞으로 다가왔다. 상점마다 선물세트가 가득 진열돼 있고, 사람들의 발걸음은 왠지 모르게 더 분주하게 느껴진다. 설을 앞두고 장보기를 하기 위해서 시장에 들렀다. 그동안 움츠렸던 경기가 설을 맞아 반짝 활기를 되찾고 있었다. 시장을 돌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구정, 장보러 나왔니껴”이다.

‘설’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쳐 오면서 우리 민족의 큰 명절로 자리 잡았다. 역법에는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을 1년으로 정한 태양력(太陽曆),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시간을 기준으로 만든 태음력(太陰曆), 달과 태양의 움직임을 모두 고려하여 만든 태양태음력(太陽太陰曆-음력이란 말은 이를 가리키는 것임)이 있다.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태양태음력을 사용해 왔다.

설은 추석, 한식, 단오와 더불어 4대 명절의 하나로 꼽히는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이다. 우리 조상들은 한해의 첫날인 음력 1월 1일을 ‘설’이라 했다. 그런가 하면 언제부터인가 설을 구정이라 부르기도 한다. ‘설’과 ‘구정’이란 말이 함께 쓰이고 있는 것이다. 음력설이 공휴일로 지정된 국가는 한국, 중국, 대만 북한, 베트남, 홍콩, 마카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몽골,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총 12개국이다.

한때 설이 ‘민속의 날’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음력설이 공식 휴일로 인정된 것은 1985년부터다. 또한 양력설 도입 이후 음력설이 공식적인 3일 연휴로 인정되기 시작한 때는 1989년부터다. 추석도 1989년부터 3일 연휴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추석은 음력설보다 더 오래전부터 공휴일로서 기념되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84년까지 음력설은 공휴일이 아닌 평일이었고, 양력설만 공식 휴일이었다. 1985년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양력 1월 1일(양력설), 음력 1월 1일(음력설) 둘 다 새해로 기념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우리의 전통문화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음력 1월 1일에 설을 쇠지 못하게 하고, 양력 1월 1일에 설을 쇠도록 강요하였다. 이때부터 양력 1월 1일은 ‘신정(新正)’이라 하고, 그에 대응하는 음력 1월 1일을 ‘구정(舊正)’이라고 부르게 됐다.

이뿐만이 아니라 일제는 우리 민족이 설에 떡국을 비롯한 명절음식을 만들어 먹고, 설빔을 입는 우리 고유의 풍습을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한다. 일본은 설 무렵이면 우리의 떡 방앗간을 폐쇄하고, 설빔으로 입고 나오는 어린이들의 새 옷에 먹칠을 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설’이 ‘구정’으로 불리게 된 이유는 일제강점기의 잔재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구정으로 일컬어졌던 ‘설, 설날’이 현재와 같이 제 이름을 찾기까지는 우리 민족의 수난 역사가 있었다. 어렵게 되찾은 이름인 ‘설, 설날’을 일제에 의해 신정(新正)의 상대적 개념으로 쓰였던 구정(舊正)으로 불리는 것은 우리의 전통명절인 ‘설’을 ‘폄하’하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설’을 ‘구정’이라 말하는 사람이 주변에 많이 있다. 이제 더는 ‘설’, ‘설날’이라는 본래 이름을 두고 구정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으면 좋겠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의식의 표현이므로 언어는 말하는 사람의 의식을 담고 있다. 그만큼 말하는 사람의 단어 선택은 그 사람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고작 단어 하나를 두고 이렇게 장황설을 늘어놓느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버리고 지워내야 할 것이 있다면, 이 또한 마땅히 지켜야 할 우리의 몫이 아닐까. 설이라는 단어뿐만 아니라 청산해야 할 것들이 수없이 많지만, 설을 앞두고 한 가지라도 확실하게 지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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